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되다 - 인간의 코딩 오류, 경이로운 문명을 만들다
루이스 다트넬 지음, 이충호 옮김 / 흐름출판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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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그리스 로마신화를 읽다가 인간의 창조에 대한 내용을 보고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인간을 창조한 프로메테우스와 그의 동생 에피메테우스는 신들로부터 받은 다양한 재료를 가지고 내려온다. 신들로부터 받은 다양한 재료들을 가지고 각가지 동물을 만든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만든 인간. 하지만 에피메테우스는 동물들을 만드는 데 재료를 전부 사용하게 되어서, 인간은 동물 중에서 가장 연약한 존재로 만들어진다. 그렇다. 인간은 태어나자마자 자신의 발로 우뚝 서는 동물들과 비교했을 때, 어미의 존재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유일한 존재다. 자기 스스로 그 무엇도 할 수 없다. 1년여를 먹이고 씻기고 재우며 양육을 해야 겨우 제 발로 한 걸을 뗄 수 있다. 물론 자력으로 생존을 하기까지는 또한 십수 년의 세월이 필요하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인간은 자연에서 가장 약한 존재임에 틀림없다.

이 책은 인간을 다각도로 관찰하며 인간이 인간일 수 있는 다양한 이유들을 풀어낸다. 시작은 다른 종에 비해 연약한 하드웨어를 가진 인간이 그에 대적할 만한 능력으로 가진 소프트웨어에 대한 이야기다. 특히 얼마 전에 흥미롭게 읽었던 협력의 유전자에 대한 내용이 등장해서 더 반가웠다. 인간이 다른 종보다 불리함에도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에는 바로 서로 협력하고 돕는 소프트웨어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른 동물에 비해 양육과 독립에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는 아기를 돌보기 위해서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특히 아이를 낳고 먹이는 엄마는 아이를 돌보기 위해 상당한 체력과 음식을 요구받는다. 그때 엄마와 아기를 돕는 가족들의 손길 때문에 아기도, 엄마도 스스로의 힘으로 공급받지 못했던 부분을 채울 수 있다. 또한 그로 인해 엄마는 또 출산을 할 수 있게 된다. 결국 인간 종은 협력의 사회 안에서 부족함을 극복하고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 밖에도 합스부르크 왕가로부터 이어진 계보와 각종 바이러스에 의해 옮겨지는 병, 유전을 통해 전해지는 왕가의 혈우병을 비롯하여 괴혈병 등에 대한 이야기도 코딩 오류라는 제목으로 담겨있다. 특히 기억에 남는 부분이 여럿 있지만 하나만 꼽자면 마지막 장에 등장하는 인지 편향에 대한 부분인데, 예로 콜럼버스가 등장한다. 그가 찾은 신대륙을 끝까지 아시아라고 믿었던 그는 아시아 언어를 구사하는 통역사들의 말이 통하지 않아도, 발달한 문명을 지녔다는 사람들이 나체로 돌아다녀도, 후추와 각종 향신료를 쉽게 구할 수 없음에도 끝까지 자신은 아시아를 찾았다고 믿었다. 사실 우리도 그러지 않은가?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을 다른 여러 아닌 이유가 드러남에도 끝까지 고수하는 것. 좋게 말하면 신념이고, 나쁘게 말하면 똥고집이라 할 수 있다. 인지 편향뿐 아니라 현재 편향에 길들여진 현대인은 때론 눈앞에 편리함을 위해 미래를 생각하지 않는다. 당장 우리 앞에 놓인 기후 위기가 그중 하나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앞에서도 이야기했듯이 이 책은 다양한 분야의 인간에 관한 내용이 접목되어 있다. 생물학 뿐 아니라 역사학, 질병학, 화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인간에 대해 논한다. 덕분에 이 책을 읽다 보면 자연스레 다양한 분야를 마주할 수 있다. 다양한 예와 좀 더 흥미롭고 읽기 쉽게 서술되어 있는 문체 덕분에 한결 편안하게 읽어나갈 수 있었다.

