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암동 랑데부 미술관
채기성 지음 / 나무옆의자 / 2024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익숙하지만,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동네가 바로 부암동이다. 대학 재학 시절 동아리 총 본부가 부암동에 있었기에 정말 많이 들어봤지만 아직도 다녀오지 못한 곳이 바로 부암동이다. 그래서일까? 책 이름에 대놓고 동네 이름이 들어간 이 책이 익숙하지만 낯설었던 내 기억을 일깨웠기에 더 궁금했다.

서울이지만, 서울 같지 않은 동네 부암동에는 아주 특별한 미술관이 있다. 이곳에는 일정 기간 동안 한 사람만을 위한 단 하나의 작품만 전시된다. 한 작품만 전시되는 것도 특이한데, 그 작품이 오로지 한 사람만을 위한 작품이라니... 미술관도 나름 영리를 목적으로 할 텐데(부암동 랑데부 미술관은 H그룹 재단에서 만든 곳이다.), 아무리 모 기업이 부자라도 특이하긴 하다.

미술관 이야기는 바로 윤호수라는 청년이 미술관에 출근을 하면서 시작된다. 아나운서 지망생인 윤호수. 번번이 낙방하던 차에 H그룹 아나운서 시험에 응시한다. 하지만 이번에도 낙방이다. 근데, 며칠 후 전화가 걸려온다. 혹시 아나운서가 아닌 미술관 행정직으로 근무할 생각이 없느냐는 전화였다. 실망스러웠지만, 번번이 고배를 마시던 호수인지라 유쾌하지는 않았지만 미술관으로 출근하기로 한다. 물론 마음에 안 들면 바로 짐 싸서 나올 생각을 가지고 말이다. 처음 들어선 미술관에서 호수를 맞이한 사람은 학예연구원인 손다미였다. 미술관에서 가장 높은 사람인 학예실장 오영균과 인사를 나눈 후, 다미의 안내로 미술관 전시실로 가는데 오실장의 뒷말에 마음이 상한 호수. 오늘만 출근하고 마려는 마음으로 전시실로 향하다가 청소를 하는 할머니를 만난다. 처음 보는 할머니는 호수에게 따뜻한 인사를 건넨다. 그 말이 아니었다면 호수는 다음 날부터 출근하지 않았을 것이다.

미술관을 살펴보니 정말 한 사람만을 위한 단 하나의 작품이 전시되고 있었다. 전시실 옆에는 사연의 방이라는 곳이 따로 있었다. 전시된 작품을 보고 자신도 사연을 남기고 싶다면 그 방에 들어가 글을 쓰면 된다. 남겨진 사연 중 하나를 뽑아 미술관에 소속된 화가가 작품으로 만들어준다. 전시된 작품을 보고 난 후 방명록에 글을 남겨도 좋다. 호수가 갔을 때 전시되는 작품은 한 젊은 카페 사장의 사연이었다. 열심히 노력해서 카페를 냈지만 매출 저조로 카페를 접게 되었고, 유일하게 남은 노트북마저 고장이 나서 너무 속상했던 사연자는 희망을 가지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전시실 안에는 자전거가 한 대 있었다. 그리고 자전거 페달을 밟자 조금씩 화면에 불이 들어오면서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힘들지만 목소리의 응원을 받으며 호수는 페달을 밟았다. 힘은 들었지만, 작품이 주는 여운은 컸다. 호수 역시 오랜 시간 준비했던 아나운서가 되지 못해 낙담하고 있었기에 사연자의 이야기가, 작품을 감상한 다른 사람들의 방명록이 다르게 느껴졌다.

책 안에 등장한 사연자들은 각기 처한 상황이 달랐다. 아내를 잃고 혼자 살아가는 70대 노인인 춘호는 위층에 이사 온 아이 때문에 층간 소음을 겪으며 날카로운 성격이 더 날카로워진 춘호, 조폭으로 일하다 이제는 일을 정리하고 싶어 하는 대오, 자신과 같은 꿈을 꿨던 아버지지만, 춤을 추고 싶다는 딸의 꿈을 거절하는 아버지와 딸 해주의 사연, 전직 야구선수였지만 부상으로 은퇴를 한 후 어머니의 식당 일을 돕는 정배 등 다양한 사연들이 어우러져 각자의 작품으로 등장한다.

그러던 어느 날, 화가의 갑작스러운 일로 랑데부 미술관 직원들이 작품을 만들어야 하는 상황이 된다. 화가였던 다미와 호수는 갑작스러운 상황에서 당황하지만 힘을 합쳐 작품을 완성한다. 그리고 베일에 감춰져 있던 화가의 정체가 드러나는데...

실제 있는 미술관은 아니지만, 이런 미술관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미술과 친하지 않은 나지만, 관람객들의 사연을 통해 사역자뿐 아니라 감상한 사람들 누구도 서로를 돕고 위로해 주고, 위로받을 수 있다는 것이 참 감동적이었다. 사연자들의 사연을 곱씹고 고민하며 작품으로 만들어낸 화가의 정체가 반전 아닌 반전이었는데 중반부가 넘어가고 나서 나 역시 갑자기 한 인물이 떠올랐는데 그가 정말 화가였다. 물론 그들의 관계나, 실제 직업 등은 정말 놀라웠지만 말이다. 타인의 고통과 슬픔에 함께 공감해 주는 것. 그리고 그런 따뜻한 위로가 담겨있었던 포근한 작품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