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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시대에 오신 것을 애도합니다 - 더 늦기 전에 시작하는 위기의 지구를 위한 인류세 수업 ㅣ 서가명강 시리즈 39
박정재 지음 / 21세기북스 / 2024년 12월
평점 :


2024년 여름은 정말 겪어보지 못한 폭염으로 인해 참 힘들었다. 계속되는 열대야에 매일 에어컨 없이는 살 수 없는 지경이어서, 퇴근과 동시에 가동해서 출근과 동시에 끄는 상황이 매일같이 반복되었다. 그러면서도 기후 위기에 대한 생각들 때문에 온도를 최대로 높여서 26~27도 사이로 맞춰뒀던 기억이 있다. 2024년 여름이 앞으로의 여름 중 가장 시원할 것이라는 말이 재앙 아닌 재앙으로 더 이상 웃을 수 없었다.
요 근래 들어 기후 위기에 대한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들린다. 관련 서적만도 여러 권 읽었던 것 같다. 편의를 위한 인간의 행동들이 기후 위기를 불러일으켰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하지만 아는 것과 행동은 별개일 수 있다는 것. 알지만 당장의 편의를 포기할 수 없는 근시안적인 행동들이 멈추어지지 않는다는 사실 또한 충분히 알고 있다.
이 책 역시 기후 위기가 들어있지만, 조금은 다른 관점에서 접근해서 신선했다. 우선 인류세라는 용어가 처음부터 끝까지 등장한다. 인류세가 과연 무엇일까?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는 다섯 번의 대멸종을 거쳤다고 한다. 여기서 말하는 멸종은 급격한 기온 변화로 상당수 종이 지구상에서 사라지고, 새로운 종이 탄생한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잘 아는 공룡 역시 그렇게 멸종을 했다고 본다. 현 지질시대는 홀로세다. 근데, 학계에서는 현시대를 다른 용어로 구분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1980년대 미국 고생태학자 유진스토머에 의해 처음 명명된 인류세는 노벨상 수상자인 크뤼천에 의해 학계에 알려지기 시작한다. 그렇다면 인류세는 언제부터일까? 책에서는 그 시점이 주장하는 사람에 따라 4가지로 나뉜다고 설명한다. 어쨌든 그동안의 기후의 변화와 달리 인간이 지구상에 등장하면서부터, 또한 인간이 획기적으로 편리함을 추구함에 따라 지구는 큰 영향을 받았음은 틀림없는 사실이기에, 학자들은 현시대를 홀로세와 구분되는 인류세라는 용어를 사용코자 하는 것이다.(하지만 2024년 세계지질과학 총회에서 통과되지 못해서 10년 후 재논의될 상황이다.)
책의 초입에는 멕시코 크로퍼드 호수의 퇴적층 바브의 이야기가 등장하는데, 참 신기했다. 바브에는 1960년대 정점을 찍은 핵실험의 흔적도 남아있다. 그래서 크로퍼드 호수는 인류세의 황금못으로 알려져있다고 한다. 우리의 모든 행동이 퇴적층에 기록되어 있다니...CCTV처럼 빼도 박도 못하는 상황이라 할 수 있어서 식은땀이 흐른다.
기후의 변화가 인류에 미친 영향 중에는 유독 눈에 띄는게 있었는데, 바로 저온기의 혼란 속에서 다양한 종교와 문명들이 등장했다는 것이다. 청동기와 철기 뿐 아니라 변화된 문명의 시작과 끝에는 바로 저온기가 등장한다. 그 혼란을 잠재우기 위한 새로운 문명과 철학, 종교의 탄생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참 신기할 따름이다.
얼마전 곤충에 관한 책을 읽다가, 곤충이 내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지구상에 꼭 필요한 존재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이 책에도 동일한 내용이 등장한다. 인류세에 발생한 문제들은 기후위기로 해수면이 상승하고 기후난민이 등장하는 것 뿐 아니라, 생태계 곳곳에 영향을 주어서 인류에 의해 타 생물군이 멸종하는 사태를 일으킨다. 결국 그 피해는 고스란히 인류에게 올 수 밖에 없다. 인류의 편리를 위해 한 무분별한 행동이 인류에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다는 사실을 여러 증거들을 통해 구체적으로 증명하고 있다.
인간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오만함을 이제는 벗어버려야 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지속가능한 개발이라는 말이 과연 실제로 가능할까? 또한 지구의 기온 증가를 막기 위해 연구되고 있는 에어로졸 막이 현재의 구원책이라고 하지만 과연 어느 누구도 해보지 않은 방법인지라 걱정이 앞서는 것도 사실이다. 설령 에어로졸 막으로 인해 온실효과를 막는다고 쳐도, 이로 인한 홍수나 가뭄이 일어나는 나라의 사람들이 반대한다면 이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효율성과 형평성의 문제는 기후위기에도 동일하게 등장하는 어려운 문제다.
기후위기와 생태계위기, 환경오염과 기후난민 등의 인류세의 문제들은 과연 해결할 수 있을까?
좀 더 체계적으로 정리된 내용 덕분에 이해는 어렵지 않았지만, 덕분에 더 많은 고민들이 생겨난 것도 사실이다. 서가명강 시리즈의 강점은 어려운 전문적 영역의 지식을 좀더 알기 쉽게 설명하는 것인데, 덕분에 인류세라는 새로운 용어와 그로 야기된 문제들에 대해 심도깊게 살펴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