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땅의 야수들 - 2024 톨스토이 문학상 수상작
김주혜 지음, 박소현 옮김 / 다산책방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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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큰 아이와 함께 간 동물원에서 단연 인기 있는 동물은 호랑이였다. 우리나라의 지도가 호랑이 모양이라는 것을 비롯하여, 최초의 설화라 할 수 있는 단군왕검 이야기에도 호랑이가 등장한다. 물론 호랑이와 관련된 동화나 이야기는 떠올리는 것만 해도 여러 개에 달할 정도로 호랑이는 우리에게 익숙한 동물이다. 책의 시작 역시 호랑이가 등장한다.

사냥꾼인 남경수는 아버지로 부터 호랑이 사냥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자란다. 호랑이의 공격으로 목숨이 위태로울 지경에 이르기 전에는 먼저 공격을 하지 말라는 것이 가장 중요한 가르침이었다. 그날 경수는 호랑이를 만난다. 하지만, 자신을 공격하지 않는 호랑이를 지나쳐보낸다. 하지만 겨울이었고, 밤이 깊었고, 경수가 입고 있는 옷을 너무 낡았고 제대로 끼니를 먹지 못한 탓에 스러지기 직전이었다. 꼼짝없이 동사를 할 지경에 놓인 경수는 하늘을 보고 죽자는 생각에 하늘을 쳐다본 채로 쓰러진다. 조선의 호랑이가 꽤 비싼 값에 팔려나가는 걸 아는 일본 군인들은 일본어가 능통한 상인 백씨를 길잡이로 세우고 겨울 산을 돌아다닌다. 그러다 길을 잃는다. 호랑이는 커녕 꼼짝없이 산에서 얼어죽을 지경에 처한 일본군. 그때 대위 야마다 겐조가 쓰러진 경수를 발견한다. 조선인 임에도 경수를 살려야겠다는 생각이 든 야마다는 자신의 식량을 경수에게 먹인다. 정신을 차린 경수의 도움으로 무사히 마을로 내려온 일본군. 길을 잃게 만든 게 백씨라는 생각에 백씨를 살해하는 하야시 소좌. 경수도 처리하고자 하지만, 야마다는 그들을 말린다. 경수 덕분에 무사히 마을로 내려왔기 때문이다. 경수에게 담뱃갑을 건네며 자신의 이름이 야마다 겐조라는 것을 알린다. 그렇게 그들의 인연은 시작된다.

기생집에 식모로 딸을 보내고자 했지만 계획이 틀어지고 만 옥희의 엄마는, 옥희가 그곳에 남겠다는 말과 기생 어미인 은실이 견습생으로 받아주는 대신 50전을 빌려주겠다는 말에 옥희를 맡기고 나온다. 그곳에서 은실로부터 기생이 가져야 할 교육들을 차근차근 받아 가는 옥희. 은실의 친딸인 월향과 연화와 친해진 옥희에게 그날의 기억은 참혹했다. 사진관에서 월향을 눈독 들였던 하야시 소좌가 은실의 기방으로 찾아와 월향을 범한 것이다. 옥희는 월향이 수박을 먹고 싶다는 말에 자리를 피한 덕분에 화를 면하긴 했지만, 그 일로 월향은 임신을 하고 만다. 딸이 일본 장교의 아이를 가졌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지 않았던 은실은 월향과 연화 그리고 옥희를 사촌동생이자 기생인 단 편에 경성으로 보낸다.

경수에 의해 살해된 백씨는 시신이 무사히 수습되고 장례까치 치르게 된다. 그에 대한 감사의 뜻으로 백씨의 조카이자 행상인 천 씨에게 은실은 정인이자 월향의 아버지가 준 은가락지를 보낸다. 사실 가지고 있는 돈을 독립군 장군인 그에게 모두 보냈던 터라 수중에 가지고 있는 것이라곤 은가락지 하나뿐이었기에, 은실은 그 소중한 것을 답례로 보낸 것이다. 아버지 경수가 죽은 후, 베개 맡에서 은가락지와 담뱃갑을 발견한 정호는 경성으로 떠난다. 그리고 거기서 거지인 미꾸라지를 만나고, 왕초인 영구를 이기고 왕초가 된다. 건강이 좋아 보이지 않는 아이에게 선뜻 자신의 음식을 양보했던 정호에 대한 소문은 일대에 퍼지고 40여 명을 거느린 거지 대장이 된다. 그리고 정호는 옥희를 만나게 되는데, 그녀에게 첫눈에 반하고 만다. 거지 대장에서 독립군으로 변모하는 정호와 옥희의 정인으로 옥희로부터 뒷바라지를 받고 무사히 학업을 마치지만, 그녀가 기생이라는 탓에 결국 그녀와 헤어지는 한철. 그리고 역시나 기회주의자인 인물의 대표격인 성수.

