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부터 으스스하다. 귀여운 곰인형의 반이 피로 보이는 빨간 물이 들어있다. 한번 만난 적 있는 작가인 한새마 작가의 신작인 엄마, 시체를 부탁해다. 총 7편의 단편소설이 담겨있는 이 작품의 두 번째 작품이 표제작인 엄마, 시체를 부탁해다. 신기한 것은 각 작품마다 엄마가 등장한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등장한 엄마들은 각자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다. 미스터리 소설이라서 그런지, 각 소설은 각자의 색을 가진 반전이 담겨있다. 허를 찌르는 반전 속에서 정신을 차리고 나면 다음 작품이 기다리고 있다. 개인적으로 앞의 소설들 보다 뒤의 등장한 소설들이 좀 더 강렬했던 것 같다. 그리고 또 하나는 각 소설들에 등장하는 것은 "죽음"이다. 물론 죽음의 상황이나 누가 죽었는지 등 다양한 것은 소설 속 엄마들을 닮았다.
표제작인 엄마, 시체를 부탁해는 중3 딸 예나의 전화로 시작된다. 밤늦게 걸려온 전화에서 딸은 엄마에게 사람을 죽였다는 고백을 한다. 딸이 벌인 일을 저버릴 수 없었던 엄마는 딸 대신 시신을 처리하기로 한다. 딸은 자신을 몰래 따라와서 성폭행을 하려고 했기에 자신도 모르게 선반에 있던 돌로 괴한의 머리를 내리쳤다고 한다. 정당방위이라 하지만, 이미 벌어진 일에 대해 엄마는 딸을 들여보내고 혼자 사건이 벌어진 친정집 앞 텃밭에 구덩이를 판다. 그리고 시체의 옷을 다 벗긴 후 땅에 묻는다. 시체에서 눈에 띄는 가슴의 피어싱과 파란색 골무는 따로 챙긴 채 말이다. 피 묻은 옷가지는 모두 태워서 증거를 없애고, 혹시 몰라 땅 위에는 비닐과 함께 사두었던 비료를 올려둔다. 겨우 상황을 마무리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경찰이 집을 찾아온다. 한 일이 있는지라, 내심 경찰의 방문이 부담스러운 엄마에게 경찰은 딸의 소재를 묻는다. 평일 낮에 딸은 당연히 학교에 있었다. 얼마 전 사망한 채 발견된 정은정이라는 여학생에 대해 묻는 질문이었다. 사건이 벌어진 날, 딸은 어디에 있었냐는 물음이었다. 물론 그날의 알리바이는 확실했다. 하지만 뭔가 찝찝한 감이 있었던 엄마는 며칠 전 걸려온 같은 학교 서연 엄마의 전화를 받고 회의가 열리는 학교로 향한다. 문제가 된 것은 은정의 사망과 관련해서 학교 홈피에 올라온 내용 때문이었다. 자신의 딸은 은정의 사망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는 사실에 마음을 놓는 엄마. 하지만 과연 은정의 사고와 예나는 아무 상관이 없을까?
개인적으로 흥미로웠던 작품은 마더 머더 쇼크라는 제목의 작품이었다. 물에 빠지고 있는 차 안에 있는 한 여자. 차 유리창에는 자신이 5개월 된 아들을 죽인 살인자라는 말이 쓰여있다. 하지만 혜나는 기억이 없다. 드문드문 생각나는 기억들로 미뤄보면 자신이 정말 아들 노아를 죽인 것 같다. 카시트에는 아이가 없고, 안전벨트는 송곳이 꽂혀있어서 쉽게 풀리지 않는다. 하지만 자신의 손등에는 믿지 말라는 글자가 새겨져있다. 도대체 누굴 믿지 말라는 것일까? 그때 전화가 걸려온다. 혜나가 다니는 정신과의 의사였다. 자살을 의미하는 문자 때문에 전화를 했다고 한다. 근데 뭔가 의심스럽다. 약 봉투에 들어있는 약이 10개도 넘는데, 의사는 자신을 그렇게 많은 약을 처방하지 않았다고 한다. 조금씩 차오르는 물. 도대체 사건의 진실은 무엇일까?
혜나는 필라테스 강사로 결혼 후 6개월 만에 임신을 한다. 아이를 낳고 나서 혜나는 극심한 산후우울증을 겪는다. 그래도 자신만을 사랑해 주는 은오 덕분에 하루하루를 버틴다. 친절했던 시어머니 정인은 혜나가 임신을 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돌변한다. 한참 코로나로 심각한 상황이었기에 조리원이 아닌 집에서 몸조리를 하기로 한 혜나. 하지만 며칠 만에 아이를 막 대한다는 이유로 도우미를 자르고 자신이 그 역할을 하기 시작하는 정인. 아이를 안아보지도 못하게 하고 잡일을 혜나에게 시킨다. 그렇게 혜나는 몸도 마음도 만신창이가 된다. 정인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혜나는 과거 자신의 필라테스 학생이자 유아교육과 출신이었던 이나를 베이비시터로 채용한다. 하지만, 이나의 행동이 뭔가 의심스럽다. 자신의 남편을 유혹하는 이나의 모습과 퇴근이 늦게 되면 이나를 바려다 주는 은오 덕분에 혜나의 의심을 더 심해진다. 혹시 자신에게 정신과에서 처방한 약이 아닌 다른 약을 추가로 먹인 게 바로 이나일까? 모두가 의심스러운 상황에서 진실이 밝혀진다. 그리고 전혀 예상치 못한 반전이 기다리고 있다. 도대체 이들의 진실은 무엇일까? 정말 혜나는 아들 노아를 죽인 살인자일까?
나 역시 두 아이를 낳은 후 심한 산후우울증을 앓았다. 특히 둘째 때는 병원에서 약을 처방받기도 했다.(물론 하루 먹고 너무 독해서 중단하긴 했지만...) 그래서인지 혜나의 상황이 너무 이해가 되었다. 특히 혜나도 나처럼 직장을 다녔었기에 집 안에서 24시간 아이를 돌봐야 하는 상황이 주는 우울감이 더 심했을 것 같다. 물론 혜나가 처한 상황은 몸서리치도록 치밀하게 준비된 상황이긴 했지만 말이다. 특히 이 소설 속에는 같은 병을 앓은 두 여성이 등장하기에, 누구보다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그녀들이었지만, 다른 입장이었기에 둘의 비교가 더 기억에 남았던 것 같다.
짧지만 강렬한 소설들이 연달아 등장한다. 단편의 묘미가 아닐까 싶다. 뭔가를 예상하기 전에 사이다 급으로 진행되는 상황도 무척 만족스럽다. 책 안에 등장하는 엄마들 중에는 모성애가 넘치기보다는 뭔가 좀 다른 느낌의 엄마들도 있다. 그래서 더 색다른 느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