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르는 분이 더 많겠지만, 굴에 사는 기생충이 있다. 이름하여 참굴큰입흡충. 양식 굴에는 물론 이 기생충이 없고, 일반 굴 중 목포 쪽에서 나는 것만 이 기생충을 가지고 있다. 내가 기생충학을 선택했을 때는 이 기생충이 발견되어 사람들이 마구 흥분할 시기였다. 그도 그럴 것이, 그건 인체 기생충 중에서 생판 처음 보는 신종이었으니까.
발견 계기는 이랬다. 췌장염으로 입원중인 환자의 변에서 모르는 알이 나와, 환자에게 약을 먹이고 설사를 시킨 뒤 성충을 꺼낸 것. 췌장염의 이유는 모르지만, 환자는 하여간 회복되어 퇴원했다. 기생충의 이름은 발견한 사람 맘이니, 우리는 기생충학이라는 학문을 창시한 서xx 교수님의 이름을 따 Gxxxx. seoi(우리말로는 참굴큰입흡충)라고 명명했다(외국 사람들 중에는 그 '서'가 난 줄 아는 사람도 있는 모양이다).
이 기생충이 발견된 것은 분명 경사에 가깝다. 연구할 때 가장 어려운 것은 남이 안한 새로운 일을 하는 것인데, 뭣 좀 해보려고 논문을 뒤지다 보면 내가 하고픈 일은 몽땅 남들이 했다. 그것도 십년, 이십년쯤 전에! 그런 판에 새 기생충이 발견되었으니, 그걸 가지고 하는 일은 몽땅 새로운 일이 될 터였다. 그 기생충은 그런 식으로 많은 이에게 석사, 혹은 박사학위를 선사했다. 예컨대 전자현미경으로 찍어보니 이렇더라는 논문이 하나 나가고, 쥐에다 먹여 보니까 저렇게 되더라는 거 한편, 닭에게 먹이면-닭에만 먹이면 양심상 안되니, 닭, 오리, 햄스터 등 여러 동물을 같이 먹인다-요리저리하다는 거 한편, 환자 사는 동네에 가서 걸린 사람이 또 있는지 조사한 거 한편..... (참고로 전자현미경으로 찍어서 석사를 받은 사람은 바로 나다!)
문제는 이 기생충이 그다지 사람에게 해롭지가 않다는 거다. 우리가 하는 일 중 하나가 한사람에게 몇마리의 기생충이 들어있는가를 보는 건데, 이만, 삼만, 심지어 십만마리가 걸려 있어도 별 문제없이 잘들 살고 계신다는 거다. 쥐에게 먹이면 죽지는 않더라도 괴로워는 해야 할텐데, 언제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이 잘 노는 걸 보면, 확실히 이 기생충은 병원성이 별로 없는 모양이다. 쥐에게 먹여서 장을 꺼내 봤더니 별로 나빠진 게 없다는 논문도 한편 있다. 그래서 우리가 그 기생충을 가지고 이거, 저거를 하는 동안, 다른 사람들은 그것에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다. 학회에서 그걸 가지고 발표를 하면 질문도 잘 안나왔다. "질문이나 코멘트 있습니까?"라고 하면, 그저 썰렁했다. 급기야 내 지도교수는 이런 말씀을 하셨다. "나 이제 그거 안할래! 재미 없어!"
순전히 나만의 생각인데, 그 기생충을 가지고 일을 하던 십년은 그야말로 '잃어버린 십년'이 아닐까 싶다. 남들은 세계와 경쟁하는 동안, 우리는 그걸 가지고 우려먹기만 했으니까. 물론 거기에는 '나'라는 무능력한 인간의 힘이 컸다. 연구에는 별 열의를 보이지 않고, 교수님과 죽이 맞아 맨날 술만 먹으러 다녔으니까. 내가 천안으로 내려온 뒤, 모교가 급속히 발전하기 시작한 건 그러니까 우연이 아니다. 내가 거기서 얼쩡거릴 때까지는 별로 없던 외국논문이 왕창 쏟아지기 시작했다. 심복에게 들으니 내 지도교수가 '외국잡지에 가장 논문을 많이 실은 베스트 3'에 들어 상을 받았단다. 거기에 더해, 우리 과가 학교 내에서 가장 외국논문이 많은 과로 뽑혔다고 한다(작년 실적이 3,40개쯤 되는 모양이다). 축하드릴 일이다. 그게 다 버릴 것을 빨리 버리고, 능력없는 제자와 결별한 덕분이 아니겠는가?
한편으로는 부럽고, 한편으로는 죄송하다. 여기에 온지 벌써 몇 년인데, 그럴듯한 외국논문을 하나도 만들지 못했을까? 빨리 로또가 되어 소원대로 커다란 책방을 열었으면 좋겠다. 참고로 지난주에도 난 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