소설의 배경은 일제 치하부터 1960년대까지다. 한국계 미국인인 작가 김주혜의 외할아버지는 독립운동을 하셨다고 한다. 작가의 외할아버지처럼, 우리 할아버지도 일제강점기 옥고를 치른 독립운동가 시다. 하지만, 부끄럽게도 평생을 한국에서 산 나조차 그 시대에 대한 지식은 참 미천하다. 흥미롭지만 아픈 역사 속에서 다양한 시선을 느끼게 되었고, 또 다른 그 시대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방법으로 나라를 위해 희생하고, 헌신한 그들의 이야기가 야수의 이야기와 어우러져서 신선하기도 했다. 시대는 달라졌지만, 여전히 책 속에 등장하는 뜨거운 가슴을 가진 그들도, 자신의 이익을 위해 서슴없이 변절하는 그들도 존재하는 것 같다. 머리와 가슴과 행동이 일치하는 사람이 되고자 오늘도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역사의 판단 앞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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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와 나 - 한없이 다정한 야생에 관하여
캐서린 레이븐 지음, 노승영 옮김 / 북하우스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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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제목을 보는 순간, 한 권의 책이 떠올랐다. 길들여지지 않는(야생의) 여우가 등장하는 그 책! 바로 어린 왕자다. 처음 제목만 보고 어린 왕자의 등장한 여우(?)에 관한 책일까 하는 생각이 살짝 들기도 했다. 물론 쓰고 나니 그 여우를 어떻게 찾나! 싶긴 하지만...^^;;;

생물학 박사이자, 대학에서 종종 강의를 맡아서 하는 책의 저자인 캐서린 레이븐. 그녀는 야생의 삶을 좋아한다. 외떨어져 있는, 마트에 가려면 시내까지 50km를 운전해서 가야 하는 곳에 사는 그녀에게 새로운 일과가 생겼다. 그 일과는 보통의 사람이 상상할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바로 여우와의 만남이다. 오후 4시 15분. 여우가 그녀를 찾아온다. 2미터 이상의 거리를 띄운 곳에서, 물망초 꽃을 그녀와 사이에 두고 여우는 그곳에 찾아온다. 그런 여우에게 저자는 만날 때마다 선물을 준다. 15분씩 어린 왕자를 읽어주는 것이다. 물론 책을 읽고, 상당 시간을 기다려준다. 여우의 말을 듣기 위해서다. 물론 그녀는 여우를 길들이려 하지 않는다. 여우를 애완동물처럼 대하지도 않고, 여우에게 무엇을 요구하지 않는다. 그녀가 그렇듯 여우 역시 자신이 할 일을 한다. 서로의 시간을 주고받으며 둘은 자연스레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는 행동을 할 뿐이다.

물론 여우에 대한 이야기뿐 아니라, 책 속에는 자연의 모습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었다. 여우가 잡는 밭쥐와 들쥐부터 말코손바닥사슴, 영양붙이(아메리카 가지뿔 영양), 아메리카들소 등과 달맞이꽃, 버터꽃, 난쟁이산망초 처럼 낯선 이름의 식물과 동물들이 종종 등장한다. 어느새 막내 여우가 저자에게는 특별한 의미가 있는 "우리 여우"가 되고, 여우와의 기억은 결국 한 권의 책이 된다.

책을 읽으며 "한없이 다정한 야생에 관하여"라는 부제의 의미를 알 것 같았다. 자연과의 교감은 이런 데 사용하는 것이구나! 싶기도 했다. 책을 읽기 전에는 야생과 다정한이 절대 어울릴 수 없는 사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저자이기에 다정한 야생을 경험할 수 있겠다 싶기도 하다.

그리고 궁금했던 여우의 모습. 책을 통해 만난 우리 여우는 내게도 특별했다. 그래서 그런지 여우의 모습이 궁금했는데, 책의 마지막 장에 여우의 사진이 담겨있다. 아마 책을 읽은 독자라면, 사진 한 장의 담긴 여우가 조금 더 특별하게 다가올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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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재밌는 의학 이야기 - 고대 의학에서 정신의학, 뇌과학까지 흐름으로 읽는 의학사 이토록 재밌는 이야기
김은중 지음 / 반니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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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들어있는 어떤 것보다 현명한 의사의 경험이 더 가치 있다."

