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학교>는 홋카이도에 있는 조선인학교의 일상을 담담히 카메라에 담은 다큐멘터리다. 그걸 보면서 왜 그렇게 눈물이 났는지 모르겠다. 의자 등받이 위로 우뚝 솟은 남자의 머리가 스크린의 4분의 1을 가려서도 아니었고, 우리 학교의 처녀 선생 한분이 다른 남자와 데이트를 즐기는 광경을 목격해서도 아니다 (그분은 내 타입이 아니다. 정말이다).

영화 속 아이들은 눈처럼 맑고 순수했다. 그래서였을 거다. 영화를 보는 내내 난 그들에게까지 이념의 잣대를 들이대는 못난 내 조국이 답답하기만 했다. 한홍구의 <대한민국사>에서도 읽은 적이 있지만, 북한이 재일 조선인 학교에 제법 지원금을 보낸 반면 우리나라는 민단과 조총련간의 세싸움에만 관심을 보였을 뿐 쥐꼬리만한 지원도 한 적이 없다. 때문에 영화 속 아이들은 자기들을 도와주는 북한에 더 친밀감을 보이지만, 사실 그들의 마음속에서 남과 북의 경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왜 같은 말을 쓰는 사람끼리 총부리를 겨누냐”는 질문에 우리는 어떤 대답을 할 수 있을까?
남과 북의 차이보다 조선인이라는 긍지를 더 소중히 생각했던 이들 중 서씨 형제도 있었다. 재일교포로 서울법대에 유학 중이었던 그들은 방학 때 꿈에도 그리던 북녘 땅을 다녀오게 되는데, 그 일은 형제 간첩단 사건으로 둔갑하여 그들의 삶에 길고 긴 그늘을 드리웠다. 서준식 선생은 88년 풀려날 때까지 18년인가를 감옥에 갇혀 살았고, 그의 형인 서승 선생은 모진 고문을 받던 도중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 몸에 기름을 붓고 불을 질렀다. 다행히 목숨은 건졌지만, 그때의 상처는 서승 선생의 몸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통영 앞바다를 보고싶어 했던 윤이상 선생의 소망을 끝내 외면하고, 송두율 선생이 귀국한 걸 ‘국내 최대 간첩 사건’으로 포장해 감옥에 가둔, 그래서 하버마스로부터 ‘야만의 나라’라는 비난까지 들어야 했던 우리의 못난 조국, 이 나라는 언제쯤 문명국가가 될 수 있을런지.
야만스러운 면에서는 일본도 예외일 수 없다. 북한이 대포동 미사일을 날렸을 때 조선인 학교에는 “너네 학생들을 죽이는 것으로 보복하겠다. 몸조심하라”는 협박전화가 걸려왔고, 일본인 납치문제에 항의하는 우익들의 시위 때문에 북한 방문을 다녀오던 학생들은 조선의 상징인 치마저고리 대신 체육복으로 갈아입고 그들의 눈을 피해 귀국해야 했다. “ㅂ 받침이 너무 어렵다”고 말하는 순진하고 귀여운 그 학생들은 못난 나라에 사는, 혹은 못난 나라를 조국으로 둔 대가를 치루고 있는 중이다. 그게 <우리 학교>가 우리에게 보내는 메시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