인간이 선택한 것들은 때론 예상치 못한 결과를 가져와서 우리의 삶을 바꾸어놓았다. 때론 긍정적으로, 때론 부정적으로... 흥미롭고 신선한 이야기였지만, 그만큼 생각할 여지도 많이 던져주었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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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코 나의 운명을 원망하지 않으리라 - 쇼펜하우어의 인생에 대한 조언(1851) 라이즈 포 라이프 2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지음, 김요한 옮김 / RISE(떠오름)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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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월한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행복이 아니라

경험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희망을 통찰로 바꾸는 것에 만족해한다.

오랜만에 다시 마주한 쇼펜하우어. 물론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근데 요즘 들어 그의 이름이 담긴 책들이 속속 눈에 띈다. 왜일까? 왜 쇼펜하우어의 철학이 현시대를 살아가는, 지금 왜 그의 철학이 각광을 받고 있는 것일까? 우선 이 책은 쇼펜하우어의 "Counsles and Maxims"의 원문을 옮긴 책이다. 역자는 쇼펜하우어 붐이 반갑기는 하지만, 시중에 자주 보이는 책들의 상당수는 저자의 생각이 담긴 책이다 보니, 쇼펜하우어의 철학을 개인이 해석했기에 아쉬움이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 책을 통해 쇼펜하우어 철학의 원액 그대로를 마주했으면 하는 바람으로, 일부러 각주도 싣지 않고 번역을 했다고 한다.

책을 읽으며 받았던 느낌을 적어보자면, 쇼펜하우어의 철학은 장밋빛 미래나, 애써 긍정적인 상황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현실은 고통이고, 타인과의 관계를 맺는 것에 너무 집중하지 말고, 행복은 얻기 무척 어려운 것이기에 거기에 얽매이지 말라고 이야기한다. 어찌 보면 긍정보다는 부정에 가깝게 보인다. 희망을 노래하기 보다, 현실은 고통이고 행복은 멀리 있으니 굳이 그것을 찾아 헤매기 보다 그저 현실을 인정하라고 주문한다. 그렇기에 과거도 미래도 아닌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는 것. 그게 바로 쇼펜하우어가 이 책을 통해 이야기하는 바다.

현재 만이 진실이자 실재이고, 실제적인 시간이며,

오로지 현재 속에서 우리의 존재가 있다.

더 나아가, 타인과의 관계에서도 자유롭기를 주문한다. 고독을 즐겨라. 오히려 타인과의 관계에 얽매이기 시작하면 거기서부터 또 고통이 시작된다.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것이 필요하다. 그뿐만 아니라 노년의 삶에 대해서도 긍정적으로 바라본다. 젊은 시절에는 실수도 잦고, 생각도 짧지만 많은 경험을 통해 인생의 참 맛을 알게 되면 진정한 깊이 있는 삶을 살 수 있다. 이 부분을 읽으며 공자가 떠올랐다. 공자 역시 불혹(40세), 지천명(50세), 이순(60세) 등 나이 들어감에 따른 원숙을 이야기했는데 쇼펜하우어 역시 나이 듦이 주는 긍정적인 삶을 언급한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자면, 왜 요즘 쇼펜하우어의 철학이 각광을 받는 것일까에 대해 생각해 봤다. 팍팍하고 고통스러운 현실을 벗어나, 장밋빛 미래를 그리고 싶지만 쉽지 않다. 그런 현대인에게 쇼펜하우어는 왜 굳이 일어날지 안 일어날지도 모르는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해야 하는지를 묻는다. 그저 오늘 하루를 전부라 생각하고 사는 삶. 욜로를 추구하고, 가심비를 찾는 현대인에게 쇼펜하우어의 철학은 위로 아닌 위로를 선사하기 때문이다.


