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큰아이와 큰아이의 절친을 데리고 같이 키카를 간 적이 있었다. 또래의 아이들을 데리고 갔던 터라, 막내까지 총 5명의 여자아이를 태웠다. 그중 3명은 동갑이었다. 아이들은 참 빨리 친해진다는 사실을 이번에도 깨닫게 된 것이, 차에 같이 타고 있던 또 한 명의 동갑내기와 오늘 처음 만난 큰 아이의 친구가 어느새 친구가 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그것도 차를 타고 이동한 40분 남짓 시간에 말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아제쿠라 카논과 고타키 유즈 역시 우연한 기회에 친구가 되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그들의 상황이 참 다르면서도 닮아있다는 사실이다. 7살인 초등학교 2학년(일본 소설이라서 나이가 우리와 다른 것 같다.) 학교를 마치고 유즈는 엄마의 손에 이끌려 한 허름한 아파트에 들어선다. 엄마는 평소 봉사활동을 잘 하는 사람이다. 유즈에게 어디로 간다는 말도 하지 않고, 엄마를 따라나선 길. 엄마는 어디 가지 말고 30분 기다리라는 말을 남긴다. 그 아파트에는 이상한 눈빛의 아저씨가 살고 있었다.
심심했던 유즈는 집 앞을 서성인다. 그러다 아파트 위에서 한 여자아이가 밖으로 떨어질 거 같은 상황을 목격한다. 위험해 보이던 찰나 유즈의 이마 위로 뭔가가 떨어진다. 피처럼 빨간 액체다. 아이가 떨어진 걸까? 아파트 그 자리에는 누구도 없었다. 그리고 숨 가쁘게 뛰어나온 한 아이를 마주한다. 아제쿠라 카논이라고 자기 이름을 설명한 그 아이와의 첫 만남이었다.
매주 수요일이면 유즈의 엄마는 유즈를 데리고 그 아파트로 와서 30분을 머물다 갔다. 그리고 유즈에게 수요일은 카논을 만날 수 있는 날이었다. 30분 밖에 안되지만, 유즈와 카논은 조금씩 기억을 공유하게 된다. 그리고 그날 카논이 위험하게 서 있었던 것이 옆집 언니(치사씨)가 키우는 앵무새 황록이 때문이었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부족함 없는 삶을 살고 있는 유즈. 하지만 엄마와의 관계는 힘들다. 무섭고 냉랭한 엄마 덕분에 어린 유즈는 엄마의 눈치 보는 법을 먼저 터득했으니 말이다. 결핍은 카논 역시 마찬가지였다. 카논을 통해 묘사된 그녀의 엄마는 안아키 같이 보였다. 자연치유, 자연식 등 인공적인 것을 삶에서 배제하다보니 카논은 평범한 일상이나 음식들을 누려본 적이 없다. 당연히 주변과 교류 역시 끊어진 상태다. 가정 형편이 어렵기도 했지만, 이런 극단적인 일상의 배제는 결국 카논에게도 결핍을 선사한다. 그래서인지, 유즈와 카논은 다르게 보이지만 많이 닮아있는 아이였다. 황록이가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카논은 유즈와 함께 황녹이를 묻어주려고 했다. 하지만, 그날따라 유즈의 엄마는 볼일이 일찍 끝났고, 그날 이후 유즈와 카논은 다시 만날 수 없게 된다.
시간이 흘러 15살이 된 유즈. 고등학교에 입학을 한다. 교복에 배지를 깜박해서 급하게 달고 있던 중에 멀리서 뛰어오는 짧은 커트 머리의 아이를 보게 된다. 그리고 그를 불러 세우는 순간, 8년간의 기억이 순식간에 재생된다. 그 아이의 이름 아제쿠라 카논을 들었기 때문이다. 카논은 입학 전부터 소문이 무성하던 아이였다. 전액 장학금을 받는 아이, 연예인급 외모를 가진 아이로 말이다. 도대체 8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그리고 어떻게 카논이 유즈가 다니는 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을까? 유즈는 카논이 반갑지만 섣부르게 다가갈 수가 없었다. 카논과 다시 가까워지면, 과거의 기억들이 다시 재생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연히 마주치는 일은 종종 있었다. 카논의 집안 형편이 여전히 어렵다는 것과, 생활비를 벌기 위해 새벽과 저녁에 알바를 하고 있다는 사실도 듣게 된다. 유즈 역시 냉담한 엄마의 그늘에서 여전히 고군분투 중이다. 그래서 유즈에게는 그때처럼 카논이 유일한 안심처가 된다. 하지만 이번에도 둘은 헤어지게 된다.
유즈와 카논은 세 번째 재회를 한다. 14년이 흘러 29살이 된 유즈와 카논. 이미 유즈는 결혼을 한 상태이다. 과연 세 번째 만남은 이들에게 또 어떤 기억을 선사하게 될까?
제목의 의미가 궁금했는데, 생각보다 초반에 이 말이 등장했다. 황록이를 묻어주기 위해 삽을 찾던 카논이 유즈에게 한 말이다. 그리고 그 말은 책 안에 여러 번 등장한다. 단지 한 문장일 뿐인데, 그 의미는 책을 읽으며 점점 짙어지는 것 같다. 둘 다 마음이나 환경이 밝고 행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말은 자신들의 괴로움을 벗어나 밝고 희망차고 행복한 곳으로 나가고 싶은 바람이 만들어 낸 한 문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