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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칙 없는 삶 -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불온한 자유 ㅣ arte(아르테) 에쎄 시리즈 2
헨리 데이비드 소로 지음, 김용준 옮김, 박혜윤 기획 / arte(아르테) / 2024년 11월
평점 :
낮의 빛이 내면의 새벽을 비추지 않는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밤의 장막이 걷혀도 아침이 영혼에 아무것도 드러내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단지 화려하고 눈부실 뿐이다.
월든 호수에서 자연과 벗하며 사는 삶을 그린 월든의 저자인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에세이를 만났다. 원칙 없는 삶을 통해 만난 소로는 뭔가 좀 달랐다. 그래서 꽤 신선했다. 물론 그동안의 만났던 그의 글을 통해 소로가 자신의 목소리를 낼 줄 아는 청년이었다는 것은 알았지만, 내가 만든 이미지에 소로를 가둬두고 싶었던 것일까? 이 책을 통해 마주한 소로의 모습은 꽤나 충격적이었다. 아마 그런 충격에 대비해 추천의 글을 쓴 이는 소로를 그렇게 설명했나 보다 싶다.
월든을 통해 만난 소로는 자연을 좋아하고, 자연친화적인 이미지였다. 월든 호수에 오두막집을 짓고 살면서 때론 금욕적이고(금욕적이라기보다는 가난 때문이었겠지만), 당장의 편리와 편함보다는 자연은 생각하는 모습이 꽤나 인상적이었다. 근데 숲에 불을 지른(물론 고의는 아니었지만) 이후의 모습은 좀 다르게 보였다. 나름의 노력을 하긴 했지만, 결국 번져가는 불 앞에서 그는 주저앉았다. 당연히 뛰어다니면서 도움을 요청했기에(그리고 초반의 몇 명은 도움을 거절했기에) 그랬겠지만, 자신의 실수로 엄연히 자연의 상당수가 불타버렸는데 그 모습을 아름답게 바라본다니...! 불로 인해 100에이커(약 12만 평)이 타버린 상황에서 많은 어린 나무를 비롯하여 다람쥐와 같은 동물들도 삶의 터전을 잃었다. 불이 난 후 물고기가 타 죽어 있는 장면까지 봤지만 그는 생각보다 평온했다. "오히려 번개 때문에도 불이 날 수 있지 않은가? 이 불은 자연의 먹이를 먹어 치우고 있을 뿐이다."라고 생각하는 자세는 정말 충격적이었다.
어떤 상황이든 굴하지 않고, 자신의 소신을 말할 수 있었던 소로의 모습은 책 여기저기에서 드러난다. 생활에 여러 도움을 받은 스승이자 철학자 에머슨에게도 그는 자신의 생각을 말하며 비판을 가할 줄 아는 인물이었다. 그런 그의 특출난 가치관과 기행을 지켜보며 때론 거리 두기를 하긴 했지만, 책의 마지막 장에는 에머슨이 쓴 추도사도 담겨 있다.
특이한 행동이나 기행을 하긴 했지만, 소로가 가진 가치관은 굳건한 뼈대가 되기도 했다. 그중 노동에 대한 그의 생각을 표현한 글을 발췌해 본다.
미국 의회가 보호해야 하는 노동이 바로 이런 거 아닐까?
정직하고 인간다운 노동, 하루 내내 이어지는 정직한 노동,
빵 맛을 맛있게 하고 사회를 잘 돌아가게 만드는 노동,
모든 이가 존중하고 신성시하는 노동, 고되지만 누군가 꼭 해야 하는 노동 말이다.
여러 직업을 가지고 있던 소로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건 "자유"다. 근데 그 자유의 성격이 또한 특이하다. 보통은 나를 지키기 위한 자유를 꿈꾸는 데 비해, 소로는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가 나로부터의 자유까지로 자유의 역역을 확장한다. 나까지도 넘어서는 자유... 이 표현을 마주하고 보니, 소로의 기행에 가까운 행동들과 글들이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때론 모순되는 것처럼 보이는 소로의 모습은 어떤 것에도 얽매이지 않는 날 것 그대로의 자유로 연결된다. 그리고 그 자유에 대한 표현이 200년이 넘게 흐른 현시대에도 낯선데, 그 당시는 얼마나 낯설었을까 생각해 본다. 이 책을 통해 만난 소로를 한 줄로 요약하자면, 괴짜 혹은 자유로운 영혼이 아닐까 싶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굽히지 않고 자신만의 소신을 지키는 똥(?) 고집을 지닌 자유로운 영혼 헨리 데이비드 소로. 덕분에 소로에 대한 이미지가 철저히 깨지긴 했지만 한결 더 가까워진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