-라제스(알 라지)

의학 드라마나 소설 등을 종종 접하게 된다. 스토리는 이해하지만, 의사들의 대화 중 전문용어가 등장하는 장면에서는 어렵다는 생각과 함께, 의사들은 저 말을 다 알아듣는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초입에서 저자가 이야기하듯이, 우리 사회에서는 소위 성적이 좋은 상위 1%의 사람들은 의대 혹은 법대를 생각하게 되는 것 같다. 적성보다는 성적이 먼저라는 생각도 든다. 적성이 맞아도, 성적이 안되면 못 들어가는 곳이기에 말이다.

"재밌는"이라는 말이 붙어있었지만, "의학"이야기가 과연 재미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우리가 생각하는 의사나 의학은 앞에서 말했듯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단어들이 남발되는 상황이 반복되기 때문이다. 나처럼 생각하는 독자들을 위해 저자는 용기를 북돋아준다. 코로나 시대를 지나며, 생각보다 우리가 아는 의학용어들이나 지식들이 많아졌다는 것과 함께 처음에는 어려울 수 있지만, 반복적으로 접할 수 있도록 책을 썼기에 마지막 페이지를 덮게 되면 한결 편안한 의학사를 만날 수 있을 거라는 것과 흥미를 잃지 않도록 책을 구성하려고 노력했다는 말 말이다.

다행이라면, 저자의 다짐(?)은 거의 맞았던 것 같다. 의학의 발전사와 사건들이나 일화가 한대 어우러져서 흥미롭기도 했고, 등장인물들의 캐리커처와 함께 그가 발견하고 이루어낸 성과를 키워드로 써주는 센스! 가끔은 그림 도표나 마인드맵 등을 통해 내용을 한눈에 파악하도록 구성하기도 했고, 각 시대의 서술 말미에는 한 번 더 정리를 해주기도 해서 눈에 쏙쏙 들어왔던 것 같다.

세계사를 비롯하여 그동안 단편적으로 만났던 이야기들이, 이 책을 읽으며 한결 정리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가령 얼마 전에 뇌과학 파트에서 만났던 측두엽 절제술을 받았던 환자 H.M의 일화를 다시 만날 수 있었고, 중세 시대 흑사병에 대한 부분 역시 깔끔하게 정리할 수 있었다. 특히 궁금했던 게, 의학 드라마를 보면 늘 그들이 의사로 한 발을 내딛는 시점에서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한다. 도대체 무슨 내용을 담고 있는지 내심 궁금했었는데 실제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보고 적잖이 실망했다. 물론 3천 년 전의 생각과 주관으로 만들어졌기에 그럴 수 있겠지만 말이다. 물론 현재는 1948년 제네바 선언에서 개정된(지금도 개정되고 있다고 한다.) 내용을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참 많은 이야기가 담겨있었는데, 흑사병에 대한 이야기를 건너뛸 수는 없을 듯싶다. 지구상 인류에게 엄청난 재앙이었던 흑사병은 지금 봐도 두려울 수밖에 없었을 것 같다. 팬데믹이라고 하는 코로나 상황이 현재진행형인 상태기에 더 와닿기도 했다. 가뜩이나 중세 시대는 고대부터 이어진 종교적 영향으로 병은 신의 저주 혹은 악마로부터 온다고 믿었기에 더 큰 참사가 되었던 것 같다. 물론, 흑사병 시대를 지나며, 인류는 종교와 상당히 분리되게 되었고 이는 르네상스와 함께 의학의 새로운 발전을 이룩하기도 했다. 어느 상황이던, 명과 암이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그 밖에도 미국의 초대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이 후두 개염으로 투병 중에 사혈법 때문에 사망했다는 사실과 산욕열(씻지 않은 손으로 분만을 도왔던 의사에 의해 옮아 산모가 사망)을 발견한 제멜 바이스가 동료들로부터 지탄을 받고 결국 정신병원에 감금되었다가 산욕열과 비슷한 패혈증으로 사망하게 되었다는 사실은 너무 씁쓸했다.

