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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 에어 납치사건
재스퍼 포드 지음, 송경아 옮김 / 북하우스 / 2003년 7월
평점 :
절판
문학은 인간의 상상력이 마음껏 작동하는 공간이다. 어느 정도 그럴듯해야 한다는 전제가 있긴 하지만, 문학에서만큼은 불가능이란 게 없다. 자동차가 하늘을 날고-<해리포터>-화석에 포획된 곤충으로부터 공룡을 만든다(주라기공원). 이런 상상력은 실제로 과학기술의 진보에 영향을 끼쳤다는 게 과학에 문외한인 나의 생각이다.
하지만 상상력의 발전은 독자의 기대수준을 따라잡지 못하며, 아무리 충격적인 것도 오래지 않아 식상한 것이 되어 버린다. 나름의 상상력을 동원한 작품이라 할지라도 어디선가 한번은 본 듯한 생각이 드는 것이 작금의 현실, 누군가가 "하늘 아래 더 이상 새로운 것은 없다"고 탄식한 것도 그래서일 것이다. 이 책, <제인에어 납치사건>은 분명 기발한 상상력에 바탕을 둔 스토리다. 책 속에 들어가 주인공을 납치하고, 그럼으로써 책의 내용이 싹 바뀌어 버린다는 아이디어는 분명 기발하다. 하지만 책에 들어가는 것은 내가 어릴 적에 본 <메리 포핀스>와 비슷하고, 원본을 훼손함으로써 내용이 바뀌는 것은 십여년 전에 본 <백투더 퓨처> 생각이 난다. 타임머신을 다룬 모든 영화.소설이 단지 과거를 보고 오는 것에만 만족했다면, 스필버그의 그 영화는 과거가 바뀌면 미래가 바뀐다는, 얼핏 당연해 보이는 결말을 제시했는데, 그 이후 나온 타임머신 관련 영화들은 죄다 스필버그의 결말을 따르고 있다. 그러니 이 책이 그다지 충격적으로 느껴지지 않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그렇다고 이 책이 재미가 없다는 건 아니다. 흥미롭게 씌여지지 않았다면 550페이지에 달하는 이 책을 그렇게 금방 읽을 수는 없었을게다. 문학 작품이 많이 나열되는 초반부는 다소 지루했고, 그것들 중 내가 읽은 게 거의 없다는 사실이 부끄럽다. 특히 이 책의 제목에도 나오며, 책의 핵심을 이루는 <제인에어>를 읽었었다면 이 책이 훨씬 더 재미있게 읽히지 않았을까 탄식해 본다. 도대체 중고교 때 난 뭘 한 걸까? 과외마저 금지되어 할 일이 없었던 시절이었는데 말이다. '책을 읽어야 한다'는 사실을 강압적으로 주입받는 대신, 왜 읽어야 하는지, 책을 많이 읽으면 어떤 좋은 점이 있는지를 진작 깨달았다면, 내 정신세계는 지금처럼 빈약한 상태에 머물고 있지 않을텐데. 그래서 난 어린애들을 보면 늘 이렇게 말한다.
"책 많이 읽으면 손에 물 안묻히고 살 수 있다"
참고로 술에 취한 채 이 책을 읽다가, 기차에 놓고 내리는 비극적인 사태가 발생했다. 다음날 분실물 센터에 가보니 들어온 책은 없단다. 좌절하고 있었는데 다음날 오후, 어떤 천사가 나타나 도서상품권을 몇장 줬고, 그걸로 절반쯤 읽었던 이 책을 다시 샀다. 그 천사는 혹시 샬럿 브론테가 아니었을까? 좌우지간 술에 취하면 책같은 건 꺼내지 않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