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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명숙의 선택 - 이프 여성경험총서 2
김신명숙 지음 / 이프(if) / 2007년 6월
평점 :
품절
신문에 실린 칼럼을 읽었을 때나 <미디어포커스>의 사회자가 되었을 때만 해도 난 김신명숙에 대해서 그다지 대단한 사람이란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가 쓴 <미스코리아 대회를 폭파하라>라는 책은 제목에서 느껴지는 유치함이 싫어 읽지 않았다. 그런 내가 <김신명숙의 선택>이란 책을 선뜻 집어든 건 저자에 대한 관심의 표현이 아닌, 여성학에 대한 애정의 표시였다. 여성학 책이 많이 팔리면 팔릴수록 우리 사회가 살기 좋아진다는 믿음에서 비롯된.
초반부는 그다지 인상깊지 않았다. "이런 말, 나도 할 수 있어!"라는 오만한 생각도 했었다. 게다가 초반 4분의 1을 채 못읽었을 무렵 기차에다 책을 놓고 내리는 바람에 김이 새기도 했다. 하지만 책을 잃어버렸다고 속상해하던 내게 다시금 책을 사다준 어느 미녀분 덕분에 이 책을 끝까지 읽을 수 있었는데, 결론은 "안읽었으면 큰일날 뻔했다"였다. 내가 읽은 여성학 책들의 대부분이 서구 사회, 그것도 30년 전의 일들을 바탕으로 한 거라 현실감이 그다지 없었다면-물론 우리의 현재는 서구의 30년 전보다도 못하다-김신명숙의 이 책은 우리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생생하게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훨씬 가슴에 더 와닿았다. 게다가 저자는 여느 페미니스트보다도 해박했고 그러면서도 친절했다.
"남자들을 성적으로 흥분시키는 것은 무엇보다 강제력 혹은 권력의 행사라고 합니다. 그런 권력의 행사는 현실에서 이뤄지기 힘듭니다...결국 그들의 욕망 해소를 위한 특별한 공간이 필요해져서 룸살롱 등 향락업소와 갖가지 성매매가 번창하고 있는 것입니다.."
중반부를 지나면서 난 저자의 한마디 한마디에 매료되어 구절구절마다 붉은 줄을 긋기 시작했고, 2008년 1월 1일 새벽, 서울로 향하는 기차 안에서 난 몇권의 페미니스트 서적을 읽은 것보다 더 뿌듯한 마음으로 마지막 장을 덮었다.
아쉬운 점도 있다. 벌써 작년이 된 2007년 6월, 난 다음 학기로 내정된 여성학을 가르치려고 참고서적을 찾고 있었다. 그래서 6월 말에 발간된 이 책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는데, 이 책이 한달만 먼저 나왔다면 글로리아 스타이넘이나 영화를 바탕으로 페미니즘을 디벼본 난해한 책 대신 이 책을 학생들에게 읽혔을 것이다. 그랬다면 우리 학생들은 "소란을 일으키기 두려워 자기 자신과 결별하기보다는 다른 사람과 결별하는 게 낫답니다."라고 말해주는 따스한 언니. 누나를 갖게 되었을 테니 말이다. 그렇다고 너무 아쉬워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이 다음 학기에도 여성학 강의는 이루어지니까. 지금은, 주변에 있는 여성분들한테 이 책을 선물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