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가 쉬워졌습니다 - 똑소리 나고 똑 부러지는 똑똑한 정리
윤주희 지음 / 아이스크림미디어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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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보니 소위 저장강박증이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저기 구석구석 물건이 쌓여있는 우리 집이 자꾸 떠올랐기 때문이다. 사 모으는 것은 아니지만, 물건을 잘 못 버린다. 어렸을 때는 하나에 꽂히면 돈이 생길 때마다 사 모았던 거 같은데, 지금은 사지는 않지만 집 안으로 들어온 물건이 집 밖으로 나가질 못한다. 아이 장난감, 아이 옷도 작아진 것 중에 상태가 괜찮은 것은 여전히 가지고 있다. 주변에 누가 필요할까 싶어서다. 요즘 가장 문제는 책이다. 워낙 책을 좋아하는 터라, 방 하나가 책으로 도배가 되었다. 처음에는 책장을 하나 더 추가하는 정도였는데, 이제는 이중 주차는 물론 책장 선반과 바닥까지 점령하는 상태가 되었다. 그러다 보니, 내가 가지고 있는 책인 지 모르고 중복 구매를 하는 경우도 더러 생겼다.

정리 혹은 미니멀한 삶에 대한 책을 종종 접한다. 사실 미니멀 하면 무조건 버려야 한다는 생각이 있는데, 이 책의 저자는 이야기한다. 미니멀이 꼭 버림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이다. 내게(혹은 가족) 필요한 것만 남기는 것이 바로 미니멀한 삶이란다. 그렇다면 어떻게 정리를 해야 할까?

내가 제일 크게 범하는 오류가 날을 잡아서 정리하고자 하는 것이다. 저자는 하루 15분 정리 시간을 가지라고 조언한다. 무엇인가 거창하게 하려고 하기에, 시간을 따로 만들어서 하려고 하기에 정리가 힘들어진다. 나 역시도 책 정리를 비롯하여 뭔가를 하려면 시간이 없다는 핑계를 대기 일수다.(사실 워킹맘이기에 시간이 진짜 없긴 하다.) 저자는 나와 같은 독자들을 위해 정리의 순서를 이야기한다. 가령 바닥에 아무것도 없게 만들기, 있던 위치에 갖다 두기, 잠들기 전 옷은 세탁함 속에 넣어두기처럼 짬을 내서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다 보면 굳이 정리 시간을 내야 할 필요가 현저히 줄어든다.

정리의 팁이 등장했는데, 특히 공간을 활용하는 정리 법들의 경우 실제 활용도가 높을 것 같다. 가령 싱크대에 텀블러를 정리하는 법에는 다 먹은 1000ml 우유갑을 활용하여 세로가 아닌 가로로 보관하는 것이나, 장롱의 경우 압축봉을 활용해 남는 공간에 더 수납할 수 있도록 구성하는 것 등이 도움이 되었다.

 

 

 

책 속에는 주거공간의 용도에 따라 정리할 수 있도록 한 장을 할애하고 있다. 가령 부엌, 거실, 공부방, 베란다, 욕실 등 각 구역마다 어떻게 정리하면 좋을지 before와 after로 눈에 들어오게 비교 설명해 주었고, 정리가 힘든 옷이나 속옷, 양말 등을 예쁘게 정돈하는 법도 사진으로 담겨있어서 편리했다. 아쉬움이 있다면, QR코드를 통한 동영상이나 조금 더 세세한 사진이 있다면 활용도가 더 좋았을 것 같다. 두세 장의 사진으로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정리해야 하는지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선은 묵혀뒀던 숙원사업인 서재에 책 정리부터 해야겠다. 재미있고 요긴하게 읽은 만큼, 다른 누군가에게 흘러가 또 행복을 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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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맛있는 하루를 보내면 좋겠어 - 츠지 히토나리가 아이에게 들려주는 인생 레시피
츠지 히토나리 지음, 권남희 옮김 / 니들북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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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바빠도 제대로 된 요리를 할 것.

거기에 그 나름의 시간을 쏟을 것.

그것이 내게는 회복의 첫걸음이 됐다.