코로나19를 지내고 있는 우리의 모습 역시 훗날에 보았을 때 과거의 의학사 속 이야기처럼 명과 암이 드러날 것이다. 과연 코로나19는 우리에게 어떤 명(明)을 선사했을지 무척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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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에 간 인문학자 - 그림의 침묵을 깨우는 인문학자의 미술독법, 개정증보판 미술관에 간 지식인
안현배 지음 / 어바웃어북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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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과 내용에 전부터 눈이 가던 책이 있었다. 나는 미술관에 간 시리즈라고 부르는 책 중 한 권이다. 여러 권의 책을 만났지만 여전히 낯설기만 한 미술관과 관심은 있지만 좀처럼 친숙해지기 어려운 인문학의 만남이라... 둘 다 어려워하는 분야지만 그럼에도 관심이 있기에 전자책으로 보다가 덮었던 책이다. 내용 때문이 아니라, 작은 핸드폰 화면으로 보기에 아쉬움이 컸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개정증보판으로 다시 만나게 된 미술관에 간 인문학자는 무척 반가웠다. 무엇이 개정된 것일까? 우선 표지가 개정되었다. 유리 피라미드가 전면에 담긴 밤의 루브르박물관의 전경이 압도적으로 다가온다. 전에 담긴 표지보다 더 우하하고, 깊이 있어 보이는 표지가 무척 마음에 들었다.

책 속 글은 다름이 없었지만, 담긴 미술작품들의 경우 상당히 증보된 것 같다. 우선 더 많은 그림이 등장한다. 저자의 글을 읽으며 또 궁금해지는 미술작품들이 있는데, 독자가 아쉬움을 느끼지 않도록 더 많은 미술작품을 실어놓은 것 같다. 그뿐만 아니라 저자의 글에서 설명하는 부분에 대해 확대한 사진도 등장하기 때문에 여러모로 만족스럽다.

책 속에는 총 4개의 큰 주제 안에 65개의 작품들이 등장한다. 물론 하나의 소주제 안에 비교가 되는 또 다른 작품들이나 작가가 언급한 다른 작품들도 등장하기 때문에 이 한 권으로 다양한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앞표지가 루브르박물관인 것처럼, 책 속에 등장하는 상당수 작품들은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 중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책 속에 등장하는 글 중 일부는 루브르 박물관 작품 해설도 만날 수 있다.

얼마 전에 루브르 박물관에 대한 프로그램을 봐서 그런지, 책을 통해 다시 만나는 루브르박물관은 낯이 익었다. 48만 점이 넘는 작품이 전시 중인데, 1분씩만 할애해도 1년을 봐야 할 정도라 하니 어마어마하다. 어찌 보면 이렇게 책을 통해서 작품을 보는 게 작품을 더 자세히 감상할 수 있을 듯싶을 정도다.

개인적으로 가장 와닿았던 작품은 Chatper4. 인간을 비춘 미술에 담겨 있던 마리 기욤 브누아의 흑인 여인의 초상화라는 작품과 그와 관련된 저자의 글이었다. 작품도 작품이지만, 루브르 작품 해설에 반기(?)를 든 저자의 글 덕분에 더 기억에 남았던 것 같다. 마리 기욤 브누아는 18~19세기 프랑스를 대표하는 화가다. 근데, 18~19세기는 제국주의가 활기를 쳤던 시기였다. 그런 그가 흑인 여성을 모델로 하는 그림을 남겼다. 루브르는 그의 작품에 대해 노예 여성에 대한 공감과 사회의식 그리고 그녀가 가진 외로움을 표현했다고 해설한다. 그에 대해 저자는 그가 그동안 그렸던 그림들로 비추어 볼 때 루브르의 평가는 과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표현했다. 브누아가 그린 그림들의 경우 권력자들의 그림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저자의 글을 읽으며, 이게 진정한 미술감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대세 혹은 전문가의 판단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는 자신만의 생각과 감성으로 작품을 바라보는 방법을 찾아가는 것 말이다. 상당히 많은 작품들을 다루지만, 길지 않은 내용에 글이라서 지루할 틈이 없었다. 아마 저자 역시 한 권의 책을 통해 독자들에게 다양한 루브르의 맛을 보여주고 싶어서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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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서 종이우산을 쓰고 가다
에쿠니 가오리 지음, 신유희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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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의 의미가 궁금했다. 책을 덮은 지금에서야 그 의미를 알게 된 것 같다. "혼자서"와 "종이우산"의 의미를...

새해 아침 떠들썩한 자살 소식이 톱기사를 장식했다. 12월의 말일. 80대 노인 세명이 호텔에서 엽총 자살을 했기 때문이다. 그 주인공은 시노다 간지, 시게모리 츠토무, 미야시타 치사코다. 연락을 받은 가족과 지인들은 패닉 상태가 된다. 무슨 일이 이 세 사람을 자살로 몰고 간 것일까?

