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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곤 해방 - 세계적 실천윤리학자 피터 싱어의 담대한 제언 ㅣ 아포리아 6
피터 싱어 지음, 함규진 옮김 / 21세기북스 / 2025년 4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십수 년 전 태국과 미얀마의 국경지대를 다녀온 적이 있다. 그곳에는 미얀마로부터 탈출한 난민들이 많이 모여살고 있었는데, 우리의 교육을 담당하셨던 선생님을 통해 미얀마의 근현대사와 세계사에 대한 강의를 통해 들은 내용을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같이 지내며 피부로 느끼게 되었다. 선생님은 한국으로 돌아가게 된다면 어느 곳이든지 적은 돈이라도 꼭 기부를 했으면 좋겠다는 조언을 해주셨고 그 이후로 지금까지 몇몇의 후원처를 정해 매달 정기적으로 후원을 하고 있다.
몇 년 전, 유엔 인권자문 위원인 장 지글러가 쓴 『왜 세계의 가난은 사라지지 않는가』를 읽으며 적잖은 충격을 받았었다. 그로부터 적잖은 시간이 지났고, 이번에 만나게 된 빈곤 해방 역시 내게 또 다른 면의 충격을 선사한 책이었다. 책의 초반에 들었던 충격은 과거에 비해 빈곤층의 수치가 많이 줄었다는 사실이다. 저자가 던진 세 가지의 질문 모두 내가 예상했던 것과 달랐다. 물론 저자와 같은 사람들의 노력 때문이라는 사실을 나 또한 인정한다.
1. 지난 20년 동안, 세계의 극빈층 인구는 거의 절반으로 줄었다.
2. 오늘날 전 세계 1세 미만 유아 가운데 80%가 백신 접종을 받는다.
3. 세계 인구의 과반수는 중간소득 국가에서 살고 있다.
이 물음에서 진하게 표시한 부분이 답이었는데, 나는 세계 극빈층이 두 배 이상 늘었고, 백신 접종률은 20%, 세계 인구의 과반수가 저소득 국가에 살고 있다고 답했다. 물론 나와 같은 답을 한 사람이 20명 중 19명이었다고 한다. 저자는 이 책을 쓰면서 왜 이런 물음을 던졌을까? 바로 그동안 많은 사람들의 후원의 결실이 헛되지 않았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서였다.
이 책은 기존의 빈곤에 대한 사회비평의 책과 결이 좀 달랐다. 빈곤은 나라님도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관심이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는 사실이다. 대신 그를 위해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에 대해 조금 더 냉철하게(때론 과민반응을 일으킬지도 모르겠다) 이야기한다. 수십억 원짜리 슈퍼카를 타고, 세계의 몇 안 되는 요트를 소유하며, 자신이 번 돈의 상당수를 여러 소비로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특히 저자는 우려를 표한다. 물론 그들의 벌이나 씀씀이는 그들이 그동안 노력한 노동의 결과임은 틀림없지만, 과연 빈곤층들은 그들과 같은 노력을 하지 않아서 여전히 가난에 허덕이는 것일까? 그보다 더한 노력을 해도 가질 수 없는 사회의 현실 속에 살고 있는 이들도 상당수라는 사실과 함께, 내가 벌어들인 소득의 상당수는 내가 그들보다 훨씬 좋은 환경에서 태어나고 살고 있기 때문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또한 우리가 가지고 있는 도덕적 잣대에 대해서 저자는 다른 견해를 이야기한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에 예민하다. 특히 그것이 다른 사람에게 보인다면 더더욱 그렇다. 내가 기부한 액수가 드러나는 것이 공치사처럼 보이지만, 그렇다고 그 기부가 잘못된 것일까? 아니 오히려 그렇게 드러나기에(드러내기 위해) 더 많은 돈을 기부한다면, 오히려 당장 죽음에서 벗어날 수 있는 사람들에게는 더 좋지 않을까?
피터 싱어는 실천윤리학자이지 도덕학자가 아니다. 옳고 그름보다 당장 절대적인 빈곤으로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책에 어디를 펴도 마주할 수 있다. 많은 기부로 잘난 척을 해도 좋다. 오히려 다 많은 기부를 얻어낼 수 있다면, 그래서 그 돈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당장 죽음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면 말이다. 책을 통해 빈곤에 대해 다시금 생각할 수 있었고, 그동안 했던 기부들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받은 것 같아서 내심 기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