낯익은 작가 츠지 히토나리의 레시피북을 만나게 될지는 상상도 못했다. 냉정과 열정 사이 blu의 작가. 이 책을 통해 그의 근황을 알게 되었다. 싱글 대디가 되었고, 프랑스에 살게 되었고, 10살에 이혼했던 아들은 이제 장성한 성인이 되었다고 한다. 처음 아빠가 아들에게 주는 레시피라는 책의 내용을 듣고 오래전에 읽었던 공지영의 딸에게 주는 레시피가 떠올랐다. 그 책은 자신의 딸 위녕에게 쓴 책이었다. 이 책과 다른 점이 있다면, 아빠가 아닌 엄마가 만든 책이라는 것과 레시피가 사진이 아닌 그림이라는 것 정도 일 것이다. 물론 두 작가의 공통점이라면 싱글대디(맘)이 되었다는 것과, 자신의 자녀에게 레시피와 함께 마음을 나누었다는 것이겠다.

사실 작가의 사생활에 대한 이야기는 잘 모른다. 그저 책 속에 살짝 등장하는 이야기를 토대로 유추했을 뿐이다. 낯선 곳에서 혼자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말로 표현이 안 될 정도로 힘들 것 같다. 아마 그 힘듦이 제대로 표현된 것은 책의 마지막 장이 아닐까 싶다. 이혼 후 아들도, 본인도 큰 상처를 입고 먹는 것조차 잊고 지냈던 시간 속에서 잠든 아들의 눈물을 보고 아빠는 멈춰 있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가장 먼저 회복해야 할 것은 먹는 것. 그때부터 작가는 아들을 위한 음식을 하나 둘 만들기 시작한다.

책 속에 담겨있는 레시피들은 작가가 직접 만든 사진이 담겨있다. 프랑스에 살아서 그런지, 대체로 프랑스나 이탈리아 음식이 많고(파스타류) 일본인이기에 일본식 레시피가 응용되어 등장한다. 전반부에는 스파게티 같은 면을 이요한 요리가 가득하고, 후반부에는 고기나 생선 등 다양한 식재료를 이용한 요리들이 등장한다. 마지막 장에 쿠키에 이르기까지...

레시피와 함께 저자는 자신의 인생의 경험과 감정을 아들에게 나긋나긋 풀어낸다. 아들이 좋아하는 요리와 함께 아들과의 기억과 경험들이 녹아있다. 비슷해 보이는 식재료들이 등장하지만, 마지막에 완성된 요리는 저마다 다른 모습을 띄고 있다. 가령 요리의 시작은 다지거나 크게 썬 마늘을 올리브유를 두른 프라이팬에 볶는 것이다. 거기까지는 모든 요리의 공통이다. 그 이후 양파를 볶기도 하고, 토마토가 들어가기도 하고, 익힌 해산물이나 고기, 채소가 등장하기도 한다. 요리와 글을 보면서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사람은 누구나 엄마 뱃속에서 아무것도 가지지 않고 태어난다. 마치 올리브유에 마늘을 볶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살면서의 환경, 경험들이 쌓이고 쌓이면 색다른 요리처럼 각자 자신의 개성을 뽐내며 자신만의 색을 발산한다. 식탁에 둘러앉아 오늘 하루의 일을 털어내며 즐겁기도 하고, 힘든 하루를 넋두리하기도 한다. 똑같은 듯 다른 우리의 삶이 요리 속에 들어있는 것 같았다.

결혼 전에는 요리하는 것을 참 좋아했는데, 아이를 키우며 직장 생활을 하다보니 오늘 뭐 먹을까가 가장 힘든 고민이 된 것 같다. 익숙한 요리들은 아니었지만, 저자의 아들을 향한 마음이나, 인생의 단맛과 쓴맛은 충분히 공감이 갔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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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땅의 야수들 - 2024 톨스토이 문학상 수상작
김주혜 지음, 박소현 옮김 / 다산책방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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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아이와 함께 간 동물원에서 단연 인기 있는 동물은 호랑이였다. 우리나라의 지도가 호랑이 모양이라는 것을 비롯하여, 최초의 설화라 할 수 있는 단군왕검 이야기에도 호랑이가 등장한다. 물론 호랑이와 관련된 동화나 이야기는 떠올리는 것만 해도 여러 개에 달할 정도로 호랑이는 우리에게 익숙한 동물이다. 책의 시작 역시 호랑이가 등장한다.

