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보는 순간 무척 반가웠다. 내가 꾸준히(하지만 드문드문) 읽고 있는 앤 전집의 이야기가 담겨있었기 때문이다. 대학시절 같은 동아리 선배가 소개해 준 책이 바로 그린게이블즈 앤 시리즈였다. 만화로 본 빨간 머리 앤이 무려 10권짜리 전집이었다니... 그러고 보면 만화 앤도 어디까지 봤는지 기억이 나지 않기는 한다. 무슨 바람인 지 몇 년 전 그린게이블즈 앤 시리즈 전집을 구입했다. 그리고 나니, 책장 가장 위 칸에 자리를 잡고 묵힌 책이 되어버렸다. 우연한 기회에 책장 속 책들이 콧바람을 쐬게 되었고, 그때부터 한 권씩 파먹기 시작해서, 조만간 4권을 읽을 차례이다. 책 안에는 원서 8권의 내용과 그곳을 방문했던 저자의 이야기들이 같이 녹아있다. 빨간 머리 앤을 사랑하는 저자여서 그런지, 원서 속 앤의 이야기와 저자의 방문기와 자신의 경험이 책 안에 같이 담겨있다. 앤과 비슷한 생각, 비슷한 감정, 비슷한 상황들이 어우러지니 색다른 맛이 느껴진다.
특히 앤이 자신의 이름을 Ann이 아닌 Anne으로 불러달라는 대목이 나도 기억에 남는데, 저자의 이름과 내 친동생의 이름이 같아서 나도 피식 웃음이 났다. 내 동생도 은아가 아닌 은하로 꽤 자주 불렸던 기억이 있어서다. 사촌 언니가 크리스마스카드를 보냈는데, 내 이름은 제대로 쓰고, 동생 이름을 은하로 썼었어서 엄청 속상해했던 기억도 떠올랐다. 그래서인지, 둘째 딸의 이름도 "아"가 아닌 "하"로 지었던 것은 내 그 경험 때문이었나 보다. 막상 우리 둘째의 이름을 지어준 친정 아빠가 이번 크리스마스 선물 봉투에 "아"로 지어서 버럭 했던 건 안 비밀.
물론 10권 중 3권까지 읽긴 했지만(그리고 나는 원서가 아닌 번역본을 읽긴 했지만), 이 책 안에 담긴 앤의 이야기에 고개가 끄덕여지는 것은 나 역시 3권의 그린게이블즈 앤을 읽으며, 와닿는 문장들이 참 많았다. 처음에는 앤에 이런 문장이?! 하면서 놀랐던 기억도 있는데 이제는 앤이라는 인물에 대해 조금 친밀해져서 그런지, 고개가 자연히 끄덕여진다. 무엇보다 아직 읽지 못한 앤 속의 문장들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