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이 바람을 피운다는 얘기를 들은 건 두달 전이었다. 같은 직장에 근무하는 여직원이랑 사귄단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는 식으로 얘기를 전하는 A와 달리, 난 그저 담담한 심정이었다. 바람 피우는 거야 그 사람의 자유고, 상대 여직원과 나는 일면식도 없으니 담담할 수밖에. 남자와 여자가 뒤섞여 사는 이 세상에서, 결혼이라는 굴레가 모든 유혹을 차단해 줄 수 있으리라 믿는 것은 너무 순진한 것이리라. 내가 조금이라도 놀랐다면 이래서일 것이다. 그가 워낙 학문적으로 뛰어난 사람이라, 터프한 인상과는 달리 정력이 약할 것으로 지레짐작했던 것.

오늘, 그에 관한 소식을 다시 들었다. 그는 급기야 부인과 이혼을 하고, 바람을 피운 여자와 같이 산다고 한다. 이번에는 좀 놀랐다. 드라마 <애인>의 유동근이 그랬던 것처럼, 유부남이 관련된 대부분의 바람은 유부남이 가정으로 돌아가고, 아내는 상처를 봉합하며 살아가는 것으로 결말이 나곤했다. 그래서 난 이번의 바람 역시 그런 식으로 결론이 날 것으로 짐작을 했었다. 이혼으로 그가 잃는 게 너무도 많았기에, 이기적인 다른 남자들처럼 바람을 좀 피우다 말 줄 알았었다. 그런데 이혼이라니.

이혼을 찬양하는 것은 아니지만, 난 그가 참으로 멋있다고 생각한다. 결혼생활을 한 지 십수년, 애까지 있는 처지니 이혼 후 그에게 남을 것은 별로 없어 보인다. 그렇다고 그 여자가 무슨 대단한 배경을 가진 것도 아닐진대, 그간 쌓아왔던 모든 것을 버리자면 대단한 용기가 필요하지 않았을까. 물론 아내에게는 큰 상처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더 이상 애정이 없는 가정을 억지로 지키는 것보다는, 새 삶을 살아가는 게 낫지 않을까? 큰 충격을 받았을 아이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파 오지만, 난 아이들에게 얽매여 자기 삶을 희생하는 것보다는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는 삶이 더 가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더 많을 것이다. 내가 자식을 낳지 않으려는 것도 나의 이런 태도와 무관하지 않겠지).

행복을 얻긴 했어도 그는 지금 괴로운 심정일지 모른다. 주변머리가 없는 내가 알 정도니,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남들이 찧는 입방아도 그렇거니와, 자신을 보는 시선들이 곱지 않음을 그 역시 느낄 것이다. 도덕적으로는 옳지 않더라도, 그가 어렵게 내린 선택인만큼 그 결정을 존중해 주면 안될까. 말은 이렇게 해도, 그 사람을 우연히라도 만나면 피해버릴 것 같다. 내가 지각할 때 아는 체를 하는 사람이 얄밉듯이, 그도 아는 사람이 두려울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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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우스 2004-04-29 1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책 이미지가 좀 그렇군요. 아름답기까지야....

갈대 2004-04-29 1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가 어떤 사정이 있었는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없어서 이렇다 저렇다 판단할 수는 없지만 분명 아이들에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준 것입니다.

