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달 후 총선에서 심판하자!" 요즘 흔히 들을 수 있는 말이다. 말도 안되는 사유로 탄핵을 가결시킨 국회의원들에 대해 준엄한 심판이 내려져야 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그런데 구체적으로 어떻게 심판을 내려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모두들 언급을 회피하고 있다.
탄핵안 가결에 찬성한 193명의 의원들을 국회의원직에서 끌어내릴 수 있다면 좋겠지만, 현행 제도하에서 유권자는 후보와 정당에 각각 한표씩을 던질 수 있을 뿐이다. 이게 문제다. 국민이 새로운 정당을 만들 수 없는 한, 유권자은 기존 정당들 중에서 하나를 택할 수밖에 없다. 한나라당과 민주당, 그리고 자민련을 뺀다면 남은 정당은 열우당과 민노당밖에 없다.
문제는 이들 정당에 표를 던지는 것도 그리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 민노당의 청렴함이야 충분히 인정하지만, 민노당은 아직까지 한석의 의석도 없으며, 이번 총선에서 제1당이 되기보다는 아직은 원내에 진입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는 듯 보인다. 내가 있는 친구들만 사귀어서 그런지 몰라도 피부로 느끼는 민노당에 대한 거부감은 상당한 수준이라, 얼마나 의석을 얻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열우당을 찍으란 말인가? 그것 역시 쉽지 않은 결정이다. 열린우리당이라고 기존 정당과 크게 차별화된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유야 어찌되었던 민주당 분당도 별로 잘한 일은 아니며-물론 난 그게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열우당 역시 불법 대선자금의 사슬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번에 공천한 인사들도 납득이 안가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특히 이만기...). 게다가 집권 1년간 노무현이 보여준 모습이 만족할 만한 것도 아닌지라, "탄핵심판을 위해 총선 때 열우당을 1당으로 만들자!"라는 해법에 고개를 갸우뚱거릴 사람이 많을 것 같다.
선거 때마다 그랬지만, 민노당 지지자들은 이번에도 비판적 지지의 망령에 시달리고 있다. 총선이 다가오면 나같은 극렬분자들이 '한나라당이 1당이 되어선 안된다'면서 민노당 지지자들이 '현명한 판단'을 해줄 것을 요청하지 않겠는가? 그래서인지 민노당 지지자들은 "탄핵에는 반대하지만 노무현이 민주주의의 화신 쯤으로 승화되는 것도 말이 안된다"고 말하고 있다. 지금은 '탄핵반대'라는 구호아래 하나로 뭉쳐있지만, 그래서인지 그 연대가 다소 불안해 보인다. 확실한 대안세력이 있었던 4.19 이후와 달리-민주당은 그당시 거의 전 선거구에서 승리했다-지금처럼 복잡한 정치지형에서 탄핵심판의 해법은 아리송하기만 하니까.
여론의 역풍을 각오하면서까지 탄핵을 가결한 한민당의 속셈도 거기서 비롯되지 않았을까? 게다가 지역감정에 의해 왜곡되어 온 우리나라의 선거풍토도 탄핵심판을 헷갈리게 만들 것이다. 열우당이라는 또다른 대안이 있는 호남과 달리, 수십년간 한나라당(민정당-민자당-신한국당)에 표를 몰아줬던 영남 유권자들은 '미워도 다시한번'을 외치지 않을까 싶다. 많은 이들이 4.15 총선에서 한나라당의 1당 가능성을 높이 보는 것은 그런 이유이리라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한다).
이번 주말도 난 광화문에 있을테고, 연단에 선 인사들의 선창을 따라 '탄핵반대, 민주수호'를 외칠 테지만, 탄핵심판의 해법을 생각하면 머리가 아프다. 당장 나부터도 총선에서 어떤 선택을 해야할지 헷갈리고 있으니까 말이다.
* 오늘 아침 신문을 탄핵반대로 도배한 한겨레가 탄핵 때문에 이민가려는 사람이 부쩍 늘었다고 보도한 걸 보니, 더더욱 심란하다. 노무현 집권내내 조선일보가 "노정권에 실망해 이민가는 사람이 많다"고 선동하지 않았던가? 이민은 비교적 오랜 시간에 걸쳐 결심하는 것일진대, 탄핵이 가결되자마자 이민을 가겠다는 사람이 도대체 얼마나 된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