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칙 없는 삶 -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불온한 자유 arte(아르테) 에쎄 시리즈 2
헨리 데이비드 소로 지음, 김용준 옮김, 박혜윤 기획 / arte(아르테)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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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의 빛이 내면의 새벽을 비추지 않는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밤의 장막이 걷혀도 아침이 영혼에 아무것도 드러내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단지 화려하고 눈부실 뿐이다.

월든 호수에서 자연과 벗하며 사는 삶을 그린 월든의 저자인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에세이를 만났다. 원칙 없는 삶을 통해 만난 소로는 뭔가 좀 달랐다. 그래서 꽤 신선했다. 물론 그동안의 만났던 그의 글을 통해 소로가 자신의 목소리를 낼 줄 아는 청년이었다는 것은 알았지만, 내가 만든 이미지에 소로를 가둬두고 싶었던 것일까? 이 책을 통해 마주한 소로의 모습은 꽤나 충격적이었다. 아마 그런 충격에 대비해 추천의 글을 쓴 이는 소로를 그렇게 설명했나 보다 싶다.

월든을 통해 만난 소로는 자연을 좋아하고, 자연친화적인 이미지였다. 월든 호수에 오두막집을 짓고 살면서 때론 금욕적이고(금욕적이라기보다는 가난 때문이었겠지만), 당장의 편리와 편함보다는 자연은 생각하는 모습이 꽤나 인상적이었다. 근데 숲에 불을 지른(물론 고의는 아니었지만) 이후의 모습은 좀 다르게 보였다. 나름의 노력을 하긴 했지만, 결국 번져가는 불 앞에서 그는 주저앉았다. 당연히 뛰어다니면서 도움을 요청했기에(그리고 초반의 몇 명은 도움을 거절했기에) 그랬겠지만, 자신의 실수로 엄연히 자연의 상당수가 불타버렸는데 그 모습을 아름답게 바라본다니...! 불로 인해 100에이커(약 12만 평)이 타버린 상황에서 많은 어린 나무를 비롯하여 다람쥐와 같은 동물들도 삶의 터전을 잃었다. 불이 난 후 물고기가 타 죽어 있는 장면까지 봤지만 그는 생각보다 평온했다. "오히려 번개 때문에도 불이 날 수 있지 않은가? 이 불은 자연의 먹이를 먹어 치우고 있을 뿐이다."라고 생각하는 자세는 정말 충격적이었다.

어떤 상황이든 굴하지 않고, 자신의 소신을 말할 수 있었던 소로의 모습은 책 여기저기에서 드러난다. 생활에 여러 도움을 받은 스승이자 철학자 에머슨에게도 그는 자신의 생각을 말하며 비판을 가할 줄 아는 인물이었다. 그런 그의 특출난 가치관과 기행을 지켜보며 때론 거리 두기를 하긴 했지만, 책의 마지막 장에는 에머슨이 쓴 추도사도 담겨 있다.

특이한 행동이나 기행을 하긴 했지만, 소로가 가진 가치관은 굳건한 뼈대가 되기도 했다. 그중 노동에 대한 그의 생각을 표현한 글을 발췌해 본다.

미국 의회가 보호해야 하는 노동이 바로 이런 거 아닐까?

정직하고 인간다운 노동, 하루 내내 이어지는 정직한 노동,

빵 맛을 맛있게 하고 사회를 잘 돌아가게 만드는 노동,

모든 이가 존중하고 신성시하는 노동, 고되지만 누군가 꼭 해야 하는 노동 말이다.

여러 직업을 가지고 있던 소로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건 "자유"다. 근데 그 자유의 성격이 또한 특이하다. 보통은 나를 지키기 위한 자유를 꿈꾸는 데 비해, 소로는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가 나로부터의 자유까지로 자유의 역역을 확장한다. 나까지도 넘어서는 자유... 이 표현을 마주하고 보니, 소로의 기행에 가까운 행동들과 글들이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때론 모순되는 것처럼 보이는 소로의 모습은 어떤 것에도 얽매이지 않는 날 것 그대로의 자유로 연결된다. 그리고 그 자유에 대한 표현이 200년이 넘게 흐른 현시대에도 낯선데, 그 당시는 얼마나 낯설었을까 생각해 본다. 이 책을 통해 만난 소로를 한 줄로 요약하자면, 괴짜 혹은 자유로운 영혼이 아닐까 싶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굽히지 않고 자신만의 소신을 지키는 똥(?) 고집을 지닌 자유로운 영혼 헨리 데이비드 소로. 덕분에 소로에 대한 이미지가 철저히 깨지긴 했지만 한결 더 가까워진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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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죽음에 관하여 - 몽테뉴의 철학을 통해 배우는 삶의 가치 arte(아르테) 에쎄 시리즈 1
미셸 에켐 드 몽테뉴 지음, 박효은 옮김, 정재찬 기획 / arte(아르테)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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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이렇게 죽을 수도 있겠구나

