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날, 난 할머니, 어머니, 엄마 고향 친구, 그리고 조카 둘(누나 애들)과 청남대에 다녀왔다. 동기는 간단했다. 할머니가 새로 개통된 KTX를 타보고 싶다고 하셨고, KTX를 타려면 적어도 대전 정도는 가야지 않겠냐는 생각에 대전까지 표를 끊었다. 엄마 친구가 대전에 따님이 사는지라 그분의 가이드 아래 청남대 구경을 하기로 했던 것. 우리가 그런 음모를 꾸민다는 걸 안 누나가 휴일만이라도 애들 등쌀에 벗어나 볼까 같이 데려가기를 원했고, 그들이 또 내 열렬한 팬인지라 나도 흔쾌히 수락을 했다.

길고 긴 줄서기 끝에 청남대로 가는 버스를 탔다. 그 많은 인파에도 마음상하지 않았던 것은 "서울대공원 간 사람은 깔려 죽었을거야"라며 스스로를 위안했기 때문이었다. 다들 알다시피 청남대는 전두환이 만든 별장으로, 한국에 독재자가 있었다는 슬픈 역사를 상징하고 있다. 헬기장, 수영장, 골프장, 2층짜리 집, 양어장, 연못들, 그늘집, 초가집, 비싸 보이는 묘목들... 어떤 남자분은 "국민 세금 가지고 이런 짓거리를 했냐"고 흥분하시던데, 난 그저 시큰둥했다. 내 마음은 이런 거였다.
"뭐야! 우리집보다 안좋잖아!"
재벌 2세는 이래서 나쁘다. 뭘 봐도 '시큰둥'이다. 뷔폐를 가도 우리집에서 평소 먹던 반찬보다 덜 나오니, 무슨 재미가 있겠는가. 내가 미국이나 유럽을 안가는 이유도 간단하다. "아직 우리집도 다 못둘러봤는데..."
(진짜...믿는 분은 안계시겠죠?^^)

청남대를 도는 두시간 동안, 난 거의 걸은 적이 없다. 87세된 할머니가 힘드실까봐 휠체어를 하나 빌렸는데, 할머니는 죽어도 당신 발로 걷겠다고 하시니, 조카들만 신이 났다. 둘이 거기 올라타서 "왼쪽! 오른쪽! 더빨리!" 이런 식으로 날 조종했는데, 두어시간을 그러니 손바닥에 물집이 잡혔다. 휠체어를 반납하면서 내가 얼마나 홀가분했는지 상상이 가는가. 하지만 그게 끝은 아니었다. 다음 코스로 간 '허브랜드'-각종 식물들과 그걸 원료로 한 제품들이 나열되어 있다-에서 애들은 시종일관 내게 "저 바위까지!" 이러면서 달리기 시합을 청했다. 밥도 허하게 먹은 터라 하루종일 조카들에게 시달렸더니, 집에 오니까 멀미가 났다. 그래도 뭐, 어린이날인데... 적어도 누나 아들들에게, 난 좋은 삼촌이었다.

* 피에스: 하루니까 했지, 매일 그렇게 하려면 쓰러질 거다. 이 땅의 부모님들을 내가 존경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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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시보 2004-05-06 1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흐. 고생하셨어요. 그렇지만 아마도 누나는 그런 일을 매일 겪지 않았을까 싶네요. 하루만이라도 님이 그 짐을(이라고 표현하면 애기 엄마들은 화낼라나?^^) 덜어 주셨으니 잘 하신겁니다. 그리고 님. 제벌 2세 맞죠? 아무래도 그런것 같아. 수상해...흐흐. (재벌 주제에 이벤트가 너무 약해요. 최소 상금 100단위는 되어야 하는거 아닌가요? 그래야 우리 서민들도 할 맛이 나지..하하)

진/우맘 2004-05-06 1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마이크로 소프트사의 주식 33% 중에 0.1%만 정리하셔요! 그래서 얼른 가든파티라도 한 번...^^

waho 2004-05-06 16: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우스님이 재벌 2세라니...달라보이는데요...간사한 맘으로 마태우스님을 끝까지 알라딘에서 좇아 다닐래요. 청남대도 가보시고 좋은 나들이 하셨네요. 할머님도 아직 굉장히 정정하시네요.

비로그인 2004-05-06 1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아이들은 "삼촌이 좋아하길래 함 놀아줘봤다." 라고 할수도 있어요~요새 애들이 얼마나 영악한대요 ^^

책읽는나무 2004-05-07 08: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 재벌2세가 바로 님이셨군요!!
IMF의 여파로 인하여....정원사 5명에서 2명으로 줄이고....운전기사 6명에서 3명으로 줄인
바로 그장본인~~~~!!!
싸부님으로 모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