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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 긋는 여자 - 떠남과 돌아옴, 출장길에서 마주친 책이야기
성수선 지음 / 엘도라도 / 2009년 7월
평점 :
품절
광명에 있는 중학교에서 기생충에 대해 강의를 해달란다. 불러준 게 고마워서 그러겠다고 했다. 학교까지 가는 버스 안에서 <밑줄 긋는 여자>를 펴들었다. 그때만 해도 이 책에 아주 큰 기대를 한 건 아니었다. 이분의 첫 번째 책이 괜찮았기도 하지만, 나랑 아는 분이 낸 책이었다는 게 이 책을 산 더 큰 이유였으니까. 하지만 몇 장을 넘기고 난 뒤 난 내 생각이 잘못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돈가스에 얽힌 사연을 담은 첫 번째 글부터 재미의 쓰나미가 몰려왔으니 말이다. 놀란 나는 십여분쯤 더 읽다가 그분에게 문자를 날렸다. 정말 재미있다는 내용의 문자를. 이게 결코 예의상 하는 말이 아니었던 게, 그날 저녁 좋은 저자에 목마른 모 출판사 분과 술을 마시면서 내가 이런 말을 했기 때문이다.
"이 책 한번 읽어보실래요? 무지하게 재밌어요!"
<장정일의 독서일기>를 읽을 때 느끼던 바지만, 독서 에세이는 해당 책을 읽지 않으면 공감하기가 어렵다. 근데 <밑줄 긋는 여자>는 한 책에 대해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주제별로 거기에 맞는 책 몇 권을 예로 들면서 자기 경험담을 풀어놓는지라 가슴에 팍팍 와 닿았다. 예를 들어 "이 퍽퍽한 세상을 살아내야 하는 우리 모두에게는 지지와 격려가 필요하다"는 이 당연한 말도 저자가 친절한 설명을 곁들여 주니 훨씬 더 공감이 갔다. "누가 감히 우리 아이를?"이 입에 붙은, 자기 자식밖에 모르는 엄마를 내가 지지하게 된 건 이 책이 갖는 설득력의 결과다. 이렇게 공감을 많이 할 수 있는 책을 만나는 건 독서의 크나큰 즐거움 중 하나, 그런 즐거움을 준 저자에게 감사할 일이다. 게다가 저자는 강아지를 학대하는, 소개팅에서 만난 피디를 "다시는 만나지 않"을만한 아름다운 영혼을 가지고 있는지라 더더욱 마음에 든다.
난 독서에세이는 아무나 쓰는 장르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장정일 정도 되는 사람이면 모를까!"라는 게 평소 내 지론이었다. 지금도 그런 생각에는 변함이 없지만, 조금 바뀐 부분이 있다. "성수선 정도 되는 사람이면 독서 에세이를 내도 된다."고. 아니 "내야 된다"고. 서문을 보면 저자가 이 책을 쓰면서 얼마나 고생했는지 묘사가 되어 있다.
"주말 내내 오피스텔에 틀어박혀 혼자 글을 쓰고 혼자 밥을 먹을 때는 왈칵 서럽기도 했다."
그 노력은, 전혀 헛되지 않았다.
* 참고로 말하면 난 출판사 분한테 이 책을 드릴 때 반밖에 안 읽은 상태였다. 다 읽은 책도 다른 사람에게 안주는데 읽지도 않은 책을 남한테 준다는 건 내겐 이례적인 일이었다. 그래도 그렇게 한 이유는, 재미있는 책을 선물하는 게 커다란 기쁨이기 떄문이었다. 그리고 그 다음날, 난 우리 집 앞에 있는 서점에 가서 이 책을 달라고 했다. "있었는데 나갔다"는 사장의 말에 내 일인 것처럼 기뻤다. 홍대앞 동남문고에는 아쉽게도(?) 이 책의 재고가 남아 있었다. 한권을 사면서 "이번 주말까지는 모조리 팔려라"는 주문을 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