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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세 번째 이야기
다이안 세터필드 지음, 이진 옮김 / 비채 / 2007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열세번째 이야기’는 불어 선생이던 다이안 세터필드가 마흔한살에 내놓은, 5년 동안 노력한 결과물이다. 562쪽이란 엄청난 두께가 날 두렵게 했지만, 이걸 빌려가서 읽은 조교 선생이 “이거 아주 재미있었어요. ‘사라진 마술사’보다 더요.”라고 말해준 덕분에 용기를 냈다. 초반부가 지루하기에 조금만 더 읽으면 재미있어질거야,라고 스스로를 채찍질하면서 계속 읽었는데, 뒷부분으로 가도 그저 그렇다. 읽고 나서 아쉬움보다는 해방감을 느꼈으니 나와는 코드가 안 맞나보다.
여자가 주인공인 소설을 읽을 때, 난 무조건 주인공을 미녀라고 단정하고 그녀에게 공감해 버린다. 이번에도 그랬다. 소설 속에는 주인공의 미모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지만, 난 내 마음대로 주인공을 니콜 키드먼처럼 생겼다고 생각했다. 책의 분위기가 <디 아더스>와 비슷해서 그랬을 것이다. 그랬는데 의문에 싸인 베스트셀러 비다 윈터의 흔적을 추적하던 주인공이 폐가에서 한 남자를 만난다. 사람이 있다고는 상상하지 못했던 터라 주인공은 놀라 자빠지는데, 그걸 빌미로 남자는 살갑게 접근해 온다.
“이런! 저 때문에 놀라셨습니까?”
남자는 여자에게 차와 케이크를 건넨다. 니콜 키드먼은 준다고 그걸 먹는다. 대화도 나눈다.
“맛있네요. 집에서 만든 건가요?”
니콜은 그 남자와 다시 만날 약속을 한다. 두 번째 만남에서 니콜은 남자와 친해졌고, 남자는 자기 집으로 가자고 꼬신다. 수작이 뻔하건만 니콜은 기꺼이 응한다. 혀를 끌끌 찼다.
“하여간 얘네들은 눈만 마주치면 한다니까.”
하지만 다음 대목을 읽고는 조금 놀랐다.
“60년 전... 이 가방 속에 그가 들어 있었다(그는 자루에 실려 다른 이의 집에 놓여졌고, 집주인인 할머니 품에서 컸다(319쪽)”
그렇다면 그가 60살? 갑자기 안심이 된 나는 다시금 소설에 집중했다.
하지만 안심하기엔 일렀다. 다음 구절을 보라.
“그가 내 손을 잡는 게 느껴졌다. 나의 두 손이 그의 커다란 한 손 안에 들어갔다. 그의 다른 팔이 나를 가까이 당겼다...나는 그의 따뜻한 가슴을 느낄 수 있었고...(542쪽)”
다시금 혀를 찼다. 나이가 들어도 남자는 짐승이며 경계를 해야 한다고. 오해였다. 그냥 손만 잡고 말았다. 내겐 매우 다행스러운 결말이었다. 혹시 내가 소설에 집중을 못한 게 이래서가 아니었을까?
이 책을 읽는 동안 나한테 <열세번째 이야기>가 어떤 내용이냐고 묻는 애들이 있었다. 이렇게 대답해 줬다.
“이 저자가 <첫번째 이야기>부터 썼거든. <아홉번째 이야기>가 제일 재미있어. 열세번째 이야기를 쓰고 작가가 죽어서 더 이상의 이야기는 없어.‘
이랬더니 다들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혹자는 <아홉번째 이야기>만 읽어야겠다고 하기도 했다. 삶이 각박하다지만 아직은 순진한 사람이 더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