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동감에서 21년의 시차를 두고 살아가고 있는 김하늘과 유지태는
무선통신이 잘못 연결되는 바람에 둘 다 20대 학생인 채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하필이면 둘은 같은 대학에 다니고 있기에,
시계탑 앞에서 만나기로 한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상대는 오지 않는다.
기다리는 동안 김하늘은 시위대를 향해 쏜 최루탄 가스를 맡아야 했고,
유지태는 때마침 내린 소나기에 흠뻑 젖는다.
2시간 가까이 기다린 끝에 둘은 각자 집에 가지만,
그날 밤의 교신을 통해 둘은 서로 다른 시간대에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같은 대학 교수님이 전화를 했다.
“...그래서 말인데요, 서민 선생님이 강의 영상 촬영을 좀 해주시면 안될까요?”
이해력이 딸리는지라 그분이 앞에 한 말의 내용은 잘 모르겠지만,
확실한 것은 내가 방학 때 인터넷 강연을 촬영하면
그걸 가지고 2학기 때 좀 더 편하게 강연을 할 수가 있단다.
학교마다 이런 걸 좀 해야 하는 모양이다.
그쪽에선 부탁이었지만, 내 입장에서도 인터넷 강연이 여러모로 편한지라
흔쾌히 하겠다고 했다.
까짓것, 방학 때 좀 고생하지 뭐.
언제 한번 만나서 자세한 얘기를 하자기에 그러기로 했고,
내가 그분 있는 곳에 가겠다고 말했다.
“네 그럼 범정관 xxx 호로 와주세요.”
범정은 우리 학교를 설립하신 분의 존함으로,
학교의 핵심 부서가 다 거기 들어가 있다.
시간이 돼서 범정관에 갔는데 xxx호가 없다.
전화를 걸었다.
“제가 그곳이 어딘지 못찾겠네요. 길치라서 이해해 주십시오.”
그는 우리은행을 얘기했다.
우리은행까지 150미터를 종종걸음으로 달려갔지만, 그곳에도 xxx호가 없다.
“아, 제가 말한 건 우리은행이 아니라 우리은행 ATM기를 말하는 건데요. 범정관으로 다시 와주십시오.”
다시 범정관으로 왔지만, 아까 안보인 게 지금 보일 리가 없다.
게다가 그 건물엔 ATM기 같은 건 없다.
결국 우린 범정관 앞에 있는 범정선생 동상 앞에서 만나기로 한다.
나: 지금 저 동상 앞이어요.
그: 저도 동상 앞인데... 혹시 깃발 보이세요?
나: 보이죠.
그: 이상하네요. 저도 나와 있는데 왜 못찾겠죠?
그의 말을 들으며 퍼뜩 떠오른 생각이 그와 내가 다른 시공간에 있는 건 아닐까, 였다.
그게 아니라면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하단 말인가.
갑자기 난 카카오맵이 생각났다.
그것만 있다면 자신의 위치를 상대방에게 쉽게 알려줄 수 있지 않은가.
카카오맵 캡쳐본을 보내고 난 뒤 그한테서 전화가 왔다.
“아, 이거 정말 죄송합니다. 여기는 죽전 캠퍼스거든요.”
단국대는 죽전과 천안, 두 곳에 있으며, 의대는 내가 있는 천안캠퍼스에 있다.
하지만 양쪽 다 범정관이 있고, 설립자 동상이 있고, 우리은행이 있어서
서로 다른 캠퍼스라는 생각을 못했던 것이다.
영화 동감과 달리 우리는 같은 시간대에 머물렀지만,
다른 공간에서 서로를 찾아 헤매고 있었다.
결국 그가 천안으로 내려오기로 함으로써 이 헤맴은 끝이 났다.
트렌드에 맞게 구호를 외쳐본다.
“지금까지 이런 만남은 없었다. 이건 해피엔딩인가 황당엔딩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