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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진 1
신경숙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5월
평점 :
'백년 전 프랑스에서 출간된 조선에 관한 책'에 얽힌 A4 한 장 반 분량의 실화는 작가 신경숙의 손을 거치며 두권짜리 소설 <리진>으로 다시 태어났다. <리진>이 어찌나 재미가 있던지 요 며칠간 난 아무리 피곤한 날에도 기차에서 책을 읽느라 잠을 자지 않았고, 술자리에서도 어서 집에 가서 책을 읽을 수 있기만을 바랐다. 1권에 비해 2권은 읽는 스피드와 열정을 다소 떨어지게 만들었지만, 2008년 새해를 <리진>과 더불어 시작하게 되어 비교적 만족한다. 신경숙이라는 선입견이나 베스트셀러에 대한 기피증 때문에 이 책을 안 읽는다면 아쉬울 뻔했다. 물론 내가 슈퍼맨 류의 영웅을 좋아하는 것도 이 책을 재미있게 읽은 이유일 것이다. 게다가 주인공이 절세 미녀니 내가 열광할 수밖에.
책을 읽으면서 뭐든지 배워놓으면 써먹을 데가 있다는 어른들의 말씀을 잠시 떠올렸다. 어릴 적 선교사한테 프랑스어를 배운 리진은 그에게 한눈에 반한 프랑스 외교관이 얼떨결에 "봉쥬르"라고 말했을 때, 유창한 발음으로 이렇게 대답한다.
"봉쥬르!"
그 말을 듣고나서 프랑스 외교관의 상사병이 한층 깊어졌음은 물론이다. 어릴 적 난 도대체 뭘 했나 잠시 생각을 해봤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별로 할 일도 없을 때 어머니가 애원을 하면서까지 배우라고 한 일본어를 한달쯤 배우다 때려치웠었지. 그 선생님도 "한 두달만 더 다니면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는데"라며 아쉬워했지만, 난 가차없이 그만둬 버렸다. 세월이 흐른 후 자칭 교환학생이던 미요꼬가 나에게 관심을 표명했을 때 난 일본어를 그만둔 걸 후회해야 했다. 시종 "아리가도우"와 "스미마센"만 연발하던 나랑 "고맙습니다"만 할 줄 알았던 미요꼬의 거리는 함께 있어도 멀기만 했으니까.
안정효가 쓴 <글쓰기 만보>에 의하면 단 하나의 거짓말을 위해서는 소설에 나오는 주변장치가 다 사실이어야 한단다. 예컨대 그는 <하얀전쟁>의 무대가 된 공원을 묘사하러 소설과 같은 시각에 공원을 세 번이나 찾아가 글로 썼다는데, 신경숙의 <리진>은 저자의 세밀한 묘사가 읽는 이를 100년 전의 조선에 있는 것처럼 느끼게 해주는 성실한 소설이다. 게다가 블랑주교를 비롯해 초대 프랑스 공사 콜랭 등 실존인물이 다수 등장해 "이거 진짜 있었던 이야기인가"라는 궁금증이 이는데, 그런 부분들도 이 소설의 긴장감을 높여주는 요소이리라. 신경숙 씨, 나 당신 별로 안좋아했어요. 당신 책 나오면 무조건 안읽었어요. 하지만 이제는 안그럴께요. <리진>은 당신에 대한 내 선입견을 바꿀만큼 멋졌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