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전야
산도르 마라이 지음, 강혜경 옮김 / 솔출판사 / 2004년 3월
평점 :
품절


<이혼전야>, 제목이 흥미로워 주문을 했다. 읽힐 날만 기다리는 책들을 제끼고 이 책이 4월의 첫책으로 선정된 이유는 책 스타일이 요시모토 바나나랑 비슷해서다. 크기가 작고, 페이지수가 얼마 안되는. 그래서 1박2일 세미나 기간 중 가뿐하게 읽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읽다보니 그리 만만한 책은 아니었다. 문체가 좀 지루한데다 페이지수도 260페이지나 된다. 그래서 세미나 기간을 넘긴 오늘 아침, 겨우 읽었다.

다음날 있는 이혼재판의 명단을 본 판사는 번민에 휩싸인다. 남자는 대학 동창생이고, 여자는 만난 적이 있는 여자. 판사의 생각에 그 여자는 "눈에 띄게 용모가 수려했다. 아니 정말 아름답다고 표현해도 지나침이 없을 정도"였단다. 게다가... "그래, 분명히 부드럽고 고운 목소리였어"
프로포즈를 하려다 용기가 없어 못한 판사는 그녀가 "결혼한다는 사실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그런 여자가 이혼을 한다니, 판사의 마음이 얼마나 심란하겠는가. 여기까지 읽으면 이 책의 줄거리가 대충 상상이 간다. 판결이 끝난 뒤 여자에게 접근해 "그간 고생 많이 했죠? 이제 제가 지켜드리겠습니다"라면서 점심을 제안하고, 그러다 불륜의 늪에 빠지는 거지 뭐. 첫눈에 반했던 여자를 잊지 못하는 건 남자의 속성이지 않는가.

물론 판사의 부인이 "그녀를 본 사람들은 아름다움에 눈을 뗄 줄 몰랐고, 진지하게 그리고 넋을 잃은 채 바라보곤" 할 정도의 미모에다, "몸매 관리에 무심했음에도 불구하고...흠잡을 데 없이 완벽"한 몸매를 가지고 있는 여성이긴 하지만, 미스코리아 아내를 두고도 별로 안이쁜 여자와 바람을 피우는 게 바로 남성, 이쯤되면 매우 흥미진진해진다. 하지만 뒷부분의 전개는 내 기대를 배신해, 전혀 다른 방향으로 얘기가 펼쳐진다. <이혼전야>라는 제목처럼 딱 하루의 얘기를 다룰 뿐, 재판 이후의 일은 아예 나오지도 않는다. 불륜이라면 눈이 번쩍 뜨이는 나의 속물성은 여지없이 배신당한다. 우리나라 드라마 작가들이 맨날 뷸륜드라마만 만들어내는 건 나같은 사람을 위해서리라. 한발 더 나아가 작가인 산도르 마라이는 극중 주인공인 판사의 입을 빌어 이혼하는 사람들을 "정신병 환자"로 표현하고, "병든 몸들이 완치될 수 있는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일갈한다. 뭐 이런 사람이 다 있냐 싶지만, 그가 성장한 1920년대라면 뭐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전개도 그렇지만 결말 역시 내 예상을 한참 벗어나, 진실한 사랑이라는 게 뭔지에 대해 생각을 하게 해준다.

책을 보면 판사의 아버지가 총을 들고 자살하려는 장면이 나오는데, 작가 소개에 나온 "뉴욕에서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는 구절을 읽고난 뒤라 여운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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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4-04-03 1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후기: 그 부부는 결국 이혼을 해서, 호적의 '처'란에서 제적을 시켰다. 처는 복적을 할까하다가 친정에 누가 되지 않고 자유롭게 삶을 구가하고자 일가창립을 했다. 그후 판사와 그녀는 한차례 만났지만 밥만 먹고 헤어졌다...이를 안 판사의 부인은 심기가 불편하여 몇일동안 남편에게 바가지를 긁다가 결국 이혼신고서를 작성하였지만, 제출은 보류하고 있다고 한다.

마태우스 2004-04-03 1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나, 파란여우님. 제가 원하는 시나리오가 바로 그거였답니다^^

비로그인 2004-04-03 18: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파란여우님 멋~쟁이!!!

이리스 2004-04-13 12: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야, 파란여우님, 저도 그런 결말에 한 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