에쎄 시리즈의 첫 번째 책은 16세기 사상가이자 저널리스트인 미셸 에컴 드 몽테뉴의 글 에쎄 중 일부를 한 권의 책으로 만날 수 있다. 부제는 좋은 죽음에 관하여다. 죽음은 모두에게 공평하다 하지만, 왠지 입 밖으로 내기에는 거북하고 불편하다. 과거에 비해 웰다잉에 대한 생각들이 나누어지고, 관련 서적이나 강의들도 많지만 여전히 죽음은 무거운 주제임이 틀림없다. 물론 몽테뉴가 살던 16세기에 비해 의학과 과학의 발전으로 치료할 수 있는 질병들이 상당히 늘어났으며, 인간의 평균 수명은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늘었다. 그럼에도 죽음은 누구에게나 한번은 꼭 마주해야 할 경험이다.

보통 죽음에 관한 책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사람은 분노의 5단계를 통해 죽음을 설명한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일 것이다. 근데, 그보다도 400년 전에 몽테뉴는 죽음에 대한 글이 썼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이 책을 통해 말하는 죽음에 관한 이야기는 지금의 임종 연구분야의 전문가나 관련 서적을 출판하는 사람들의 글과 차이가 없다는 사실이다. (물론 이 책은 죽음에 관한 전문서적이 아닌 에세이다.)

사실 몽테뉴는 책을 통해 죽음이라는 단어를 꺼내고 있지만, 책 안에서 만난 죽음이 그렇게 어둡게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바로 죽음을 통해 현실과 현재의 삶을 깊이 있게 생각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오히려 현재의 삶의 가치를 일깨워 주는 것이 바로 죽음이라고 말이다.

그대의 삶이 언제 끝나든, 그 삶은 이미 완전하다.

삶의 가치는 얼마나 오래 살았느냐가 아니라 어떤 삶을 살았는 가로 결정된다.......

삶이 그대 안에 있을 때 온전히 그 삶에 집중하라.

물론 과거도 그렇지만, 현재도 우리의 삶이 언제 끝날지 장담하지 못한다. 기대수명이라는 게 있긴 하지만 말이다. 그래도 과거에 비해 내 앞으로의 여생에 대한 기대수명이 늘어나고, 내 삶이 좀 더 이어질 거라는 생각은 할 수 있다. 그래서 몽테뉴의 글 중에는 너무 긴 호흡(15년)의 계획은 세우지 말라는 내용도 있다. (이 글은 그가 39세 때 썼는데, 그는 당시에도 자신이 20년은 더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놀랍게도 그는 59세의 후두염으로 사망한다.) 불투명한 장기적인 계획보다는 현실에 더 집중하는 것. 현재 우리 주변에서 마주할 수 있는 자기 계발서에서도 볼 수 있는 내용이 아닌가?

기획자에 말에 의하면, 그가 에쎄를 쓰기 시작한 계기는 가까운 사람들의 죽음 때문이었다. 소울메이트였던 에티엔 드 라 보에시와 어린 시절부터 그에게 자발적인 교육을 시켰던 아버지, 그리고 군인이었던 동생의 죽음은 그에게 큰 충격을 안겨준다. 법관을 그만두고 몽테뉴 성으로 돌아온 그는 사색과 독서, 집필에만 집중한다. 바로 그 시간에 나온 책이 에쎄인 것이다.

몽테뉴는 이야기한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죽음은 누구가 가야 하는 길이지만, 우리 모두 한 번의 경험만 할 수 있는 길이다. 그랬기에 먼저 경험해 볼 수 없는 게 바로 죽음이다. 하지만 죽음을 두려워하는 마음은 덜 수 있다. 내가 언젠가 죽는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내게 주어진 삶의 순간순간 죽음이 엄습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몸 사리지는 않아도 된다. 질병에 걸린다고 무조건 죽는 것도 아니고, 사고가 일어난다고 무조건 죽는 것도 아니니 말이다. 하지만 어떤 순간에도 죽음을 잊지는 말자. 그리고 죽음이 이르기 전까지 주어진 내 삶을 차분하게 살아가자. 태어나면서부터 우리 모두는 죽음을 향한 경주를 하게 된다. 조금씩 죽음에 가까워지는 경주 말이다. 결승선에 이르러야 경주가 끝나듯, 죽음에 이르러야 삶은 완성된다. 그러니 죽음도 삶의 하나라고 여기는 마음이 필요하다.

