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애하는 나의 앤, 우리의 계절에게 - 봄·여름·가을·겨울 그리고 다시 봄, 다섯 계절에 담은 앤의 문장들
김은아 지음, 김희준 옮김 / 왓이프아이디어(What if, idea)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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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보는 순간 무척 반가웠다. 내가 꾸준히(하지만 드문드문) 읽고 있는 앤 전집의 이야기가 담겨있었기 때문이다. 대학시절 같은 동아리 선배가 소개해 준 책이 바로 그린게이블즈 앤 시리즈였다. 만화로 본 빨간 머리 앤이 무려 10권짜리 전집이었다니... 그러고 보면 만화 앤도 어디까지 봤는지 기억이 나지 않기는 한다. 무슨 바람인 지 몇 년 전 그린게이블즈 앤 시리즈 전집을 구입했다. 그리고 나니, 책장 가장 위 칸에 자리를 잡고 묵힌 책이 되어버렸다. 우연한 기회에 책장 속 책들이 콧바람을 쐬게 되었고, 그때부터 한 권씩 파먹기 시작해서, 조만간 4권을 읽을 차례이다. 책 안에는 원서 8권의 내용과 그곳을 방문했던 저자의 이야기들이 같이 녹아있다. 빨간 머리 앤을 사랑하는 저자여서 그런지, 원서 속 앤의 이야기와 저자의 방문기와 자신의 경험이 책 안에 같이 담겨있다. 앤과 비슷한 생각, 비슷한 감정, 비슷한 상황들이 어우러지니 색다른 맛이 느껴진다.

특히 앤이 자신의 이름을 Ann이 아닌 Anne으로 불러달라는 대목이 나도 기억에 남는데, 저자의 이름과 내 친동생의 이름이 같아서 나도 피식 웃음이 났다. 내 동생도 은아가 아닌 은하로 꽤 자주 불렸던 기억이 있어서다. 사촌 언니가 크리스마스카드를 보냈는데, 내 이름은 제대로 쓰고, 동생 이름을 은하로 썼었어서 엄청 속상해했던 기억도 떠올랐다. 그래서인지, 둘째 딸의 이름도 "아"가 아닌 "하"로 지었던 것은 내 그 경험 때문이었나 보다. 막상 우리 둘째의 이름을 지어준 친정 아빠가 이번 크리스마스 선물 봉투에 "아"로 지어서 버럭 했던 건 안 비밀.

물론 10권 중 3권까지 읽긴 했지만(그리고 나는 원서가 아닌 번역본을 읽긴 했지만), 이 책 안에 담긴 앤의 이야기에 고개가 끄덕여지는 것은 나 역시 3권의 그린게이블즈 앤을 읽으며, 와닿는 문장들이 참 많았다. 처음에는 앤에 이런 문장이?! 하면서 놀랐던 기억도 있는데 이제는 앤이라는 인물에 대해 조금 친밀해져서 그런지, 고개가 자연히 끄덕여진다. 무엇보다 아직 읽지 못한 앤 속의 문장들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떠난 사람 뒤에는 끝을 맺지 못한 일이 남아 있게 마련이지.

하지만 그걸 마무리하는 누군가도 항상 있는 법이란다."

린드 부인이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다.

온 나라가 슬픔에 싸여있다. 갑작스러운 큰 사고에 어제 하루 종일 가슴이 먹먹해서 무엇도 손에 잡히지 않는 하루를 보냈다. 그래서인지, 책 속에 담겨있는 마지막과 죽음 등의 내용에 자꾸 눈이 가고 멈춰있게 된다. 책 속에 이 부분은 앤의 친구인 루비 길리스가 폐결핵으로 죽게 되는 장면에서 린드 부인이 힘들어하는 앤에게 건넨 말이다. 얼마 전 읽었던 부분이라서 이 부분을 읽으면서 해당 장면이 떠올랐다. 갑작스러운 이별은 모두를 아프고, 당혹게 한다. 이 페이지에 저자 역시 자신의 지인들과의 이별을 담아놓았다. 그저 상황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 입장인지라, 유가족들의 고통과 슬픔을 온전히 공감할 수 없지만, 그들의 마음에 위로가 찾아오길 기도해 본다.

어느 날 밤, 윌터가 물었다.

"엄마, 바람은 왜 행복하지 않을까요?"

앤이 대답했다.

"그건 바람이 이 세상이 시작된 순간부터 생겨난 모든 슬픔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란다."

앤은 길버트(학교에서 만난 첫날 빨강 머리라고 앤을 놀려 칠판으로 머리를 맞고 앤과 원수가 된 친구. 훗날 둘은 부부가 된다.) 사이에서 태어난 둘째 아들 윌터가 앤에게 물었던 말이다.(아직 책에서 만나지 못한 내용이었다.) 앤만큼이나 상상력이 풍부한 앤의 아이들은 이런 시적이고, 상상할 수 없는 질문을 털어놓는다. 어찌 보면 무척 철학적이라고도 할 수 있다. 우리 아이들에게 이런 질문을 받았다면, 나는 무척 당황스러웠을 거 같은데(바람과 행복이 같이 쓰일 수 있는 단어일까? 아주 더운 날 부는 바람이나, 몹시 추운 날 부는 바람이라면 몰라도... 뜬금없는 바람이라니;;;), 앤은 역시 특유의 상상력이 엄마가 되어서도 여전한 것 같다. 아들 윌터의 물음에 정말 시적으로 대답하는 걸 보면 말이다. 앤은 긍정적인 아이였지만, 세상을 살면서 슬픔을 자주 목도하다 보니 조금씩 어른스러워진다. 그렇다고 부정적으로 바뀐 것은 아니지만, 초반의 앤과 결이 조금씩 달라지는 것 같다. 그렇기에 아이의 질문에도 이렇게 대답을 해줄 수 있는 것 같다.

그린 게이블즈의 앤 원서와 저자의 경험 그리고 4계절이 어우러지니, 또 다른 앤이 완성되었다. 나라가 큰 아픔을 겪는 시점에 마주한 내용이라서 나 또한 더 감정이 이입되었던 시간이었던 것 같다. 시간이 꽤 흐르고, 다시 이 책을 만나게 된다면(그땐 남은 7권을 완독하고 나서였길 바란다.) 어떤 느낌으로 다가올 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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