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벌써 5년 전 얘기다. 단국대에 원서를 내고 나서 난 무지무지 떨렸었다. 지원조건이 '의사면허가 있으면서 해당전공 박사학위가 있는 자'여서 원서를 낸 사람이 나밖에 없었지만, 나란 놈이 워낙 허점이 많고 사람도 모자라, 혹시 안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 것. 남들은 내 기우를 "별 걱정을 다하네"라며 조소했지만, 나의 조마조마함은 진심이었다. 12월 말 테니스장에서 내가 임용되었다는 전화를 받았을 때 내가 한 말은 이랬다. "일대일인데도 떨렸어요!"
대통령 탄핵에 관한 헌재의 발표를 TV로 보면서 난 그때 기억을 떠올렸다. 무단횡단, 노상방뇨를 했다고 사람을 붙잡아서 몇년씩 가두는 게 말이 안되듯,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탄핵기각 결정이 날 것을 예측했을 거다. 하지만 '혹시'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고, 헌재 재판관들의 양식이 의심스러워지고, 화면에 잡힌 김기춘 소추위원장의 뻔뻔한 얼굴이 보이면서 불안감은 증폭되었다.
게다가 대통령이 공무원의 중립 의무를 여러번 위반했고, 헌법 수호의 의무를 저버렸다는 헌재의 발표를 들으면서 "이러다가 무슨 일이 나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까지 했다. 하지만 그 후부터 일사천리로 기각 결정이 내려졌고, 최종 결정도 역시 '기각'이었다. 병원 대기실에서 TV를 보던 사람들 중 아무도 박수를 치거나 환호하지 않은 건 , 그게 지극히 당연한 결정이어서가 아닐까. 까만 걸 까맣다고 했는데 놀랄 이유가 없듯이.
탄핵 결정 이후, 많이는 아니지만 난 여러번 광화문에 갔다. 성금도 내고, 차가운 길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앉아 있느라 엉덩이도 무진장 힘들었다 (안그래도 큰 히프가 더 커졌다는 설도....). 수만명이 모여 광화문을 점거하면서 미안한 생각도 했다. 안그래도 복잡한 거리에 그것 때문에 차가 얼마나 밀렸으며, 인근 가게들의 영업에 얼마나 지장이 있었겠는가. 더우기 우리들 때문에 탄핵 찬성 집회는 건너편 인도로 밀려나 조촐하게 치뤄져야 했지 않는가.
탄핵을 지지하고, 노무현 복귀에 반대한 그대들이여. 이제 맘놓고 광화문을 쓰시라. 탄핵 가결 후 그대들의 시위가 정당성이 없었던 건, 시위란 원래 내려진 결정에 복종하지 않을 때 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탄핵반대 집회를 하면서 민주주의를 지키고자 하는 사람들의 굳건한 연대를 확인했듯, 잘 먹고 잘 사느라 모래알처럼 파편화되었던 그대들도 같이 시위를 하면서 하나가 되보시라. 우리는 그대들이 그랬던 것처럼 "촛불시위 참여자는 다 실업자"라든지, "버스로 동원됐다" "양초값은 다 누가 내냐" "니들이 수호하고자 하는 민주는 누구의 민주냐" 등의 말은 하지 않겠다. 가서 마음껏 '탄핵 유효!' '임기 아직 안끝났다. 탄핵 다시하라!'를 외치시라. 그래서 이 땅의 보수세력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보여 주시라. 이건 진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