과연 좋은 죽음이란 무엇일까? 몽테뉴의 에쎄를 통해 좋은 죽음을 떠올려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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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경의 딥마인드 - 열심히 살아봤지만 허무함에 지친 당신을 위한
김미경 지음 / 어웨이크북스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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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에게 묻지 말고 나에게 물어라......

나는 어떤 사람으로 살고 싶은가?

개인적으로 자기 계발서를 잘 읽지 않으려고 한다. 2~30대를 지나면서, 자기 계발서와 에세이로 독서를 꽉 채웠을 때도 있었다. 근데, 뭔가 공허하고 뜬구름을 잡는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30대 초반 자기 계발서 읽는 걸 반으로 줄였다. 40대가 되니, 그마저도 일 년에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의 자기 계발서(인생에 대한 조언보다는 업무적인 스킬을 위한 자기 계발서 위주로) 읽게 되었다. 물론 그럼에도 그녀의 책은 꼭 읽는 편이다. 김미경 강사는 책 좋아하는 분의 추천으로 처음 읽게 되었다. 1권을 읽고 2권을 읽으며, 청양고추 같은 매운맛과 한편으로 그럼에도 츤데레 같은 위로 덕분에 울며 웃으며 완독을 했던 기억이 있다. 가끔 매체를 통한 강의에서 그녀를 보고, 책을 읽으며 "열심히"의 모델이 된 그녀를 보며 나도 내 삶을 참 많이도 채찍질했던 것 같다. 아이 셋을 키우면서, 강의를 하고, 사업체를 영위하는 그녀에 비해 나는 겨우 아이 둘에 워킹맘일 뿐이었기 때문이다. 내 나름 정말 열심히 살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녀에 비해서는 늘 모자라 보였다.

이번에 새로 나온 그녀의 책을 읽으며 걱정과 기대가 반반이 되었다. 얼마나 또 열심히 살아야 하는 걸까에 대한 고민과 또 따라가봐야지 하는 생각 때문이다. 근데, 첫 장부터 이건 뭐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진짜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던 김미경이 자신의 삶의 방향성을 바꾸었기 때문이다. 자타가 공인하는 부지런히, 열심히의 대가가 바로 김미경 아닌가! 근데, 이번 책은 뭔가 달랐다. 어찌 보면, 이 전에 나온 책들을 전부 상쇄할 정도다.

책 안에는 잇(It) 마인드와 딥(Deep) 마인드가 등장한다. 그녀가 마음의 엔진을 갈아끼우기로 결심한 이유는 열심히 하고 있는데도 고갈되어가고, 24시간 기계처럼 일하는데도 기쁨이 사라지고, 무엇보다 마음속에서 '그만하고 죽어라!'라는 생각을 마주했을 때다. 다행히 그녀는 무엇이 문제인지 깨달았다. 그동안 성취를 위해 부단히 달려오면서 많은 성과를 얻긴 했지만, 잇의 수단이 되어 살아남았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잇 마인드는 모든 것을 물질화하고 지표화해서 증명할 수 있는 능력이다. 잇마인드가 가장 큰 위력을 발휘한 사례는 바로 대한민국이다. 한강의 기적을 만들어내며, 전쟁으로 폐허가 된 나라가 큰 경제성장을 이루며 선진국이 되었다. 물론 그 자체는 좋다. 정말 열심히 살았다는 증거이니까... 문제는 잇 마인드의 치명적인 부작용을 간과했다는 데 있다. 그 부작용으로 나타나는 게, 청소년을 비롯하여 자살률이 증가했다는 점이다. 경쟁 사회 속에서 낙오되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주입하고 성과를 닦달하는 사회. 결국 그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사람은 스스로가 루저, 실패자라는 오명 속에서 포기하게 된다.

성능이 좋은 잇마인드일수록 내가 괴롭든 슬프든 망가지든 개의치 않는다.

잇마인드는 나를 사랑해서가 아니라 나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존재한다.