현재 만이 진실이자 실재이고, 실제적인 시간이며,

오로지 현재 속에서 우리의 존재가 있다.

탁월한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행복이 아니라

경험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희망을 통찰로 바꾸는 것에 만족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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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워터 레인 아르테 오리지널 30
B. A. 패리스 지음, 이수영 옮김 / arte(아르테)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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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덮으며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세상에나....! 여러 가지 감정이 오고 간다. 우선 다행이라는 것과, 그동안의 시간 동안 혼자 마음고생을 한 캐시가 너무 안타깝기도 했고, 배신감.... 하....!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던 날, 모임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캐시는 남편 매튜에게 전화를 한다. 매튜가 편두통이 심해 누워있다는 말에 캐시는 지름길인 블랙워터 길 숲을 통과해서 가겠다고 하지만, 매튜는 위험한 숲길로 운전하는 것을 만류한다. 하지만 비바람까지 일자 캐시는 조금이라도 집에 빨리 도착하고자 블랙워터로 들어선다. 집 가까이 왔을 때 반대편에 서 있는 자동차를 마주한다. 좁을 갓길에 비딱하게 서있는데다, 어두운 길에서 비상등조차 켜지 않고 서 있는 운전자를 째려보는 캐시. 차 안에는 여자가 타고 있었다. 혹시 고장이 난 게 아닌가 싶긴 했지만, 비도 많이 오고 귀찮기도 해서 캐시는 그냥 그 자리를 지나친다.

다음날 아침, 뉴스를 보고 캐시는 경악한다. 자신이 지난밤 지나온 블랙워터에서 한 여자가 숨진 채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캐시는 죄책감에 시달린다. 서 있는 그 차로 다가가서 여자의 상태를 확인했다면, 그녀는 죽지 않았을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 때문이다. 친구 수지의 40번째 생일파티가 열리기로 한 날. 절친인 레이첼 바레토로 부터 피해자가 제인 월터스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제인은 수지와 레이첼과 핀츨레이커스라는 회사에 같이 근무하는 동료였다. 문제는, 제인이 얼마 전 사귄 캐시의 친구였다는 사실이다. 레이첼 회사 파티에 초대된 캐시는 우연히 제인과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고, 번호를 주고받은 둘은 얼마 후같이 식사를 하게 된다. 오랜만에 마음이 잘 맞는 친구를 만났다는 사실에 캐시는 제인과의 다음 만남을 기다렸는데, 제인이 피해자라니... 캐시의 죄책감은 더욱 커져간다.

한편, 제인은 얼마 전부터 자신의 기억력이 이상해졌다는 생각이 든다. 레이철과 함께 수지의 생일선물로 사기로 했던 물건은 물론, 매튜의 출장 이야기도 까먹는다. 앤디와 한나 부부와 바비큐 파티를 하기로 한 약속도 기억하지 못한다. 사실 제인의 엄마는 젊은 나이에 치매 판정을 받고 투병을 하다 세상을 떠났다. 제인 역시 그런 엄마를 봤기에, 혹시 유전적으로 자신도 엄마처럼 치매에 걸린 건 아닐까 불안해진다. 그런 와중에 제인 사건의 장소에서 캐시의 집이 5분 밖에 떨어지지 않았다는 것과 범인이 아직 잡히지 않았다는 것, 얼마 전부터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전화가 걸려오고 있다는 것 등은 캐시를 더욱 불안하게 만든다. 누군가 자신을 훔쳐보고 있고, 닫은 창문이 열려있는 것 등 석연치 않은 불안함 속에 매튜마저 며칠 일정으로 출장을 가자 캐시는 극로도 불안해져서 결국 호텔로 향한다. 그날은 레이철과 만나기로 약속을 한 날이었는데, 그조차도 깜박했다는 사실에 캐시는 더 좌절감을 느낀다. 그리고 매튜로부터 한 통의 전화가 걸려오는데, 보안 업체와 계약을 하고 설치하기로 한 날 집을 비웠다는 사실을 듣고 경악한다. 분명 남편과 상의하겠다고 이야기했었는데 말이다. 문제는 계약서에 캐시의 필체와 동일한 사인이 되어 있다는 것이다. 자신의 기억력에 대해 점점 불안을 느끼는 캐시는 약의 도움을 받게 되지만 상황은 더욱 악화되어 간다. 그러던 중, 캐시의 집 창고에서 제인이 살해되었던 칼과 동일한 칼이 발견되는데...

