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친구는 (주)대우에 다녔다. 그게 나랑은 별 관계가 없다고 생각했지만, 대우의 전 사원이 일년에 대우차 4대를 팔아야 한다는 명령이 시달된 이후부터, 난 대우차를 사라는 그의 강요에 시달려야 했다. 아버님이 타던 차가 4년이 지났다는 제보를 들은 그날, 밤 10시가 넘어 팜플렛을 들고 우리집을 찾았는데, 그 친구가 간 뒤 어머님은 이러셨다.
"밤늦게 온다기에 난 문병 온 줄 알았다(그땐 입원과 퇴원을 반복할 때였다)"
현대 차를 팔러 왔다면 얘기가 다르겠지만, 다른 차 다 놔두고 왜 대우차를 타겠는가? 그가 준 카탈로그의 차들 대신 소나타 II를 사고나서, 난 차를 산 사실을 최대한 숨겨야 했다. 그의 아버님은 대우의 고위직, 아버지의 덕으로 출세하고 싶지 않았던 그 친구는 대우 입사를 한동안 거부했었는데, 그럴 줄 알았으면 좀더 강력하게 말릴 걸 그랬다. 참고로 지금 그 친구는 창업을 해 사장 자리에 있는데, 몇 달 안에 문을 닫는다고 한다. 잘 되야 할텐데....
전에도 말했던 내 남동생, 엘지에서 바닥재를 파는 일을 한다. 바닥재 깔 일이 있으면 덕 좀 보겠구나 싶었는데, 작년부터 019로 바꾸라고 사람을 괴롭힌다. SK쯤 다니면 얘기가 달라지겠지만, 그런 걸 강매하는 곳은 대부분 영업이 잘 안되고 품질도 안좋은 곳이라, 주변 사람이 골치가 아프다. 그래도 주변에 다단계를 하는 사람이 없는 게 천만다행이다. 이밖에도 중앙일보에 있는 내 친구는 내게 신문을 봐줄 것을 요구해 일년 반쯤 보다가 끊었고, 무슨무슨 잡지사에 다니는 친구들 덕분에 팔자에 없는 잡지를 여러권 봤었다.
친구 하나는 출판사에 있다. <화첩기행>을 냈던, 그래도 책을 성의있게 만드는 출판사에 몸담고 있던 그 친구는 재작년인가 출판재벌 <xx사>의 편집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전두환의 아들이 운영하는, 필시 전씨의 검은 돈이 들어갔을 그 출판사와 거래를 한다는 건 별로 내키지 않는 일이라, 그 출판사의 책을 사는 것도 꺼리곤 했다. 그래서 난 내 원고가 여러 군데서 뺀찌를 맞았을 때조차 그 친구 생각은 한번도 한적이 없는데, 그런 걸 전혀 모르는 그녀는 날 볼 때마다 "우리 출판사서 책 좀 내라"고 권유를 했다. 농담인 줄 알았는데 끝내 다른 곳에서 나온 내 책을 받아들고는 왜 자기한테는 연락을 안했냐고 하더니만, 기획안을 짤 테니까 같이 일을 하잔다. "너희 출판사에 손해를 끼칠 것 같고, 미리 돈받고 일하는 건 체질에 안맞고.."라며 완곡하게 거절했더니, 화를 낸다.
"남이 성의있게 부탁하면 좀 들을 줄도 알아!"
아, 머리가 아프다. 그녀에게 사실대로 말할 수도 없고-난 검은돈으로 일어난 출판사는 싫어!-호의로 한 부탁을 계속 거절하기도 뭐하고. 위에서 열거한 친구들의 문제는 다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이었던 데 반해, 이건 신념의 문제라 더더욱 들어주기 어렵다. 다른 좋은 출판사도 많은데, 그녀는 왜 하필 <xx사>에 몸을 담고 있는 걸까? 왜??
* 일단 담주쯤 만나기로 했다. 물론 난 거기랑 일할 생각이 없지만, 그녀가 나의 팬을 자처하는 미녀 편집자를 데리고 나온다는데, 어찌 거절만 하겠는가? 즐겁게 술이나 마시련다. 홀짝홀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