다행히 우리에게는 태어나면서부터 우리를 너무 잘 아는 딥마인드가 있다. 딥마인드는 "내가 행복하게 사는 것, 어떤 고난과 아픔 속에서도 지지 않고 살 수 있게 만드는 것"이 목표다. 하지만, 잇마인드에 의해 주도권을 빼앗긴 내가 딥마인드를 어떻게 깨울 수 있을까? 저자는 딥마인드를 깨우는 프롬프트를 설명한다. (딥마인드나 잇마인드 부터 요즘 가장 핫한 AI나 챗 GPT가 떠올랐는데, 여기서도 프롬프트가 등장한다.) 바로 감사와 칭찬, 반성을 활용한 질문을 통해 딥마인드를 깨울 수 있다. 좀 더 자세하고 구체적인 내용은 책을 통해 직접 만나보자.

매일매일 열심히 산 것 밖에 없는데, 우리는 왜 이렇게 지치고 힘이 들까? 하나를 겨우겨우 해내면 또 하나가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그 일을 해내면 또 다른 일들이 켜켜이 쌓여있다. 하지만 정작 나조차 나를 위로하지 못하고, 극단으로 몰아간다. 당신도 혹시 이런 삶을 살고 있지 않나? 다행이라면 잇마인드를 잠재울 수 있는 딥마인드가 우리 모두에게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늦지 않게 딥마인드를 깨워보자. 이 책을 읽고 나서 다시금 감사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내 딥마인드에게 내 존재를 알리고 싶어서다. 저자가 소개한 비잉노트와 bod하우스, 플래너를 활용해 봐야겠다. 그동안 추상적이어서 늘 작심삼일로 끝났던 부분들이 플래너 속 두잉 리스트를 통해 좀 더 구체적이 된다면 정말 변화를 맛볼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꾸준히가 가장 중요할 테지만... 하루 30분을 통해 삶의 방향성이 바뀐다면 얼마나 멋진 일일까? 우리 모두 딥마인드를 통해 지치지 않고 꾸준한 변화를 경험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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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농장
김이은 지음 / 고즈넉이엔티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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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제목의 고전문학이 있다. 나 역시 제목을 보자마자 조지 오웰이 떠올랐으니 말이다. 근데, 이 책의 저자는 한국인이다. 줄거리부터 흥미로웠는데, 책이 내용이 어떻게 동물 농장과 어울릴까 궁금했다.

도입부가 상당히 길다. 특히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강태은과 김선우에 대한 설명이 처음의 1/3을 차지한다. 그래서 초반에는 지루한 감이 있다. 물론 저자 입장에서 중요하다 생각했기에 상당한 페이지를 할애했겠지만 말이다.

헌책방 직원이자 명문대 휴학생인 강태은. 오늘도 가끔 들르는 손님들에게 책을 찾아주면서 지루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녀의 최대 능력은 책의 위치를 정확히 외우고 있다는 것이다. 뛰어난 기억력이 그를 계속 그 자리에 있게 해주긴 했지만, 일에서 보람을 느낄 겨를이 없다. 주인의 아들은 아주 가끔 헌책방을 들른다. 잘난 것도 없는데, 집을 두 채나 물려받은 인물. 그래도 떡볶이에 순대를 찍어 먹는 태은에게 5만 원짜리 한 장을 주고 간다. 복날이니 삼계탕이나 사 먹으라나...!

25살이지만, 태은의 인생사는 참 파란만장했다. 직장에서 잘린 엄마 김경은은 한 살배기 태은을 데리고 필리핀으로 이주한다. 하지만 타국에서 아이와 둘이 먹고살 만한 일을 구하기는 쉽지 않았다. 결국 현지인 남자와 결혼을 하게 된 경은. 태은이 고등학생 즈음이었다. 남편이 태은을 성폭행하려는 순간, 경은은 그 남자의 등에 칼을 꽂았다. 그리고 태은을 한국으로 보낸다. 경은이 들어간 감옥은 외국인 전용 교도소였는데, 3/4이 한국인이었다. 외국인들이기에 더 관리를 하지 않는 교도소에 살아남는 방법은 오로지 돈이었다. 식사부터 모든 것에 돈이 필요했었다. 결국, 경은은 한 수감자의 빨래를 해주고, 음식을 해주면서 겨우겨우 교도소 생활을 이어간다. 같은 죄로 수감된 손정희를 만난 것도 그곳에서였다. 정희 역시 경은과 같은 죄목으로 수감이 되었는데, 다른 점이라면 정희는 나가면 돈이 많다는 것이었다. 5년 만에 정당방위로 풀려난 경은은 비로소 한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렇게 태은은 자신을 살리기 위해 살인까지 한 엄마를 위해 어떤 희생이라고 감당하기로 결심한다.