집안 내력도 있고, 벌어지는 상황들을 기억하지 못하는 캐시를 보고 솔직히 모든 상황들이 의심스러웠다. 블랙워터 길에서 벌어진 제인 사건조차 과연 캐시의 기억이 제대로 된 것일까 의심스럽기도 했다. 거기다가 제인이 살해되기 전, 캐시가 그 길을 지났다는 사실을 범인을 알고 있을 것 같다는 상황이 캐시의 눈을 통해 여러 정황들을 통해 보이면서 의심을 넘어 불안감까지 이어졌던 것 같다. 마지막을 앞두고 팽팽하게 당겨졌던 서사가 확 풀려나간다. 과연 진실은 무엇일까? 물론 진실에 다가가기 위해서는 큰 반전을 마주해야 하는데, 이 또한 책을 읽으며 캐시와 동일한 감정을 품었던 독자들에게 캐시만큼이나 큰 상처가 될 것 같기도 하다. 만약, 캐시가 제인의 차로 다가갔다면 이야기를 달라졌을까? 물론 달라질 수 있었겠지만, 그럼에도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 배신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은 없지만, 이미 그렇게 마음을 먹었다면 설령 상황이 바뀌었다고 해도 언젠가는 또 벌어질 수 있었을 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슬프다. 꽤 오랜 시간을 함께했던 가족과 같은 사람이라면 더더욱...! 가스라이팅의 무서움이, 지속적인 가스라이팅이 한 사람을 어떻게 바보로 만드는지 읽고 나면 뼈저리게 느낄 수 있다.

참고로 이 책은 브레이크 다운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책의 리커버 작품으로, 제목만 브레이크 다운에서 블랙 워터 레인으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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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 좀 그만 버려라
강철수 지음 / 행복에너지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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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마당 있는 집에 살면서 이사를 하기 전까지 개를 키웠다. 그래봤자 몇 마리 되지 않긴 하지만, 기억에 남는 개는 아무래도 첫정이 든 레이디와 이사를 하면서 시골로 보낸 뽀삐와 다롱이다. 도사견이라고 불리는 강아지 한 마리를 외가에서 얻어와 키웠다. 원체 큰 개였던 터라, 결국 엄마는 개를 팔았다. 개를 팔고 나서 동생과 나는 밥도 안 먹고 개를 찾아오라고 엉엉 울었다. 두 자매의 울음에 엄마도 같이 울다 연락을 했지만, 레이디는 이미 떠나고 없었다. 뽀삐는 큰 아빠네 개였는데, 아파트에서 키울 수가 없어서 우리 집으로 왔고, 다롱이는 태어난 지 8일밖에 안된 강아지가 감기에 걸려서 죽을 것 같다고 하셨는데 엄마가 살려보겠다고 데리고 왔다. 그리고 건강하게 잘 자랐다. 집을 재건축하게 되어 뽀삐와 다롱이는 작은아버지의 차에 실려 친할아버지 댁으로 갔다. 명절 때마다 내려가서 뽀삐와 다롱이를 만났는데, 어느 해인가 내려갔더니 보이지 않았다. 다롱이는(생긴 것도 잘생기고, 엄청 똑똑했다.) 늘 강둑으로 해서 반대편으로 건너갔는데, 그날따라 횡단보도도 없는 찻길을 지나다 교통사고가 나서 죽었다고 하고, 뽀삐는 아는 집에 팔았다고 하셨다. 그 이후 반려동물을 키우지는 않지만, 한 번씩 생각이 난다.

