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일드 - 4285km, 가장 어두운 길 위에서 발견한 뜨거운 희망의 기록
셰릴 스트레이드 지음, 우진하 옮김 / 페이지2(page2)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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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여행길을 통해 내 인생을 다시 반추할 수 있을 줄 알았지.

나를 무너뜨린 모든 것들에 대해 생각을 하고 스스로 다시 새로 태어나는 기회가 될 줄 알았어.

그렇지만 현실은, 최소한 지금까지는 고작해야 바로 눈앞에 놓인 육신의 고통에 급급해하고 있을 뿐이다.

이 여행을 시작한 이후로 내 인생의 고통들은 해결되기는커녕 마음속을 왔다 갔다 하고만 있을 뿐이었다.

P.161

십 년 전, 일주일의 한 권 책을 소개해 주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어떤 책을 읽어야 좋을지 몰랐던 나는, 그 책을 통해 책을 소개받는 걸 좋아했는데 그때 마주했던 책 중 한 권이 바로 이 책 와일드였다. 그리고 내 위시리스트 속에 담겨있다가 몇 번 나올 뻔했지만 책의 두께 때문에 늘 다시 들어가는 처지에 있었던 와일드를 제대로 마주하게 되었다. 두께만큼이나 그녀의 고통과 성장 그리고 진심이 담겨있어서 더 감동적이었다.

이 책의 저자인 셰릴 스트레이드는 20대 초반에 어머니를 잃는다. 갑작스러운 진단을 받은 엄마는 1년 정도 남았다는 의사의 말과는 달리 채 2개월을 버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다. 갑작스러운 엄마의 부재는 큰 딸인 셰릴에게 벗어날 수 없는 고통을 선사한다. 집안의 구심점이었던 엄마의 부재는 결국 동생들과의 관계에도 영향을 미친다. 마지막 학기를 남기고 있던 셰릴은 결국 학교를 졸업하지 못했고, 사이좋았던 남편과도 이혼을 하게 된다. 하루하루 우울함 속에서 술과 섹스에 빠져 살던 셰릴은 결국 마약에까지 손을 대게 된다. 그런 그녀가 우연히 마주하게 된 PCT를 소개하는 책자를 보고 그녀는 여행을 결심한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 3년이 되는 해였다. 참고로 PCT는 Pacific Crest Trail의 약자로 미국 서부 4,300km에 달하는 트래킹을 말한다. 그녀는 서점에서 마주한 PCT 책자를 토대로 여행을 계획한다. 엄마를 잃은 후, 삶을 포기하고 살았던 셰릴에서 벗어나 과거의 셰릴로 돌아가기 위한 여정이었다. 우선 짐부터 난관이었다. 물만 12L(무게로 따지면 12kg)에다가 각가지 짐으로 배낭은 그녀의 키를 훌쩍 넘을 정도로 크고 무거웠다. 덕분에 그 무거운 짐을 가지고 한 걸음을 떼는 것도 쉽지 않았다. 첫 장면부터 그녀는 등산화 한쪽을 잃어버린다. 이미 그녀의 몸은 여기저기는 근육통과 쓸리고 찔린 상처들, 발바닥에 가득 잡힌 물집들로 이미 만신창이인 상황이었다. 중간중간 히치하이킹을 통해 차에 탈 때마다 혹시나 위협이 되는 사람일까 봐 고민이 가득하다. 그뿐만 아니라 갈수록 몸이 안 좋아지자 느려진 걸음과 산길 여기저기서 만나게 되는 짐승들은 그녀를 더 두려움에 떨게 만든다. 다행이라면 조금씩 시간이 지날수록 그녀는 PCT를 함께 걷는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그들은 그녀에게 조언을 해주기도 하고, 따뜻한 위로와 용기를 주기도 한다. 물론 모든 사람들이 다 좋을 순 없었다. 상처가 되는 만남도 있었고, 그녀의 트래킹에 좋지 않은 반응을 보이는 사람도 있긴 했지만, 그럼에도 셰릴은 길을 걸으며, 서로의 상황과 삶을 나누는 동료들을 만나며 조금씩 상처를 치유한다.

PCT에 대한 준비 시간이 길었던 것도 아니고, 하필 그가 트래킹을 시작한 해는 폭설이 내려 과연 완주를 할 수 있을지조차 불분명한 상황이었다. 거기에 그는 초보 중의 초보였고, 짐은 너무너무 많았다. 당연히 며칠 만에 포기하고 싶은 생각들이 수도 없이 들었다. 발톱이 빠지고, 넷째 손가락 살이 다 날아가고, 온 발이 물집투성이에다가, 각종 상처들로 몸 어느 곳도 성하지 않은 상태였지만 몸의 아픔 보다 마음의 아픔이 더 컸을 셰릴. 그럼에도 그녀는 그 길을 완성했고, PCT에 대한 그녀의 서사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이제 나는 믿게 되었다.

더는 무언가를 잡으려 텅 빈손을 물속에서 휘저을 필요가 없다는 것을.

단지 헤엄치는 물고기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을.

그리고 알게 되었다.

다른 모든 이의 인생처럼 나의 인생 역시 신비로우면서도 돌이킬 수 없이 고귀하다는 것을.

P. 575

셰릴만큼은 아니지만 나도 머리가 무겁거나 생각이 많아질 때면 어딘가를 걸었던 것 같다. 걷다 보면 자연스레 문제보다 현재 내가 걷는 길에 집중하게 되었고, 그러다 보면 자연스레 괴로움이 조금은 지워지는 경험을 했다. 셰릴 역시 그 경험을 통해 이후의 삶을 살아가는 용기를 얻었을 것이다. 그녀의 이야기가 깊은 인상을 주었던 것 역시 그녀의 여정을 눈으로나마 동행하며 그녀의 감정과 상황들을 같이 마주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시작과 끝의 글의 온도차가 있다. 3개월 간의 트래킹을 통해 그녀의 마음 또한 변화되었다는 것을 기억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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