어린 시절부터 파일럿이 꿈이었던 선우는 외국 유수의 항공대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사고로 하반신 마비가 된 아버지와 선우를 위해 생활전선에 뛰어든 엄마는 양장점을 한다. 선우가 2학년이 되는 해, 아버지가 돌아가신다. 또한 선우 역시 자신이 파일럿을 하기 힘든 몸을 가졌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아버지의 장례를 마친 후, 유일하게 열리지 않는 서랍을 마주하는 엄마와 선우. 그리고 그 안에 들어있던 아버지의 비망록을 본 후, 선우는 달라진다. 우선 파일럿의 꿈을 접고 경영학과에 입학한다. 그리고 한 카페에서 알바를 시작한다. 경영학과 선배이자, 카페의 단골인, 그리고 마루 그룹 회장의 둘째 아들인 최재건을 만나기 위해서다. 재건을 만난 날. 재건의 눈치를 알아챈 선우는 재건을 도와주었고, 그렇게 재건은 윤소희와 결혼을 하게 된다.

태은의 원래 직장은 카지노다. 카지노에서 매니저인 태은은 불법 도박장을 운영하고 싶어 하는 사장 이관석의 마음을 알아챈다. 비상한 머리로 헌책방을 이용하기로 한 태은. 헌책방을 찾는 손님들이 말하는 책에 카지노 열쇠를 숨겨둔다. 그렇게 10명만이 영업을 마친 카지노에 들어올 수 있다. 그들이 카지노에 들어오기 위해서는 1,000만 원의 현금을 내야 한다. 그리고 그날. 늘 나오는 관석이 나오지 않는다. 늘 오는 사람들만 오는 폐쇄된 카지노인지라, 손님들의 얼굴을 익히 알고 있는데 그날따라 한 명의 낯설다. 바로 관석에게 전화를 거는 태은. 손님 한 명이 급한 일이 있어서 친구를 보냈다고 한다. 하지만, 일이 터지고 만다. 그 낯선 이는 잠입한 경찰이었던 것이다. 졸지에 태은은 불법 도박장의 운영자로 몰려 구속이 되고 마는데...

사고를 치고 베트남으로 나가게 된 재건. 재건을 감시 차 선우가 베트남을 방문한다. 사실 선우는 회장인 마루 그룹 회장 최현백의 비서실장이다. 그리고 그 자리는 재건의 힘이 발휘되었다. 졸지에 이중 스파이가 된 선우는 그렇게 현백과 재건의 스파이 역할을 하게 된다.

이 작품은 복수담이다. 무엇에 대한 복수일까? 서론이 상당히 길었지만,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한 사람에게 원한을 가지고 있다. 바로 마루 그룹과 회장 최현백에게 말이다. 아버지의 비망록을 읽은 선우를 중심으로 프로그램을 뺏기고 내쳐진 천재 프로그래머 이도형과 유창수가 동물농장이라는 게임 앱을 개발한다. 그리고 또 다른 피해자 태은에게 손을 뻗치는 태은. 출중한 두뇌 회전으로 태은은 제대로 역할을 해낸다. 태은과 함께 경은과 정희 그리고 관석이 합류하여 최현백을 향한 복수의 칼을 들이 미는데, 과연 이들은 현백이 감춰둔 비자금 천억을 빼돌릴 수 있을까?