이 책의 화자는 유기견이다. 이장 할아버지 댁에서 태어난 8마리 중 용돈벌이를 하라고 동네 할머니에게 준 강아지 3마리 중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아이가 바로 이 책의 주인공이다. 꼬마가 사 갔지만, 엄마에게 꾸중을 듣고 택배아저씨에게 개를 판다. 택배아저씨와 잘 살았으면 좋았을 것을, 그놈의 호기심이 문제다. 조금 열린 문 사이로 밖으로 나온 개는 동네 고양이에게 큰 봉변을 당해 부상을 입고 보호소로 간다. 하지만 개도 외모를 본다고, 우리의 개는 인기가 없었다. 이런저런 주인들을 만나지만, 자의로 때론 타의로 그곳을 뛰쳐나온다. 주사가 심한 아가씨, 소령 출신 할아버지, 대학생 남자 등 여러 주인을 거치며 개는 마치 삶의 경험을 쌓아가듯 상황들을 잘 모면한다. 이 개의 특징 중 하나가 사람들의 말을 잘 알아듣는다는 것이다. 물론 알아듣긴 하지만, 의사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

개의 입장에서 쓰인 책이라서 그런지, 개가 주인들을 평가하는 장면이 많이 등장한다. 도저히 버티지 못할 것 같으면 개는 미련 없이 그곳을 떠난다. 생의 시작이 유기견이었던 터라, 전전긍긍하지 않는다. 마치 자기 힘으로 삶을 개척하는 듯한 모습이 웃음을 자아내기도 한다. 개 팔자가 상팔자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은 개들이 더 많다는 사실. 특히 책에 등장했던 한 가족 이야기는 화가 날 정도였다. 그렇게 좋다고 키우던 어느 날, 개를 버리기 위해 길을 나선다. 이미 집에서부터 밥도 제대로 못 얻어먹고, 서로 핑계만 대던 가족이었기에 그럴 수밖에 없다 싶긴 하지만 그래도 오랜 시간을 같이 보낸 생명을 그렇게 쓰레기 버리듯 버리는 건 너무한 거 아닌가? 백구처럼 돌아올까 봐 그런지, 주인들은 무인도 같은 섬에 개를 버리기도 하고, 먼 곳까지 가서 개를 두고 오기도 한다. 집에서 자란 개들은 그러다 보니 로드킬을 당하는 경우가 상당수다. 주인공 개는 그런 면에서 참 성숙(?) 하다고 해야 할까? 버리는 것 까지는 이해하는데, 제발 밥이라도 제대로 얻어먹게 사람들이 좀 사는 곳에 버려달라는 하소연은 씁쓸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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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본 것 - 나는 유해 게시물 삭제자입니다
하나 베르부츠 지음, 유수아 옮김 / 북하우스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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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이런 농담을 즐긴다는 게 무척 아이러니한 일이라는 것도 아주 잘 알고 있고요.

플랫폼에서 이런 단어들을 삭제하느라 온종일 시달리는 상황에서 말이에요.

하지만 우리가 이런 농담에 웃어대는 건 무슨 도덕적 비판이라기보다

금지된 것을 갖고 노는 희열에 더 가까웠어요.

