썸데이 서울
김형민 지음 / 아웃사이더 / 2003년 12월
평점 :
절판


아웃사이더라는 출판사가 있다. 거기서 펴내는 잡지는 물론 출간되는 단행본들도 많은 가르침을 주는 좋은 책들인데, 내가 '김형민'이라는, 생전 들어보지 못했던 사람의 책을 망설임 없이 주문한 까닭은 출판사에 대한 믿음 때문이었다. 아웃사이더에서 낸 책을 사는 게 사회의 진보에 소극적이나마 기여한다는 생각도 없진 않았다.

목차를 보다보니, [굿모닝 광해군]이라는 제목이 눈에 들어온다. 어? 이거 전에 읽었던 글인데? 그 글을 읽고 소름이 끼쳤느니, 가슴이 후련했느니 하는 감상문을 어딘가에 적었던 기억도 난다. '산하'라는 분이 그 글을 썼었고, 글에 반한 분들이 여기저기 퍼날라 나에게까지 전달되었었지. 그런데 책날개의 설명을 보니 작가는 '산하'라는 필명으로 인터넷 게시판을 돌아다니기도 합니다'라고 씌어 있다. 아, 그렇구나. 날 감동시켰던 그분이 SBS 피디인 김형민님이구나. 무명 작가에 대해 가졌던 한줄기 불안감은 이미 사라졌고, 난 연방 고개를 끄덕이며, 혹은 스스로를 자책하며 책을 읽기 시작했다.

PD는 원래 글을 잘써야 하는지, 아니면 이 분만 유독 잘쓰는지 모르겠지만, 김형민이라는 사람, 너무나도 글을 잘썼다. 사실 글 잘쓰는 사람은 제법 많다. 중요한 것은 그 글재주를 이용해서 무엇을 하느냐일 것이다. 내가 싫어하는 어느 소설가처럼 수려한 문장력을 발휘해 가부장의식에 충만한 조선조 여인을 무덤에서 불러내고, [술단지..]처럼 소설을 사적 복수의 수단으로 삼는다면 그가 지닌 글재주는 사회를 후퇴시키고, 그의 글이 주는 미덕보다 몇배의 해악을 가져오기 마련이다. 하지만 김형민님은 뛰어난 글재주를 능가하는 아름다운 정신을 글에 실어보내, 읽는 사람에게 감동과 부끄러움을 느끼게 해준다. 70년생, 나보다 나이는 어리지만 그는 내게 많은 깨달음을 준 스승이다. <아웃사이더>에 대한 믿음은 헛되지 않았다.

그는 살아오면서 겪은 경험을 토대로 우리 사회에 대해 발언하는데, 그가 겨누는 비판의 화살은 진보와 보수를 가리지 않는다. 대부분의 이야기가 다 감동적이지만, 개인적으로는 이 구절이 가장 마음에 와 닿는다.

['노동자는 하나다' 과거 이 말이 진리임을 증명해준 것은..노동의 반대편에 선 사람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노동자 스스로 노동자가 하나임을 증명해야 할 때가 온 것 같습니다. 그 증명이 멋지게 이루어져 나가기를 기대합니다 (186쪽)]

현재 노무현의 처지를 무신정권 때 집권했던 경대승에 처지에 빗대 말한 '내 이름은 경대승이다'는 노무현에게 쏟아졌던 그간의 비판글 중 가장 공감이 가는 수작이다. 노무현을 향해 경대승은 이렇게 말한다. '무릇 나라를 망치는 것은 악함이 아니라 어리석음이다'라고.

400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이지만 글이 주는 흡인력에 빠져들어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게 되는 책인데, 유익한데다 재미마저 있으니 이런 책을 읽지 않는다면 도대체 무슨 책을 읽을 것인가? 12,000원의 책값보다, 요즘 잘나가는 <아첨형인간>보다, 내 단골 [벽돌집]의 안창살 2인분보다, 몇십배, 몇백배의 감동을 여러분께 선사할 것임을 확신하는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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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 2004-03-02 14: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우스님 리뷰 믿고 샀습니다. ^^

마태우스 2004-03-08 2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마...믿으셔도 될 것으로 사료됩니다...(속으로는 무섭지만..)

야옹이 2005-04-10 14: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님 리뷰를 이제서야 보고 넘넘 사고 싶어 찾아봤더니만, 품절이 돼버렸군요..
아쉬워요^^

인터라겐 2005-09-28 1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웃사이더 출판사가 믿음을 주는 곳이군요... 보고 싶은데.. 아쉬워요..

비로그인 2006-05-20 22: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님 리뷰 믿고 삽니다... 품절이 풀렸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