투수들은 타자가 홈런을 칠지 안칠지 공을 던지자마자 안다고 한다. 자신이 공을 잘못 던졌다는 걸 알고 아차, 하는 동안 공은 힘차게 뻗어나가 펜스를 넘긴다. 다행히 타자가 그 공을 안칠 수도 있지만, 요즘 타자들은 워낙 영악해서 실투를 놓치는 법이 없다. 그런데 좀더 내공이 깊어지면, 공을 던지기 전에 이미 홈런을 맞을 걸 안다. 간혹 투수들 중에 공을 던지려다 말고 그대로 주저앉는 사람이 있는데, 그건 홈런을 맞을 걸 직감했기 때문이다.

테니스를 칠 때 자신이 친 공이 아웃인지 아닌지는 맞는 순간에 알 수 있다. 정타로 맞지 않고 잘못 맞는 경우, 공은 멀리멀리 날라가 담장을 때리기 마련. 하지만 나처럼 테니스를 오래 친 사람은 라켓에 공이 맞기 전에 이미 아웃인지 아닌지가 판가름난다. 내가 공을 치려고 폼을 갖추다 말고 갑자기 탄식을 하며 하늘을 보는 건, 바로 그럴 때다.

사람을 웃길 때도 그렇다. 초보자의 경우는 자신이 한 말에 대해 남들이 보이는 반응을 봐야 성공 여부를 안다. 갑자기 침묵이 흐르거나, "야야, 그게 뭐냐?"는 핀잔을 받고서야 머리를 긁적거린다. 조금 더 내공이 깊어진다면 말을 하는 순간에 이미 실패라는 걸 안다. 예전의 내가 그랬다. 말을 하자마자 1초도 안되어 "미, 미안. 썰렁해서"라고 말을 하곤 했다. 자기 잘못을 아는 자에게 사람들은 관대한 법, 이런 경우 "안웃겨!'라며 비판하는 사람은 드물고, 어떻게 안웃긴 지 알았냐며 대견해한다.

유머의 내공이 굉장히 깊어지면 웃길지 안웃길지 말 하기 전에 이미 알아버린다. 간혹 유머의 고수들 중에 "헙!" 하면서 말을 삼키는 사람이 있는데, 그건 자기 말이 안웃길지를 미리 예견한 경우다. 열번을 시도해 세 번만 웃기면 3할타자로 존경받는 우리 세계에서, 성공률 10할의 신화는 이래서 가능하다.

난 아직 그 단계에 이르진 못했다. 안웃길 줄 알지만 이미 진행되는 프로세스를 막을 수가 없어, 하려던 말이 입 밖으로 나오곤 하니까. 나이 열둘에 유머에 뜻을 두었으니 이 세계에 몸을 담군 지 어언 22년, 그럼에도 불구하고 2할대 언저리에서 맴돌고 있으니 유머의 길은 정말 멀고도 험하다. 안웃긴 말을 하고 수습하는 것보다 안하는 게 나은 건 불문가지, 말을 삼키는 방법을 깨우치는 그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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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4-06-01 1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왜 겸손한 척 하십니까? 님은 이미 5할대를 넘어선 유머의 전당에 곧 입문하실꺼면서...
저 같은 사람은 어찌 살라고요....^^;;;

메시지 2004-06-01 1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안 웃긴다고, 썰렁하다고 눈총을 주기에 그 다음부터는 말없이 않아있었더니 이번에는 말 안한다고 또 눈총을...... 고수의 길을 정말 멀고도 험한가봅니다. 이상 마이너리그에서 활동 중인 썰렁맨이었습니다.

플라시보 2004-06-01 1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웃기는 사람을 무척 좋아합니다. 그렇다고 코메디언처럼 웃기는건 아니고 뭐랄까. 말이 많으면서도 달변가를 엄청시리 좋아라 합니다. 님의 2할대는 어느정도의 내공인지 참으로 궁금합니다. 확인할 길이 없으니 언제 만담이라도 한번 직접 육성으로 올리심이...하하

이럴서가 2004-06-01 1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건 참말인데, 지금껏 살면서 마태우스님처럼 재미있는 분 첨 봤어요. 액션 하나하나가 아주 그냥...

마태우스 2004-06-01 1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곰도리님/앗! 저의 실수구요, 이십육년이 맞습니다. 저얼대 고의가 아니었습니다!
조선남자님/님의 인생경험이 너무 짧으셔서 그런 것 같습니다. 그리고 님의 내공도 만만치 않아 보입디다.
플라시보님/제가 컴맹이라 만담을 육성으로 올리는 게 힘들 것 같거든요. 글구 실제 만나면 저 별루 안웃겨요.
메시지님/제가 상처를 드렸군요. 그런데요, 안웃기는데 옆에서 계속 웃긴다고 얘기하는 사람은 진정한 친구가 아니랍니다^^
파란여우님/과찬이옵니다. 5할은커녕 3할만 되었으면 좋겠어요!!

panda78 2004-06-01 1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미 고수의 반열에 들어서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 그러시는 거 아니시구요, 마태 고수님? ^^;;; 3류 소설보면, 70%쯤은 성공하실 것 같은데...

nugool 2004-06-01 1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수"라는 제목을 보고.. 음... 무엇에 관한 이야기 일까... 가끔 연예인에 대한 글도 올리시니 꽃미남 고수를 질투하는 내용의 페이퍼일까?... 허를 찌르는 게 특기이신 마테우스님의 특성상.. 일반적인 고수를 두고 하는 얘긴 아닐테고.. 혹시 베트남 쌀국수에 들어가는 "고수"라는 야채에 대한 독특한 견해가 아니실까....잠시 생각했더랍니다. ㅋㅋㅋ

갈대 2004-06-01 15: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우스님의 타율은 현재 7할 8푼 5리입니다^^

찌리릿 2004-06-01 17: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우스님은 언제 봐도... 존경스럽습니다.
저는 1할대 타자입니다. 알라딘 처음 입사할 때만한해도 어느정도 신선하게 웃겼었는데.. 요즘은 갓 입사하신 분들도 제 유머에 짜증을 냅니다.
요즘은 정말 죽을 맛인데... 저의 유머에 마이동풍으로 화답합니다. 더욱이 심한건.. 제가 정말 재미있으라고 한 얘기에 편집팀장이 "웃기지도 않고, 안 웃기지도 않고..."하며 그대로 고갤 돌릴 때였습니다.
아.. 더 심한 게 있습니다. 팀원들을 재밌게 해주려고 썰을 풀면.. "탄핵하자!" "오히려 일하기 싫게 만든다니깐.."하고 입을 맞춰 짜증을 냅니다. ㅠ.ㅠ (물론 저는 이정도 반응까지는 '내 유머의 당연한 결과로' 즐깁니다. ㅎㅎㅎ)

그래도.. 저는 고수가 되기 위해서 유머를 계속 합니다. 싫다고 그만 하라고 해도 꿋꿋이 합니다. '웃긴 놈'이라도 되지 않을까하구요...

정말로 괴로운 반응은.. 아무 반응이 없는.. 그야말로 얼굴에 바람 한점 지나지 않는 그 무표정함이죠. ㅠ.ㅠ

마태우스 2004-06-02 1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찌리릿님/포기하지 마세요. 의지만 있다면 석달이면 됩니다. 정말입니다!!
갈대님/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부끄럽습니다. 꼭 올해 안에 3할을 치겠습니다.
너굴님/고수라는 야채도 있군요! 역시 너굴님은 고수라니깐!
panda78님/제 얄팍한 술수를 들켜버렸네요. 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