사냥꾼인 남경수는 아버지로 부터 호랑이 사냥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자란다. 호랑이의 공격으로 목숨이 위태로울 지경에 이르기 전에는 먼저 공격을 하지 말라는 것이 가장 중요한 가르침이었다. 그날 경수는 호랑이를 만난다. 하지만, 자신을 공격하지 않는 호랑이를 지나쳐보낸다. 하지만 겨울이었고, 밤이 깊었고, 경수가 입고 있는 옷을 너무 낡았고 제대로 끼니를 먹지 못한 탓에 스러지기 직전이었다. 꼼짝없이 동사를 할 지경에 놓인 경수는 하늘을 보고 죽자는 생각에 하늘을 쳐다본 채로 쓰러진다. 조선의 호랑이가 꽤 비싼 값에 팔려나가는 걸 아는 일본 군인들은 일본어가 능통한 상인 백씨를 길잡이로 세우고 겨울 산을 돌아다닌다. 그러다 길을 잃는다. 호랑이는 커녕 꼼짝없이 산에서 얼어죽을 지경에 처한 일본군. 그때 대위 야마다 겐조가 쓰러진 경수를 발견한다. 조선인 임에도 경수를 살려야겠다는 생각이 든 야마다는 자신의 식량을 경수에게 먹인다. 정신을 차린 경수의 도움으로 무사히 마을로 내려온 일본군. 길을 잃게 만든 게 백씨라는 생각에 백씨를 살해하는 하야시 소좌. 경수도 처리하고자 하지만, 야마다는 그들을 말린다. 경수 덕분에 무사히 마을로 내려왔기 때문이다. 경수에게 담뱃갑을 건네며 자신의 이름이 야마다 겐조라는 것을 알린다. 그렇게 그들의 인연은 시작된다.

기생집에 식모로 딸을 보내고자 했지만 계획이 틀어지고 만 옥희의 엄마는, 옥희가 그곳에 남겠다는 말과 기생 어미인 은실이 견습생으로 받아주는 대신 50전을 빌려주겠다는 말에 옥희를 맡기고 나온다. 그곳에서 은실로부터 기생이 가져야 할 교육들을 차근차근 받아 가는 옥희. 은실의 친딸인 월향과 연화와 친해진 옥희에게 그날의 기억은 참혹했다. 사진관에서 월향을 눈독 들였던 하야시 소좌가 은실의 기방으로 찾아와 월향을 범한 것이다. 옥희는 월향이 수박을 먹고 싶다는 말에 자리를 피한 덕분에 화를 면하긴 했지만, 그 일로 월향은 임신을 하고 만다. 딸이 일본 장교의 아이를 가졌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지 않았던 은실은 월향과 연화 그리고 옥희를 사촌동생이자 기생인 단 편에 경성으로 보낸다.

경수에 의해 살해된 백씨는 시신이 무사히 수습되고 장례까치 치르게 된다. 그에 대한 감사의 뜻으로 백씨의 조카이자 행상인 천 씨에게 은실은 정인이자 월향의 아버지가 준 은가락지를 보낸다. 사실 가지고 있는 돈을 독립군 장군인 그에게 모두 보냈던 터라 수중에 가지고 있는 것이라곤 은가락지 하나뿐이었기에, 은실은 그 소중한 것을 답례로 보낸 것이다. 아버지 경수가 죽은 후, 베개 맡에서 은가락지와 담뱃갑을 발견한 정호는 경성으로 떠난다. 그리고 거기서 거지인 미꾸라지를 만나고, 왕초인 영구를 이기고 왕초가 된다. 건강이 좋아 보이지 않는 아이에게 선뜻 자신의 음식을 양보했던 정호에 대한 소문은 일대에 퍼지고 40여 명을 거느린 거지 대장이 된다. 그리고 정호는 옥희를 만나게 되는데, 그녀에게 첫눈에 반하고 만다. 거지 대장에서 독립군으로 변모하는 정호와 옥희의 정인으로 옥희로부터 뒷바라지를 받고 무사히 학업을 마치지만, 그녀가 기생이라는 탓에 결국 그녀와 헤어지는 한철. 그리고 역시나 기회주의자인 인물의 대표격인 성수.