복수담은 언제 읽어도 흥미롭다. 오직 한 사람을 위한 복수의 서막은 길었지만, 그들은 목표가 있었기에 자신이 가장 잘하는 것을 토대로 복수를 실행해나간다. 중간중간 드러나는 그들의 과거 이야기와 복수가 차근차근 이루어진다. 물론 예상치 못한 반전과 로맨스도 맛볼 수 있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하고, 쥐도 막다른 골목에 몰리면 고양이를 문다. 공룡 대기업에 의해 가족도, 꿈도, 재산도, 희망도 잃어 남은 게 없는 그들에 의한 기막힌 복수극을 맛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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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노자의 진찰실
나쓰카와 소스케 지음, 박수현 옮김 / 알토북스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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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나쓰카와 소스케와는 상당히 구면이다. 그의 전 작인 신의 카르테를 0권부터 읽기 시작해서, 마지막 4권을 남겨두고 있으니 말이다. 신의 카르테에도 구리하라라는 이름의 의사가 등장한다. 나쓰카와 소스케가 현직 의사이기에 유독 병원의 이야기를 잘 쓰는 작가인 걸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그러고 보면, 나쓰카와 소스케 말고도 현직 의사로 문학을 하는 작가는 치넨 미키토 그리고 한국의 남궁인이 있다. 그 밖에도 내가 모르는 현직 전문가가 쓴 병원 이야기가 있을 거 같긴 하지만, 유독 이 두 작가가 눈에 띄는 이유는 소위 전문가라고 아는 척을 난발하며 각종 어려운 의학용어를 줄줄 읊어대지 않기 때문이다. 정말 필요한 용어만 등장하기 때문에, 작품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없다.

동네병원으로 알려진 하라다 병원은 의사가 4명인 작은 병원이다. 스피노자의 진찰실의 주인공이자 30대 중반의 소화기 내과의인 마치 데쓰로를 중심으로 환자들과 의료진들과의 이야기가 책의 전체적인 줄거리다. 결혼도 하지 않은 그는, 중학교 1학년생인 미야마 류노스케와 둘이 살고 있다. 류노스케는 데쓰로의 여동생인 미야마 나나의 아들인데, 여동생이 갑작스러운 암으로 사망하면서 데쓰로와 살게 되었다.(류노스케의 아버지는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라쿠토 대학 의국에서 내시경 쪽에서는 일인자로 불릴 정도로 뛰어난 실력을 가진 의사였던 데쓰로는 그 일로 라쿠토대학을 그만두고, 하라다 병원으로 옮겼다. 의국에서는 여러 가지로 조카를 키울만한 여건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이를 키워본 경험도 없는 데쓰로가 류노스케를 키우는 데는 분명 병원 사람들의 절대적인 도움이 필요했다. 대놓고 서술되지는 않지만, 데쓰로가 당직이거나 늦어지게 되면 누군가는 류노스케의 식사를 챙기고 같이 게임을 하기도 한다. 외과의인 주조 아야와 병원장이나 외과의 나베시마 오사무, 내과의 아키시카 준노스케까지 4명의 의사들은 서로 도움을 주고받으며 병원을 이끌어간다. (전작인 신의 카르테의 주된 배경은 혼조 병원이라는 24시간 응급실을 돌리는 종합병원이었는데, 정말 정신없이 바쁜 병원에 비교해서 하라다 병원은 여유가 있긴 하다.)



책을 읽으며 데쓰로라는 인물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사실 우리나라는 의대 증원과 전공의 파업, 그로 인한 문제들로 많은 이슈들을 가지고 있다. 과거에 비해 의학을 비롯한 각종 장비들이 발달했고, 그에 따라 점차 효율성을 따지는 시대가 된 것도 사실이다. 그에 비해 하라다 병원에 입원한 환자 중 상당수는 노인이다. 그것도 8~90대 노인들이 많다. 그들은 어찌 보면, 더 이상 가망이 없는 사람들이다. 수술이나 치료를 통해 획기적으로 소생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그렇게 보자면, 유능한 의사인 데쓰로가 하라다 병원에서 일하는 것 자체가 비효율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리쿠도 대학의 5년 차 내과의인 미나미 마쓰리는 그런 데쓰로를 보면서, 조금씩 생각이 달라져간다. 비효율적이고, 비능률적으로 보였던 데쓰로의 의사로서의 가치관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된 것이다.

세균성 폐렴을 앓는 90세의 아노 기쿠에나 알콜성 간경변증을 앓지만 가진 돈이 없어서 자신이 낼 수 있는 상황에서의 치료만을 주장하는 쓰지 신지로의 경우 데쓰로의 가치관을 제대로 보여주는 환자들이 아닐까 싶다.


참고로 제목이 궁금했는데, 데쓰로가 의국 시절에 책상 위에는 의학 서적이 아닌 스피노자를 비롯한 많은 철학자들의 책이 빼곡했다고 한다. 특히 좋아했던 철학자는 스피노자. 스피노자의 진찰실은 거기서부터 시작되는 제목이다.

앞의 신의 카르테가 시리즈로 나와서 그런지, 스피노자의 진찰실도 그랬으면 좋겠다. 데쓰로가 변하게 된 계기가 된 여동생의 이야기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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