어쩌면 우리가 얼마나 강하고 회복력이 좋은지를

우리 자신과 서로에게 증명하는 방법이었는지도 모르겠어요.

p. 57

서비스직 종사자의 스트레스가 사회문제가 된 지 상당히 오래되었다. 이제는 웬만한 콜센터에 전화를 하게 되면, 직원 보호 조치에 관한 멘트가 들려오고 녹음이 되는 경우도 상당수다. 그럼에도 언어폭력으로 스트레스를 받는 서비스직 종사자는 여전히 많다. 여기에 유해 게시물에 대한 문제에서 우리 역시 자유롭지 못하다. 인기 연예인들이 서울의 한 장소에서 벌인 버닝썬 게이트를 비롯하여, 불법 촬영물을 버젓이 공유된 웹사이트에 올리는 등의 문제 등은 이미 사회 문제로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왔다. 무분별하게 퍼져 나가는 유해 게시물에서 과연 자유로울 수 있을까? 원본만 지운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는 너무 잘 알고 있다. 순식간에 리트윗 하고 퍼져나가는 영상들 때문에 결국 자살을 택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낯설지 않다. 이 책의 소제목을 읽고 사실 처음 든 생각은 '다행이다.'였다. 적어도 유해 게시물을 삭제하는 일을 하는 누군가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더 나아가 유해 게시물은 어느 누가 봐도 유해한 영상들일 텐데, 그 영상을 삭제하기 위해서는 영상을 볼 수밖에 없고, 그런 영상에 장시간 노출되는 직업을 가진 그들 또한 앞에서 언급한 서비스직 종사자처럼 크나큰 스트레스와 트라우마에 시달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까지 미치게 되었다.

책 안에는 화자이자 주인공인 케일리는 대규모 플랫폼의 하청업체인 헥사에서 근무한다. 케일리가 하는 일은, 유해 게시물을 보고 판단하여 삭제와 유지를 결정하는 일이다. 이 일을 택한 이유는, 흥청망청 돈을 써대는 애인 때문에 생긴 빚을 청산하기 위해서였다. 기존에 하던 직장에 비해 더 많은 보수를 주었기에 케일리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처음 면접을 보고, 업무능력을 평가하는 자리에서 다행히 케일리는 합격하게 된다. 하지만 일을 할수록, 케일리와 동료들은 각종 스트레스에 노출되어 있다. 그뿐만 아니라 일일 할당량을 채우기 위해, 화장실에 가는 것도 쉽지 않다. 자리에서 일어나면 초시계가 작동할 정도니 말이다. 물론 그들이 평가한 정확도는 97% 이상이 되어야 했다. 처음에는 아무렇지 않아 보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상행동을 하는 직원들이 생겼다. 케일리의 동료 중에 로베르트는 감수 팀원인 제이미에게 테이저건을 겨눌 정도로 스트레스가 심했다. 문제는 단지 스트레스로 끝나는 게 아니라, 그들의 일상에도 악영향을 끼친다는 것이었다. 중독자 수준으로 끔찍하고 잔인한 영상에 노출된 직원들은 일상에서 벌어지는 일에 대한 판단조차 쉽지 않고, 잔인한 상황들에 대해 잔인하다고 느낄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된다. 진짜 끔찍한 것은 유해 게시물을 유해하다고 느끼지 못하는 상황이 되는 것이 아닐까?

케일리는 변호사인 스티틱에게 자신이 헥사에 근무하며 보고 느꼈던 부분을 전달하는데, 스티틱 말고도 케일리의 주변 인물들은 이 책에 제목과 같은 질문을 수시로 던졌다. 그녀가 그곳에서 무엇을 보았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어찌 보면 헥사라는 회사의 부당함을 고발하는 것 같지만, 그런 영상을 아무렇지 않게 찍어올리는 사람들의 문제도 생각해 봐야 할 것 같다. 처음부터 그런 유해 게시물을 올리지 않았다면 케일리와 동료들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이 나오지 않았을 테니 말이다. 책 안에는 다양한 유해 게시물에 대한 언급이 등장한다. 차마 상상할 수 없는 끔찍한 영상들은 글로 읽는 나 역시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다.

소설임에도, 실제적인 이야기들 안에서 저자는 독자들에게 소설 속 상황을 직접적으로 드러내며 환기를 시킨다. 그리고 생각할 여지를 던진다. 과연 그들이 본 것은 무엇일까? 그리고 그들은 다시 평범한 일상을 살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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