마태우스 2004-04-29 1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쥴님/글쎄요. 불륜도 엄연히 사랑은 사랑인데, '걸려들었다'고 하시는 건 좀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님 말씀대로 '사고'는 사고긴 하지요.
갈대님/갈대님 말씀이 맞습니다. 아이들에게는 상처죠. 저도 부모님이 그러셨다면, 평생 원망했을지도 모르죠... 올리기 전에 좀 망설였습니다. 비난이 쏟아질 것 같아서요. 제가 바람을 피우는 게 옳다고 하는 건 아닙니다. 다만 놀 거 다 놀고 슬그머니 가정으로 복귀하는 것보다는 책임을 지는 게 낫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플라시보 2004-04-29 14: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 엄마는 아빠와 잘 살다가 내가 국민학교 5학년때 소위 진정한 사랑을 만났고 그 사랑을 찾아 이혼을 하셨습니다. 자식된 입장에서는 분명 고통스러운 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엄마는 그 이후에도 진정한 사랑을 더 찾으셔서 도합 3회의 이혼을 하셨습니다.(4번이었나? 기억이 하핫..) 엄마의. 즉 나도 한 사람의 인간이라는 입장에서는 별로 맞지 않은 상대와 결혼을 했다고 해서 꾹 참고 사는 것에 대해서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자식이 있다면 조금 달라지죠. 물론 내 동생처럼 쿨한 인간은 아니지만 저처럼 소심하고 내성적이었던 인간에게는 꽤 무거운 짐이었더랬습니다. 다행히 지금은 엄마를 이해하고 또 지난 시절이 지나가 버린 만큼 아무렇지도 않지만 자식이 있다면 신중해야 할 일임에는 분명합니다. 부부만 가정에 관해 권리가 있고 자식들은 그들이 하는데로 그냥 얌전히 공부나 잘 하면 되는 존재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당시 제가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니들은 그냥 아무 걱정말고 공부나 열심히 해라' 였습니다. 그 비현실적인 말은 마치 저에게 신이 되란 소리나 마찬가지로 들렸습니다.)

마태우스 2004-04-29 14: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플라시보님/경험에서 우러나온 님의 말씀이 제 글보다 훨씬 더 공감이 가는군요...

마태우스 2004-04-29 14: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쥴님/아, 제가 오해를.... '걸려들었다'는 님의 말씀이 그 여자분을 비하하는 뜻으로 들려서요. 님, 말씀 참 잘하시네요. 인생에 대해 많이 깨달으신 분 같습니다. 님의 말씀이 전적으로 옳습니다.

가을산 2004-04-29 15: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 동기들도 여럿 이혼했습니다. 사정과 배경은 다 달랐지만...
결혼과 이혼... 특히 아이까지 있는 경우는 여러번 다시 생각해야 하겠죠. 그 속내도 제삼자가 어찌 제대로 알겠어요?
(혹시, 친구분 이혼 '당하신' 건 아닌지요? ^^;; )

저의 경우는 부모님이 이혼은 아니고, 어머니께서 일찍 돌아가셔서 아버지가 재혼하셨는데, 그런데도 트라우마가 남더라구요. 더 오래 전의 일인데도 플라시보님처럼 '아무렇지 않지' 못합니다.

다연엉가 2004-04-29 16: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로 이혼은 자녀들에게는 치유할 수 없는 상처를 남기더군요. 성장해서 아무렇지도 않다해도 무의식은 그렇지 않은 이들을 많이 보았거든요... 내가 낳은 자식이라 하더라도 남이며 하나의 인격체인걸 우리 어른들이 알면서도 자신의 일을 향하여(?) 그걸 무시하는 경향이 많더군요. 요사인 이혼이 너무 많은 관계로 이혼하지 말라가 아니라 그 사이의 자녀들에게 어떻게 하면 상처 입지 않게 받아 들이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겠지요.

한편으로 우리 가부장적인 세대의 어머니들처럼 맞으면서 자식을 위하여의 시대는 지났습니다. 여기에서의 맞으며에는 여러가지 사정이 있겠지요.
맞지 않은 사람과 사느니 이혼하는 편이 낫겠지만 장애는 참으로 많지요....
그 중 자식이 개입되면.......
궁시렁궁시렁 저도 제가 뭐라고 썼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플레져 2004-04-29 2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남일의 단편 사북장 여관의 내용과 흡사한 이야기군요. 가슴이 아릿한 이야기였죠... 2004 오늘의 소설에 있답니다...

비로그인 2004-04-29 2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주 식상한 부분이지만 들를때마다 많이 생각하게 되는 내용입니다. 5년차인 제가 아이를 안 낳는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능력도 안되지만... 아직도 상대를 잘 모른다는거죠^^ 남은자의 아픔을 다들 걱정하시군요. 걱정마십시요. 여직원은 또 다른 사랑을 찾아 떠날테니....

다연엉가 2004-04-30 0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폭스 걱정마 아기 낳아!!!!
나 지금 폭스 따라 다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