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예보: 호명사회
송길영 지음 / 교보문고(단행본) / 2024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자신의 서사를 만들어갈 고유한 무대에 대한 고민에서 '나의 이름'으로 살아갈 출발선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p.286

시대 예보의 두 번째 주제는 바로 호명 사회다. 호명? 이름을 부른다는 뜻의 호명이 어떻게 우리가 마주할 사회일까? 첫 번째 책은 제목부터 확실히 이해가 되었지만 이번 책은 그가 어떤 서사를 가지고 호명 사회를 접목해 이해시킬지 사뭇 궁금했다.

첫 장인 시뮬레이션 과잉에서부터 고개가 끄덕여졌다. 우선 나는 시뮬레이션을 즐긴다. 행동으로 하는 시뮬레이션이 아닌 머리로 하는 시뮬레이션 말이다. 그렇다는 것은 좋게 말하면 안정성을 즐긴다는 말이고, 나쁘게 말하면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다는 뜻이 될 것이다. 나 역시 그렇다. 머릿속으로 일어날 상황들을 시뮬레이션하고, 또 해서 긍정적인 답이 나오게 되면 비로소 행동에 옮긴다. 그러다 보니, 대부분은 생각에 갇혀 폐기되고 실제로 실행하는 것은 극히 드문 상태가 된다. 책에 등장한 시뮬레이션 과잉을 통한 현재의 우리 모습 중 하나는 의대 준비반이다. 정부와 의료계는 여전히 지루한 싸움을 계속하고 있다. 정부가 의대생을 늘리는 발표와 함께 발 빠른 학부모들은 지방으로 주소를 이전하고 전학을 보냈다고 한다. 지방 의대가 자기 지역 인재에게 가산점을 주는 것을 노린 조치다. 물론 주중에는 지방 학교를 다니고, 주말이면 서울로 올라와 의대 준비반 수업을 듣는다. 고등학생이 아닌 초등학생들이 말이다. 더 나아가 유치원에도 의대 준비반이 있다니 경악할 노릇이다.

나 역시 대학에 입학과 동시에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었다. 물론 마지막 한 학기를 남겨두고 휴학까지 하면서 시험에 매달렸지만, 합격 커트라인과 내 점수 사이에 상당한 격차가 있었기에 그때를 마지막으로 공부를 접고 취업 준비를 했다. 내가 시험을 준비할 당시에도 커트라인은 90점에 육박했다. 결국 2문제 이상 틀리면 합격하기 힘든 상태였다. 문제는 실제 시험과목이 실무를 하는데 그리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과잉된 경쟁 속에서 뽑기 위한 시험을 보다 보니, 모두가 한 문제를 더 맞추는 것에 의의를 두고 공부에 매진하게 된다. 물론 문제 역시 더 난해해진다. 비단 이것은 공무원 시험뿐 아니라 수요에 비해 공급이 많은 모든 영역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다른 사람보다 우위에 서기 위한 시뮬레이션의 과잉은 결국 모두의 에너지를 낭비하는 지경에 이를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결혼 준비나 취업 준비, 돌잔치 준비, 출산 준비 등 각종 준비를 위한 체크리스트도 결을 같이 한다. 아무런 경험이 없는 초보들을 위한 도움의 손길인 체크리스트가 실제 경험을 하고 보면 과하다는 느낌이 들 때가 많다. 초보들의 입장에서는 선택의 영역이 아닌 필수적인 영역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더 과하고 과한, 시뮬레이션의 과잉이 도래하게 되는 것이다.

그럼 실제 경험을 제공받는 것은 어떨까? 선배들의 경험이 과거에 비해 인정을 받지 못하는 세대가 도래했다. 과거와 현재 시대 사이에 괴리가 크기 때문이다. 열심히 하는 만큼 보상이 주어지던 과거에 비해 현재는 그렇지 못하다. 이제는 개천에서 용이 나던 시대에서 벗어난 지 오래다. 그렇기에 기성세대들의 경험은 현 세대에게 과거만큼의 능력이나 존경이 아닌 꼰대의 이야기로 치부되는 경우가 많다. 더 나아가 그런 얹어지는 이야기들이 현 세대에는 부담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내 삶도 감당이 안 되는데, 타인의 삶을 짊어져야 한다는 사실이 부담스러운 현 세대들은 결혼도, 회식도, 매일 마주하는 직원들과의 식사도 부담스럽게 느껴진다. 부장이 같이 밥 먹자고 할 때, 도시락을 싸왔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점심시간에 부장과 같이 앉아 밥을 먹으며 나눌 대화거리나 밥을 같이 먹는 시간조차 불편하고 싶지 않다는 뜻이 담겨있는 말일 수 있다. 반대로, 같이 한 끼 먹는 게 부담스럽지 않은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같은 취미나 공통의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과의 식사는 어떨까? 바로 그들끼리 새로운 동반자(여기서 반은 반려자 할 때의 반(伴)이 아닌 밥을 뜻하는 반(飯)이다.) 관계가 생성된다. 피가 섞였기 때문에 와 같은 선택할 수 없는 영역의 관계가 아닌 스스로 선택해서 만드는 동반자가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호명 사회는 과연 무엇일까? 이에 대한 가장 쉬운 예는 바로 충주맨 김선태 주무관이라 할 수 있다. 과거에는 회사라는, 사회라는, 학교라는 공동체 안에 속해서 나라는 존재를 드러내지 못했던 사회가 점차 개개인의 능력에 따라 자신의 이름을 드러내는 사회로 변화하고 있다. 충주시의 공무원인 그가 전국구로 이름을 알릴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유튜브 때문이었다. 그는 전문가도 아니고, 그저 충주시 유튜브를 관리하고 만드는 사람이었다. 충주시의 공무원이 아닌 김선태라는 이름 역시 우리의 기억 속에 박혔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의 노력과 열정과 성과를 인정받는 사회가 되었기 때문이다. 호명 사회는 유동화와 극소화를 통해 이루어진다. (유동화는 한 조직에 머무르는 시간이 짧아짐에 따라 개인들이 생존을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게 되는 것을 말하고, 극소화는 모든 것을 혼자 할 수 있을 정도로(충주맨도 영상 제작부터 편집, 업로드까지 모든 것을 혼자 한다고 한다.) 기술발전이 이루어짐에 따라 타인에게 부탁하는 일이 줄어들고 스스로 모든 것을 해내는 상황을 말한다.)

조직 속에 갇힌 개인이 아닌, 개인의 능력을 토대로 자신의 이름을 드러낼 수 있는 시대. 자신의 서사를 만들어갈 수 있는 호명 사회가 도래하고 있다. 앞으로의 시대가 기대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