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 분야에서는 꽤 권위있는 기관에서 한번 일을 볼때마다 얼마만큼의 화장지를 쓰느냐는 설문조사를 한 적이 있다. 대부분이 1.0-1.5미터를 쓴다고 했지만, 나와 또다른 여자분은 1.5미터 이상에 체크를 했다. 설문의 문항이 1.5미터가 한계여서 그렇지, 3미터 이상이 있었다면 거기다 동그라미를 치지 않았을까?
그렇다. 난 휴지를 지나치게 많이 쓴다. 그게 내 지나친 결벽증의 소산이든 아니든, 내가 휴지를 많이 쓰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거기에 더해 횟수도 남들보다 월등히 많으니, 일년의 기간 동안 통계를 내본다면 남들보다 근 10배 이상의 휴지를 쓰지 않을까 싶다. 내 잠바 주머니, 그리고 가방에 70매자리 여행용 크리넥스가 두 개씩 들어있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한때는 "난 알레르기성 비염이라, 코를 자주 풀어야 해"라는 것이 내가 휴지를 많이 사는 이유였다. 그리고 그건 어느 정도 사실이어서, 조금만 상태가 안좋으면 하루에 휴지 한통을 다 쓰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하지만 무슨 영문인지 불치병이라고 하는 알레르기성 비염이 조금씩 완화되어, 최근 몇 년간은 아예 증상조차 느끼지 못할 정도가 되어 버렸다. 그러니 내가 사는 휴지의 80%는 다 일을 보기 위함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요즘엔 비데라는 게 나와서 휴지를 안쓰고도 뒷처리를 할 수 있는 모양이다. 우리집 화장실 한군데도 비데가 있어, 어머님은 늘 그걸 이용하신다. 어머니는 나한테 "너도 써봐. 편해"라고 권하시지만, 난 죽어도 비데는 쓰지 못하겠다. 물이 내 그곳을 적신다는 건 생각만으로도 기분이 나빠진다. 이런 게 관성인지도 모르겠지만, 휴지를 만드는 '유한킴벌리'가 잘나가고 있는 것은 하여간 내 덕이 크다.
휴지를 많이 가지고 다녀서 보람있었던 적이 가끔 있다. 지금도 기억나는 한가지 추억은, 평택에서 낮술을 마시고 서울행 버스를 탔을 때였다. 나랑 같이 생맥주 6천을 나눠마신 친구가 잘가라면서 미에로 화이버 하나를 건네줬고, 난 그걸 마시고 잠이 들었다. 30분쯤 지나서 잠이 깼다. 소변이 너무 마려웠다. 소변을 가장 잘참는 자세를 취하고, 허벅지를 열쇠로 찌르고, 별짓을 다해도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난 미에로 화이버를 마시고 거기다 일부를 해결했다 (사람이 그다지 많지 않았고, 범행장소인 뒷좌석 부근엔 아무도 없었다). 그걸 휴지에 따르고 또 조금 싸고... 물론 바닥에 흘린 것도 없진 않지만, 뒤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아는 사람은 한명도 없었다. 그렇게 휴지 두통을 쓰면서 버티던 끝에 버스는 터미널에 도착했고, 난 소변기 앞에 서서 십분간 소변을 봤다. 기사 아저씨께 좀 세워 달라고 말했어야 했지만, 자리에서 일어나느라 붙잡은 손을 놓아 버리면 무슨 사태가 벌어질지 몰랐다. 휴지가 없었다면 과연 어떻게 되었을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휴지는, 다다익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