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양과목 수업을 했다. 내가 의대 사람 이외의 학생을 가르친 건 이번이 처음인데, 강좌 제목이 <한국인과 건강>이어서 내 강의의 소제목을 <한국인과 기생충>으로 정했고, 기생충에 대한 편견을 버리고 공존하자는 뻔한 레퍼토리를 가지고 삼십분을 떠들었다. 하지만 슬라이드로 보여주는 기생충 사진에 비명이 난무하는 걸 보면, 별로 공존할 것 같지는 않다.

그리고... 이왕 수업을 한김에 두명을 뽑아 내가 이번에 낸 책을 싸인해서 줬다. 그 두명을 뽑는 걸 어떻게 할 것인가 고민을 하다, 수도 이름을 맞춰보라고 했다. 먼저 벨기에를 물었다. 답은 브뤼셀이건만, 강의실은 썰렁했다. 너무 어려운 걸 물었다 싶어 브라질을 물었다. 많은 이들이 손을 들었다. 놀랍게도 그들은 쌍 파울로라고 한다. 물론 답이 아니다.

강의가 끝난 후, 아는 사람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브라질 수도를 글쎄 상 파울로로 알고 있더라고" 그랬더니 곧 답이 왔다. "크크" 갑자기 의혹이 일었다. 얘는 알까? 웃는 그에게 전화를 했다.
"뭔데?" "리오 데 자네이로잖아!"

<나는 니가 지난 여름에 한 일을 알고있다2>를 보면, 나쁜놈이 주인공을 섬으로 유인하기 위해 라디오 프로인 것처럼 전화를 한다.
"축하합니다. 여름 특별여행 퀴즈에 뽑혔습니다. 문제를 맞추면 공짜로 xxx 섬 여행을 보내드립니다"
흥분한 주인공은 "리...리..."만 연발하다, 컵에 씌여진 글자를 보고 답을 말한다. "리오 데 자네이로!"
그러자 답을 맞췄다면서 여행권을 보내주겠다고 하고, 그들은 음산한 분위기의 섬으로 여행을 간다. 나중에 살인자는 칼을 들고 그녀를 죽이려고 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브라질의 수도는 브라질리아야!"

브라질도 틀리자 좀더 쉬운 걸 냈다. "룩셈부르크의 수도는?" 한 학생이 맞췄다. "룩셈부르크" 그에게 한권을 줬고, 기생충을 한번도 본 적이 없다는 남학생에게 또한권을 주고 이벤트를 마쳤다.

난 수도이름을 제법 잘 아는 편이다. 나같은 애가 가끔씩은 있어, 그런 애들끼리 만나면 피튀기는 접전이 벌어진다. 아르헨티나(부에노스 아이레스)나 칠레(산티아고)같은 쉬운 나라는 아예 묻지도 않는다. 파라과이-아순시온, 베네주엘라-카라카스, 불가리아-소피아, 페루-리마, 이런 식으로 우리랑 거의 왕래가 없고 멀기만 한 나라들을 서로 물어보며 자웅을 겨룬다.

그런데, 요즘 학생들은 어쩜 벨기에처럼 쉬운 나라도 모를까?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당시 우리가 수도이름대기 같은 걸 하고 놀았던 이유는, 달리 놀만한 게 없어서였는지 모른다. 지금 애들이야 어디 그런가. 컴퓨터가 있고, 각종 장난감도 우리가 꿈에서나 그리던 것들, 그런 환경에서 고리타분하게 수도나 외우고 있을 수야 없다. 스위스에서 가장 큰 도시는 제네바지만, 수도는 베른이라는 것, 이스라엘의 수도가 예루살렘이 아니라 엔테베라는 것, 이런 것들을 알아서 도대체 무슨 이득이 있담? 중요한 것은 수도가 어디 있느냐가 아니라, 한번이라도 거길 가봤냐가 아닐까? 수도를 모르더라도, 외국에 다녀온 경험이 있는 요즘 애들이 우물 안 개구리로 살아온 나보다 훨씬 더 나은 게 아니겠는가?

공상으로만 하는 지식은 죽은 지식이다. 요즘도 가끔 수도이름 대기를 하지만, 그런 내기는 아마도 우리 세대가 마지막이 될 것 같다. 이왕 말이 나온김에 몇가지만 더 적어본다. 뉴질랜드는 웰링턴, 에이레는 더블린, 방글라데시는 데카. 이름대기가 아니면 이 지식을 어디다 써먹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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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우맘 2004-03-26 18: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어릴 때 꽃이름 대기 많이 했던 것 같아요. 그거 많이 대려고 <컬러 대백과 사전>을 무수하게 뒤졌지요.^^;;;

비로그인 2004-03-26 18: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릴적에 부루마불 한참 할때는, 각국의 수도 이름을 좍좍 댈 수 있었는데요~ 그런면에서는 좋은 게임이었던거 같아요. ^^ 수도 이름 대기 놀이하면서도 실력이 엄청 늘었더랬는데, 이젠 저두 거의 다 잊어버렸다는...^^;;

비로그인 2004-03-26 18: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기다 써먹고 있으면서 뭘~~그래요!! 진짜 뿐빨해야겄네요.

플라시보 2004-03-26 19: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국민학교 다닐때 사회 시간에 수도이름 외운것 같아요. 그때 어느나라 수도인지는 몰라도 '카트만두'가 제일 기억에 남는군요. 네팔이나 뭐 그런곳 같은데... 아무튼 저도 이제는 수도 이름은 거의 다 까먹어서 기억나는게 없습니다.

비로그인 2004-03-26 2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끙....암데나 책 펼치곤, 사람 머릿 숫자 세서, 많이 나온 사람이 적게 나온 사람 심부름 시켜 먹기 뭐 이딴 짓이나 하던 제 어린 시절이 너무 부끄럽군요....... 각성..... 각성.....

연우주 2004-03-27 0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수도 이름 거의 모르는데요. 가끔 수도 이름 대기 같은 거 하자고 하는 시대착오적인 발상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런 경우 뭐라는겨 시방? 하면서 무시해줬었는데, 마태우스님이 그 분이셨군요...^^ 중고등학교 때 배운 지리만으로도 충분히 괴로왔어요~~~ 괴롭히지 마세요..ㅠ.ㅠ 엉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