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정화가 주연을 맡은 영화 <베스트셀러>는 표절시비에 휘말린 작가가 겪는 이야기를 다룬다. 무서운 영화는 싫다고 도리질을 하는 아내를 구슬러 극장에 끌고 갔건만, 영화는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무서웠고, 그래서 “것봐! 내가 안간다고 했잖아!”라고 볼멘소리를 하는 아내에게 구박을 받아야 했다. 그렇긴 해도 아내와 함께 가길 다행인 것이, 그 무서운 영화를 나 혼자 봤으면 밤에 잠도 안왔을 거다. <불신지옥>이란 영화를 보고 난 뒤 일주일간 후유증에 시달려야 했지 않은가?

극중에서 엄정화는 베스트셀러 작가인데, 심사를 했던 작품을 표절한 혐의로 고초를 겪는다. 문단은 물론이고 독자들도 작가를 비난하고, 심지어 9시 뉴스에선 앵커가 “우리나라가 무슨 표절공화국이라도 되느냐”며 혀를 찬다. 이 대목을 보면서 난 우리 현실이 영화의 반만큼이라도 됐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한참 전 신모 작가가 <참외밭>의 표절시비에 휘말렸을 때 언론은 물론이고 문단도 침묵을 지켰다. 나처럼 문학판에 관심이 있던 사람이 아니면 그런 일이 있는지도 몰랐는데, 그래서인지 신작가는 자신이 표절했다고 주장한 문학평론가에게 신문지면을 통해 반박을 했다.
“내 불찰이 약간 있었지만 집요하게 따지는 넌 도대체 뭐하는 놈이냐?”
그 뒤를 이은 권작가의 표절시비는, 이건 순전 내 생각이지만, 그 작가가 조선일보가 후원하는 동인문학상을 받지 않았다면 불거지지 않았을 일이었다. 시골의사의 블로그에 있는 내용을 소설로 바꾸고, 몇 문단은 통째로 옮겨온 건 분명 표절이지만, 문단은 물론이고 한겨레를 제외한 언론들은 일제히 침묵했다. 이런 현실을 상기해보면 표절 작가가 완전히 사회로부터 추방되는 영화 속 상황이 훨씬 더 바람직하지 않을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영화를 보다가, 어느 순간 표절 작가의 대표 격인 전여옥 씨가 생각났고, 그 순간부터 더 이상 영화가 무섭지 않게 됐다. 영화 속 엄정화는 자기 힘으로 쓴 베스트셀러도 몇 권 있지만, 전씨는 오로지 남의 르포를 통째로 도둑질한 책 한권으로 지금의 위치까지 오른 거라는 점에서 죄질이 훨씬 더 나쁜데, 그런 사람이 오히려 자신은 당당하다고 큰소리를 치고, 맹자를 인용하며 “크게 될 사람은 시련을 겪느니” 어쩌니 하는 작금의 현실은 영화와 상대도 되지 않을 만큼 무섭다. 영화에선 남편마저 표절 작가를 멀리하지만, 현실 속에서 전씨의 남편은 부인한테 합세해 피해 당사자인 유씨를 협박하고, 대학생들이 표절작가를 비아냥대는 영화와 달리 할 일 없는 애들이 ‘전사모’인가를 만들어 표절 판정을 내린 판사들을 좌익이라고 욕하는 현실, 이 정도면 여느 스릴러도 따라오지 못할 만큼 엽기적이다.
영화에서 엄정화는 “난 그 책을 보지도 못했어!”라고 절규한다. 이건 스포일러지만, 영화를 본 관객들은 어떤 초자연적인 힘 때문에 그리 된 거라는 걸 알기에 엄정화를 동정한다. 자신이 억울한 피해자라며 절규하는 전여옥 씨, 당신이 그 책을 쓸 땐 대체 어떤 초자연적인 일이 벌어졌나요? 혹시 당신에게 피에르 메나르의 혼이라도 빙의된 건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