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은 신정을 쇤다.
그래서 오늘 본가에 갔더니 며칠 전과 똑같은 풍경이 펼쳐져 있다.
전을 부치는 제수씨, 그 옆에서 왔다갔다 하면서 다른 음식을 만드는 어머니 (내 아내는 몸이 안좋아 못왔다).
12월 23일이 아버지 제삿날이었기에 제수씨는 며칠 쉬지도 못하고 또 불려온 셈이다.
나: 엄마, 내년부터는 중국집에서 방 잡아놓고 제사랑 차례 지내면 안돼요?엄마: 그게 뭐냐. 정성이 없잖아.
나: 정성? 흠, 아버지 제삿날 아들, 딸은 왜 손하나 까닥 안하고 크게 관계도 없는 며느리 혼자만 죽자고 일하는가요? 이런 게 정성인가요? 그리고 그날 아버지 생각한 사람이 누가 있나요? 그것보다는 중국집에서 하더라도 아버지에 대해 글을 써서 책으로 묶어서 그날 돌리는 게 더 아버지 생각을 하는 게 아닌가요.
엄마: 길을 막고 물어봐라. 누가 중국집에서 제사를 지내는지.
나: 다른 사람 의견이 뭐가 중요해요? 며느리들만 죽자고 부려먹지 말고, 다들 편하게 앉아 아버지 생각하면 되지 않나요? 글구 제수씨 처음 우리집 왔을 때는 이미 아버지가 편찮으신 때였잖아요. 그래서 제수씨는 아버지한테 별로 이쁨도 못받았어요.
제수씨: 아니어요, 많이 예뻐해 주셨어요.
엄마: 에이 몰라. 나 살아생전은 안돼.
나: 엄마, 엄마 쪽 집안은 장수하는 유전자가 있어서, 95세까진 사실 거예요. 그럼 앞으로 25년간 며느리들을 부려먹겠다는 건가요? 명절 증후군이 뭔지 아시죠? 명절 즈음만 되면 숨이 탁 막힌다고요.
엄마: 영자야(제수씨 이름) 너 지금 숨이 막히니?
나: 그렇게 물어보심 솔직하게 대답을 못하죠.
엄마: 얘가 왜 이렇게 말이 많아? 네 각시 부려먹는 게 아까워서 그래?
나: 그 전에도 제가 쭉 인터넷으로 음식 시키자고 했었잖아요. 그리고 각시 좀 아끼면 안되나요? 제수씨를 보세요. 저런 자세로 하루종일 전만 부치면 허리에 무리가 와서 나중에 고생한다고요. 저렇게 한다고 아버지가 알아줄까요?
엄마: 그럼 며느리들 안부르고 나 혼자 하면 되겠다. 그럼 되지?
나: 아이고 엄마, 왜 이렇게 말을 못알아들으세요? 그리고 엄마도 이제 70이신데, 하루하루를 즐겁게 사셔야지 이렇게 허드렛일을 하시면 되겠어요?
엄마: 아이고, 저렇게 말이 많고 따지기 좋아하니, 지 각시는 얼마나 피곤할까. 관둬라 관둬.
어머니는 내 의견에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으셨다. 언제쯤일까. 중국집에 방을 잡아놓고 차례를 지내는 그날이. 제사 때 인터넷으로 주문하잔 얘기를 했을 때, 집에 싸갈 음식을 챙기던 누나는 “뭔 소리야. 그러면 정성이 없잖아”라고 했다. 그날이 오도록 내가 싸워야 할 상대는 어머니뿐은 아닐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