나 역시 이들이 자살을 하게 된 원인을 궁금해하며 책을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저자는 다른 관점에서 생각하고 싶었나 보다. 이 작품은 추리소설은 아니다. 그렇기에 원인이 되는 사건을 집중적으로 파헤치기보다는, 그 사건 이전과 이후의 주변 사람들의 모습이 책의 상당수 내용을 구성하고 있다. 사건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세 사람이 어떤 삶을 살았고, 가족들을 비롯한 지인들은 그들을 어떻게 생각했는지를 말이다.

유일한 여성인 미야시타 치사코. 외손자인 기타무라 유우키가 그녀의 죽음에 대한 뉴스를 들은 것은 처갓집에서 설맞이 식사를 하는 자리였다. 물론 그 당시만 해도 유우키는 사건의 당사자가 자신의 외할머니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녀의 소식을 들은 유우키는 무척 당황스러웠다. 누나인 도우코로 부터 사건을 전해 들었지만, 가고 싶지 않았다. 자신의 어머니인 미야시타 로코를 만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신들을 버리고 떠난 어머니를 말이다. 물론 누나 역시 친할머니와의 불화로 16살에 집을 떠나긴 했지만, 어머니와 누나는 다르다. 아내로부터 가야 하지 않겠느냐는 말을 들었지만, 이미 와해된 가족을 지금 와서 다시 만나는 것은 불편하다.

시노다 간지의 가족인 아들 시노다 도요코, 딸인 다케이 미도리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암에 걸리긴 했지만, 아버지와의 관계로 나쁘지 않았으니 말이다. 더군다나 왜 가족도 변변치 않은 그들과 함께 엽총으로 자살을 택한 것일까? 어머니 옆에 가족 묘지도 준비되어 있음에도 셋은 하치오지시의 공원묘지에 함께 묻히기로 했다는 소식 또한 반갑지 않았다. 덴마크로 유학을 떠난 딸 시노다 하즈키는 할아버지 사건에 급거 귀국한다. 하즈키는 안데르센에 대한 연구를 위해 덴마크에서 유학 중이다. 사실 하즈키 역시 할아버지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이미 간지는 자신의 죽음을 준비하며 짐 정리는 물론, 덴마크에 있는 손녀에게 택배까지 보낸 상태였다. 가족들만 몰랐던 것이다.

그리고 시게모리 츠토무. 그는 가족이 없었다. 그래서 알고 지내는 지인들이 그의 부고를 챙겼다. 그중에는 가와이 쥰이치라는 사람이 있었다. 츠토무에게서 온 편지를 받는 순간, 쥰이치는 츠토무 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츠토무와 알고 지낸 다른 지인들이 모였다. 쥰이치는 그를 위해 송별식을 열고자 했다. 함께 사망한 다른 가족들에게도 이야기했지만, 거절당했다.(특히 간지의 아들인 도요가 상당히 반대했다.) 츠토무 만의 송별식을 준비하던 중에 몹쓸 질병이 전 세계에 창궐했다. 지금도 현재 진행 중인 코로나다. 결국 송별회는 기약 없이 미뤄지게 된다.

책 안에는 셋의 마지막 이야기와 함께 가족과 지인들의 이야기가 뒤섞여 등장한다. 그들이 같은 날 죽음을 택한 이유는 사실 모르겠다. 그 저 한 인물이 모든 것에 흥미를 잃은 듯한 이야기를 꺼낼 뿐이다. 그나마 그들 셋이 아주 오래전 같은 직장인 출판사에 근무했었고, 공부모임이라는 이름의 모임을 꾸준히 갖고 있었다는 것 밖에는...

세 노인의 죽음으로 세 노인과 관계가 있던 사람들의 모습과 생각이 끊임없이 등장한다. 누군가는 그리워하기도 하고, 누군가는 당혹스럽기도 하다. 전혀 연락도 하지 않았던 가족과 그 일을 계기로 껄끄러운 연락을 주고받기 시작하기도 하고,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기도 한다. 죽음이라는 매개가 누군가를 떠올리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그동안 만났던 에쿠니 가오리의 다른 작품과 뭔지 다른 느낌이었다. 그동안 만난 이야기에는 불륜과 같은 색다른 사랑 이야기와 함께 노곤한 오후 같은 느낌이 물씬 풍겼는데, 이 작품은 죽음이 전면에 등장해서 그런지 다른 느낌이었다. 현재 진행 중인 코로나가 책 속에 등장하니, 왠지 더 실제적이라 느껴진다.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대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이렇게나 다를 수 있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내 마지막을 대하는 가족과 지인들은 과연 어떤 생각을 하게 될지 궁금해지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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