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노당의 원내진입이 거의 확정적이던 4월 15일밤, 내 관심은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비례대표 8번인 노회찬의 당선 여부에 가 있었다. 결국 그가 당선되었을 때, 난 얼마나 좋아했는지 모른다. 그가 금뱃지에 욕심을 부렸을 것 같진 않지만, 민노당 승리에 결정적 역할을 한 그가 국회의원이 되지 못했다면 정말 안타까웠을 것이다.
한나라당 골수인 직장동료를 만나 총선 얘기를 하던 중, 그가 정당투표에서 민노당을 찍었다는 사실에 놀라자빠질 뻔했다. 왜 그랬냐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대답한다..
"우리나라에도 제대로 된 진보정당이 있어야지요"
난 물었다. 민노당의 정책인 무상의료, 무상교육에 동의하냐고. 그는 깜짝 놀란다.
"전혀 동의하지 않죠! 그게 말이 되나요?"
나중에 그 자신도 인정했지만, 그가 민노당에 표를 던진 건 그러니까 순전 겉멋이었다.
나는 정동영이 싫다. 정동영 하면 늘 이미지 정치가 생각이 나서다. 미디어가 세상을 장악한 마당이니 어느 정도의 이미지정치가 필요한 법이지만, 실체가 없이 이미지로만 승부를 하는 건 금방 탄로가 나기 마련이다. 열린우리당의 실세 '천신정 중 하나인 정동영은 유감스럽게 그런 정치인인 것 같다.
민노당을 흔히 정책정당이라고 한다. 남들도 그러고, 자신들도 그걸 자랑스럽게 말한다. 하지만 내 동료가 그랬던 것처럼, 민노당에 투표한 사람들 중 그 당의 정책에 대해 잘 모르고 투표한 사람도 적지 않다. 열린우리당의 정당 투표율이 평소의 정당지지율보다 높지 않았던 이유도 그 당의 지지자들 중 일부가 정당투표에서 민노당을 지지했기 때문일 것이다. 민노당에 투표한 사람들이 노동자 계층보다는 많이 배운 계층에 속한다는 것도 아이러니한 일일 것이다.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 역시 정책은 있고, 국가보안법을 비롯한 몇 대목에서 차이를 보이지만, 두 당에 투표한 사람들 중 얼마나 많은 숫자가 정책을 보고 표를 던졌는지 알 수 없다. 우리나라에서 정책선거가 힘든 건 일차적으로 정당의 정책이 차별적이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언론들이 거기에 관심이 없었던 것도 이유가 된다. 유권자들 역시 정책선거에 관심이 없어, 정당의 정책을 소개한 신문기사를 재미없어한다. 그러니 정당들은 미디어를 이용할 수밖에 없고, 지난 총선에서도 각종 토론회에 당의 간판스타들이 총출동, 자웅을 겨루었다.
그 싸움에서 승리한 사람이 바로 노회찬이다. '노회찬 어록'이 떠돌만큼 인기를 끌었던 그가 아니었던들 민노당이 지금처럼 승리를 할 수 있었을까? 능란한 화술에 유머까지 겸비한 노회찬의 활약은 민노당에 대한 잘못된 편견들을 깨끗이 씻어줌으로써 지지율 상승에 큰 힘이 되었다는 게 세간의 평인데, 그런 의미에서 민노당 역시 이미지 정치의 덕을 톡톡히 본 셈이다.
노회찬이 조선일보 노조 초청강연에 가서 이런 말을 했단다. "조선일보의 논조에 동의할 수 없지만, 품질은 최고"라고. 설마, 노회찬이 종이 질을 가지고 신문의 품질을 얘기하진 않았을 것이다. 신문의 품질을 가르는 건 기사와 오피니언, 기사에선 왜곡을 밥먹듯이 하고, 사설을 통해 정치적 편향성을 유감없이 드러내는 조선일보가 "품질은 최고"라니 기가 찰 노릇이다. 그는 왜곡이라고 주장을 하지만, "가뭄엔 파업하면 안돼!"라는 명언을 남기는 등 수십년간 노동자들을 죽이는 데 일조한 조선일보사에 갔다는 것도, "30년 애독자"를 강조한 것도 그 신문에 대한 노회찬의 문제의식이 희박하다는 걸 보여준다 (참고로 조선일보의 노조는 우리가 아는 노조가 아니며, 회사의 이익을 적극 대변하는 단체다).
노회찬과 정동영은 다르다. 적어도 난 그렇게 믿는다. 하지만 금뱃지를 달기 전과는 달리, 이제 그는 국민적 스타고, 민노당의 간판이다. 그가 하는 일거수 일투족은 이전과 다르게 많은 이의 감시를 받게 마련이다. 나도 그렇지만, 이번 일로 많은 이들이 실망한 모양이다. 그에게 실망하는 게 이번 뿐이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