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결이 바람 될 때 (100쇄 기념 리미티드 에디션) - 서른여섯 젊은 의사의 마지막 순간
폴 칼라니티 지음, 이종인 옮김 / 흐름출판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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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살아갈 만큼 인생을 의미 있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한참 이 책이 출간되고 베스트셀러로 유명했을 때 책을 읽어봤다. 유능한 의사가 갑자기 폐암 4기 환자가 되었을 때의 상황이 참 아이러니했다. 뒷부분으로 갈수록 집중할 수 없어서 좀 힘들었던 기억 말고는, 딱히 떠오르는 게 없었다. 그리고 다시 만난 이 책은 그 사이 100쇄를 찍었고, 나는 그 사이 두 아이의 엄마가 되어 있었다.

첫 장을 넘기면서부터 그의 이야기 곳곳에 밑줄이 그어졌다. 원하는 것은 다 이룰 정도로 천재적인 인물이었다는 생각이 든 것은 스탠퍼드대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고, 케임브리지에서 의학의 역사를 공부한 후, 그는 다시 스탠퍼드로 돌아가 의학을 공부한다. 이름만 들어도 우와! 가 절로 나오는 대학들에 그는 세 번이나 들어간 것이다. 그것도 다 다른 전공을 가지고 말이다. 의사로의 능력도 참 탁월했던 것 같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 책에 매료된 이유는 바로 의사로 그가 가지고 있던 도덕적 판단의 기준과 환자를 생각하는 마음이었다.

하지만 이 길은, 책에는 나오지 않는 답을 찾고 전혀 다른 종류의 숭고함을 발견하며,

고통받는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육체의 쇠락과 죽음 앞에서도

인간의 삶을 의미 있게 만들어주는 것은 무엇인가 하는 문제를 계속 고민할 수 있는 기회였다.

이 책이 출간된 지 8년이 되었는데(아쉽게도 저자는 2015년 세상을 떠났다.) 책 안에 있는 상황이 우리나라에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어서 안타깝기만 하다. 이 책을 추천한 인물 중에 외상외과의 이국종 교수도 있는데, 그래서 더 이 책이 와닿았던 것 같다.(그의 책 골든아워는 완독을 한 후에도 다시 구입을 했었다.) 동료들은 좀 더 삶의 질을 찾을 수 있는 과(돈은 많이 벌고, 일은 힘들지 않은 과)를 찾지만 그는 고민하다 결국은 신경외과를 선택한다. 솔직히 사람이라면 누구나 3D는 피하고 싶지 않을까? 그렇다고 누가 그런 선택을 한 의사들에게 돌을 던질 수 있을까? 그럼에도 폴과 같은 선택을 해준 의사들에게 지극한 감사를 표한다.

내가 입학했을 때는 의과 대학원의 방침이 변경되어 학생이 눌랜드처럼 행동하는 일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학생들은 흉부를 절개하는 건 고사하고 환자를 만지는 것도 잘 허용되지 않았다.

하지만 바뀌지 않은 것이 있다면, 심폐 소생에 실패하고 피투성이가 되어서도

끝까지 환자를 살리려는 영웅적인 책임감이다.

이거야말로 진정한 의사의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글이 여전히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독자들에게 큰 감동을 선사하는 이유는, 그가 뛰어난 능력을 지닌 의사이기 전에 가슴이 따뜻한 의사였기 때문이리라... 그는 환자들을 대할 때, 업무적으로 대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의사였다. 그가 마주하고 있는 환자의 가족들에게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이 어떻게 남겨지길 원하는지를 스스로 생각하고 그대로 실천하는 의사였다.

메스로 해결될 상황이 아니라면, 외과의가 선택할 수 있는 도구는 따뜻한 말뿐이다.

불치병을 진단받고 나서 나는 두 가지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죽음을 의사와 환자 모두의 입장에서 보기 시작한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들었던 생각은, 과거에 읽었던 상처받은 치료자라는 제목의 책이었다. 만약 그가 완쾌되어서 의사로 계속 살고 있었다면 어땠을까? 병에 걸리기 전에도 그는 환자의 마음을 잘 들여다볼 줄 아는 의사였는데, 실제 그가 병을 경험했기에 더 공감하고 따뜻한 조언을 해줄 수 있는 의사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자꾸 아쉬움이 생겼다. 어떻게 보면, 의사였기에 자신의 몸 상태나 치료방법을 누구보다 잘 알았던 그이기에 치료의 시간이 쉽지 않았을 것도 같다.

아이를 가져야 하는가의 문제로 고민하는 부부의 모습도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내 앞에 죽음이 와 있음에도 나는 과연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고민할 수 있을까? 폴과 그의 아내 루시가 얼마나 삶에 대한 생각이 깊은 지를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되었던 것 같다.

의사의 의무는 죽음을 늦추거나 환자에게 예전의 삶을 돌려주는 것이 아니라,

삶이 무너져버린 환자와 그 가족을 가슴에 품고

그들이 다시 일어나 자신들이 처한 실존적 상황을 마주 보고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 돕는 것이다.

사실 처음에 읽었을 때와는 너무 다른 느낌으로 책의 첫 장부터 마지막 장까지 읽어나갈 수 있었다. 8년의 시간 동안 나 역시 엄마가 되었고, 세상을 보는 눈이 조금 더 깊어져서일까? 복직 후 다시 의사로 열심 있는 나날을 살던 폴에게 다시금 재발이 찾아왔을 때. 그리고 그게 그의 삶에서 다시 원래의 자리로 돌아갈 수 없는 것을 알았을 때 폴과 가족들이 겪은 상처는 정말 컸을 것이다. 과연 폴이 빡빡한 스케줄의 신경 외과의로 돌아가지 않았다면, 그는 삶을 더 영위할 수 있었을까? 1~2장은 폴이, 3장은 폴이 떠나기 직전부터 그의 죽음 이후에 얘기들이 아내 루시의 글로 엮여있었다. 아내 역시 의사였기에 폴의 상태를 조금 더 의학적으로 그렸던 것 같다. 마지막 장에 담긴 폴의 가족의 사진에서 눈물이 핑 돌았다. 그 사진이 그들이 그토록 원했던 생명의 모습일 텐데 말이다. 그럼에도 숨결이 바람 될 때를 통해 삶의 깊이와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기는 계기가 되었던 것 같다. 루시와 케이디가 아무쪼록 폴의 부재에 너무 마음을 쓰지 않고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참고로 루시는 같은 환경에 처한- 아내를 불치병으로 잃은- 남자를 만나서 재혼을 했다는 기사를 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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