소설의 배경은 일제 치하부터 1960년대까지다. 한국계 미국인인 작가 김주혜의 외할아버지는 독립운동을 하셨다고 한다. 작가의 외할아버지처럼, 우리 할아버지도 일제강점기 옥고를 치른 독립운동가 시다. 하지만, 부끄럽게도 평생을 한국에서 산 나조차 그 시대에 대한 지식은 참 미천하다. 흥미롭지만 아픈 역사 속에서 다양한 시선을 느끼게 되었고, 또 다른 그 시대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방법으로 나라를 위해 희생하고, 헌신한 그들의 이야기가 야수의 이야기와 어우러져서 신선하기도 했다. 시대는 달라졌지만, 여전히 책 속에 등장하는 뜨거운 가슴을 가진 그들도, 자신의 이익을 위해 서슴없이 변절하는 그들도 존재하는 것 같다. 머리와 가슴과 행동이 일치하는 사람이 되고자 오늘도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역사의 판단 앞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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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와 나 - 한없이 다정한 야생에 관하여
캐서린 레이븐 지음, 노승영 옮김 / 북하우스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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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제목을 보는 순간, 한 권의 책이 떠올랐다. 길들여지지 않는(야생의) 여우가 등장하는 그 책! 바로 어린 왕자다. 처음 제목만 보고 어린 왕자의 등장한 여우(?)에 관한 책일까 하는 생각이 살짝 들기도 했다. 물론 쓰고 나니 그 여우를 어떻게 찾나! 싶긴 하지만...^^;;;

생물학 박사이자, 대학에서 종종 강의를 맡아서 하는 책의 저자인 캐서린 레이븐. 그녀는 야생의 삶을 좋아한다. 외떨어져 있는, 마트에 가려면 시내까지 50km를 운전해서 가야 하는 곳에 사는 그녀에게 새로운 일과가 생겼다. 그 일과는 보통의 사람이 상상할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바로 여우와의 만남이다. 오후 4시 15분. 여우가 그녀를 찾아온다. 2미터 이상의 거리를 띄운 곳에서, 물망초 꽃을 그녀와 사이에 두고 여우는 그곳에 찾아온다. 그런 여우에게 저자는 만날 때마다 선물을 준다. 15분씩 어린 왕자를 읽어주는 것이다. 물론 책을 읽고, 상당 시간을 기다려준다. 여우의 말을 듣기 위해서다. 물론 그녀는 여우를 길들이려 하지 않는다. 여우를 애완동물처럼 대하지도 않고, 여우에게 무엇을 요구하지 않는다. 그녀가 그렇듯 여우 역시 자신이 할 일을 한다. 서로의 시간을 주고받으며 둘은 자연스레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는 행동을 할 뿐이다.

물론 여우에 대한 이야기뿐 아니라, 책 속에는 자연의 모습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었다. 여우가 잡는 밭쥐와 들쥐부터 말코손바닥사슴, 영양붙이(아메리카 가지뿔 영양), 아메리카들소 등과 달맞이꽃, 버터꽃, 난쟁이산망초 처럼 낯선 이름의 식물과 동물들이 종종 등장한다. 어느새 막내 여우가 저자에게는 특별한 의미가 있는 "우리 여우"가 되고, 여우와의 기억은 결국 한 권의 책이 된다.

책을 읽으며 "한없이 다정한 야생에 관하여"라는 부제의 의미를 알 것 같았다. 자연과의 교감은 이런 데 사용하는 것이구나! 싶기도 했다. 책을 읽기 전에는 야생과 다정한이 절대 어울릴 수 없는 사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저자이기에 다정한 야생을 경험할 수 있겠다 싶기도 하다.

그리고 궁금했던 여우의 모습. 책을 통해 만난 우리 여우는 내게도 특별했다. 그래서 그런지 여우의 모습이 궁금했는데, 책의 마지막 장에 여우의 사진이 담겨있다. 아마 책을 읽은 독자라면, 사진 한 장의 담긴 여우가 조금 더 특별하게 다가올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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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재밌는 의학 이야기 - 고대 의학에서 정신의학, 뇌과학까지 흐름으로 읽는 의학사 이토록 재밌는 이야기
김은중 지음 / 반니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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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들어있는 어떤 것보다 현명한 의사의 경험이 더 가치 있다."

