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6일, PM 6: 30
샤브샤브를 먹으러 갔다.
말고기, 양고기, 쇠고기가 국물과 함께 나왔다.
국물 맛이 이상하다며 사람들이 고개를 저은 반면,
내 친구는 맛있다면서 앞에 놓인 음식을, 심지어 옆 테이블 음식까지 먹어치웠다.
"난 몽골 음식이 체질에 맞나 봐. 아주 맛있게 먹었어."
그 친구가 정말로 부러웠다.
젓가락을 들고 먹는 척만 했는데,
누군가가 내게 묻는다.
"왜 아무 것도 안먹어요?"
어색한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내 깊은 속내를 당신이 어떻게 알겠어요?
4월 26일, PM 8: 40
피곤에 지치고 배도 고파 죽겠다.
호텔에 가자마자 밥을 해먹을 생각을 하며 스스로를 달랬다.
근데 우리를 인솔한 몽골어과 이 교수가 이런 말을 한다.
"술 먹으러 가야 하니까 지금부터 10분 후에 다시 호텔 로비로 나오세요."
10분이라니, 조리하는 시간이 8분인데 어떻게 그 안에 먹나.
내가 물었다. "15분은 안될까요?"
"그럼 너무 늦지."
호텔에 들어가서 햇반과 제육덮밥을 데웠다.
5분만에 뚜껑을 열고 먹기 시작했다.
밀려오는 포만감에 사는 건 역시 좋은 거라고 생각했다.
후다닥 로비에 내려가보니 아직 안온 사람이 셋이나 더 있었고,
정작 출발하기까진 그로부터 십분이 더 걸렸다.
가져간 장조림햄을 안주삼아 술을 엄청 먹었고,
졸린 눈을 비비며 호텔에 돌아왔다.
4월 27일, AM 7:00.
술을 먹고 푹 잤더니 아주 상쾌하다.
김치찌개 봉지를 뜯고 마술도시락에 부었다.
오늘밤 12시 비행기로 떠나니, 이게 마지막 아침이다.
다 먹고 나서 이틀간 먹은 쓰레기를 비닐에 쌌다.
롯데마트에서 얻은 큰 비닐이 다 찬다.
역시 인생은 먹는 거구나,는 생각으로 그 쓰레기를 바라보다
프론트에다 이르지 말라는 뜻으로 3달러를 침대에 올려놨다.
점심과 저녁을 먹을 요량으로 마술 도시락 두 세트를 가방에 챙겨넣었다.
4월 27일, AM 9:00
오늘은 몽골에 간 목적인 학회 발표날.
울란바트르 대학에 가서 총장을 뵜다.
그렇게 높은 사람이 친히 나와서 일일이 악수를 청하니, 좀 신기하단 느낌이었다.
하나씩 자기 소개를 하는데 총장이 날 보고 "몽골 사람 닮았다"고 놀란다.
확 기분이 나빴지만, 한-몽 관계의 개선을 위해 "영광입니다"라고 받아쳤다.
통역이 내 수준높은 덕담을 제대로 전했는지 모르겠다.
4월 28일, AM 10:50
총 13편의 발표가 예정되어 있는데 4번째가 내 발표다.
통역이 있는지라 우리말로 하면 되는 게 편했다.
발표에 앞서 이런 말을 했다.
"총장이 날더러 몽골사람 닮았다고 했다.
이곳에 와서 이상하게 고향에 온 듯한 친근한 느낌을 받았는데,
그 이유를 알게 되어 기쁘다."
이 고난도 유머에 다 쓰러질 줄 알았지만,
의외로 별로 웃지 않았다.
발표 중간중간에 끼워둔 촌철살인의 유머들에도 웃지 않는 걸 보면서
몽골과 내 유머 코드가 맞지 않는구나 생각했다.
같이 간 고고학자가 "정말 멋진 발표였다. 이런 재미있는 발표는 처음이다"고 해줘서
다행이었다.
더 다행인 것은, 날 비롯한 우리 팀의 발표를 듣고 몽골 사람들이 감명을 받아,
공동연구를 하자는 제안을 했다는 것.
특히나 몽골에서 출토되는 뼈의 대부분을 장악하고 있다는 여자 선생님이
내 이름을 거론하면서 "공동연구를 해보고 싶다"고 하니
총장이 몽골사람 닮았다고 한 것보다 열배쯤 기뻤다.
4월 28일, PM 12:00
점심을 먹으러 레스토랑에 갔다.
스테이크가 나오기에 내 옆 사람에게 덜어줬다.
사람들이 슬슬 내가 몽골음식을 못먹는다는 사실을 알아채는 것 같다.
다 먹고 나니 친구가 이런다.
"야, 난 몽골음식이 체질에 맞나 봐. 진짜 맛있는데?"
그 친구가 슬슬 얄미워진다.
4월 28일, PM 13: 30
가방에서 마술 도시락을 꺼냈다.
어디서 조리를 해먹을까 난감했다.
안내를 하는 학생에게 물어봤더니 학생식당을 추천해 준다.
구석자리에 앉아 물을 붓고,
햇반과 카레를 넣은 뒤 김이 솟는 걸 확인하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이제 먹어야지 하며 숟가락을 들었더니 다들 내 쪽을 보고 있다.
개의치 않고 밥을 먹었다.
이것도 자꾸 먹으니까 슬슬 질린다.
하지만 뭐, 오늘 밤이면 다시 우리나라로 돌아갈 수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