-라제스(알 라지)

의학 드라마나 소설 등을 종종 접하게 된다. 스토리는 이해하지만, 의사들의 대화 중 전문용어가 등장하는 장면에서는 어렵다는 생각과 함께, 의사들은 저 말을 다 알아듣는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초입에서 저자가 이야기하듯이, 우리 사회에서는 소위 성적이 좋은 상위 1%의 사람들은 의대 혹은 법대를 생각하게 되는 것 같다. 적성보다는 성적이 먼저라는 생각도 든다. 적성이 맞아도, 성적이 안되면 못 들어가는 곳이기에 말이다.

"재밌는"이라는 말이 붙어있었지만, "의학"이야기가 과연 재미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우리가 생각하는 의사나 의학은 앞에서 말했듯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단어들이 남발되는 상황이 반복되기 때문이다. 나처럼 생각하는 독자들을 위해 저자는 용기를 북돋아준다. 코로나 시대를 지나며, 생각보다 우리가 아는 의학용어들이나 지식들이 많아졌다는 것과 함께 처음에는 어려울 수 있지만, 반복적으로 접할 수 있도록 책을 썼기에 마지막 페이지를 덮게 되면 한결 편안한 의학사를 만날 수 있을 거라는 것과 흥미를 잃지 않도록 책을 구성하려고 노력했다는 말 말이다.

다행이라면, 저자의 다짐(?)은 거의 맞았던 것 같다. 의학의 발전사와 사건들이나 일화가 한대 어우러져서 흥미롭기도 했고, 등장인물들의 캐리커처와 함께 그가 발견하고 이루어낸 성과를 키워드로 써주는 센스! 가끔은 그림 도표나 마인드맵 등을 통해 내용을 한눈에 파악하도록 구성하기도 했고, 각 시대의 서술 말미에는 한 번 더 정리를 해주기도 해서 눈에 쏙쏙 들어왔던 것 같다.

세계사를 비롯하여 그동안 단편적으로 만났던 이야기들이, 이 책을 읽으며 한결 정리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가령 얼마 전에 뇌과학 파트에서 만났던 측두엽 절제술을 받았던 환자 H.M의 일화를 다시 만날 수 있었고, 중세 시대 흑사병에 대한 부분 역시 깔끔하게 정리할 수 있었다. 특히 궁금했던 게, 의학 드라마를 보면 늘 그들이 의사로 한 발을 내딛는 시점에서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한다. 도대체 무슨 내용을 담고 있는지 내심 궁금했었는데 실제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보고 적잖이 실망했다. 물론 3천 년 전의 생각과 주관으로 만들어졌기에 그럴 수 있겠지만 말이다. 물론 현재는 1948년 제네바 선언에서 개정된(지금도 개정되고 있다고 한다.) 내용을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참 많은 이야기가 담겨있었는데, 흑사병에 대한 이야기를 건너뛸 수는 없을 듯싶다. 지구상 인류에게 엄청난 재앙이었던 흑사병은 지금 봐도 두려울 수밖에 없었을 것 같다. 팬데믹이라고 하는 코로나 상황이 현재진행형인 상태기에 더 와닿기도 했다. 가뜩이나 중세 시대는 고대부터 이어진 종교적 영향으로 병은 신의 저주 혹은 악마로부터 온다고 믿었기에 더 큰 참사가 되었던 것 같다. 물론, 흑사병 시대를 지나며, 인류는 종교와 상당히 분리되게 되었고 이는 르네상스와 함께 의학의 새로운 발전을 이룩하기도 했다. 어느 상황이던, 명과 암이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그 밖에도 미국의 초대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이 후두 개염으로 투병 중에 사혈법 때문에 사망했다는 사실과 산욕열(씻지 않은 손으로 분만을 도왔던 의사에 의해 옮아 산모가 사망)을 발견한 제멜 바이스가 동료들로부터 지탄을 받고 결국 정신병원에 감금되었다가 산욕열과 비슷한 패혈증으로 사망하게 되었다는 사실은 너무 씁쓸했다.

코로나19를 지내고 있는 우리의 모습 역시 훗날에 보았을 때 과거의 의학사 속 이야기처럼 명과 암이 드러날 것이다. 과연 코로나19는 우리에게 어떤 명(明)을 선사했을지 무척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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