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참 종말과 휴거가 거론되던 때가 있었다. 세기가 바뀌는 1999년과 모 선교회로 나라가 들썩였던 때였다. 물론 그로부터 2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종말은 오지 않았다. 단, 기후 위기의 문제가 꾸준히 대두될 뿐이다. 이 가족이 살고 있는 시대에도 12월 21일 종말로 사회가 시끄럽다. 그리고 최씨 가족은 가족이라 하지만, 남보다 못한 사이로 한 건물 안에 살고 있을 뿐이다.
책의 화자는 8살이 된 최한라라는 아이다. 솔직하고, 똑똑한 한라의 친구 영민은 자기 할아버지의 말을 빌려 한라의 가족에게 별명을 붙여준다. "콩가루"라고... 그게 무슨 뜻인지 모르는 한라는 그저 콩가루를 좋은 의미로 받아들이는 것 같다. 자신의 가족을 그린 그림에 제목을 콩가루라고 지었으니 말이다.
최씨라고 불리는 외할아버지(외할머니의 사촌인 이모할머니 덕분에 한라는 최씨의 본명이 최가눔인줄 안다.), 이혼녀인 엄마 고은, 한때 삼촌이었지만 지금은 하마를 닮은 히메이자 이모 고완, 혼자 다락방에서 생활하면서 밖과 격리 중이지만 한라의 물음에 언제나 척척박사처럼 대답을 해주는 막냇삼촌 척척 고준, 외할머니의 막냇동생이라 지하실에서 살고 있는 뚜러정 정두섭 그리고 한라가 그 주인공이다. 이들은 가족이 맞지만, 서로 같은 집에 살지만 말을 섞거나 같이 모이지 않는다. 그저 생활공간만 같을 뿐이지, 남과 다름없으니 말이다. 그런 이들이 한곳에 모이게 된 계기가 있었다. 바로 오래전부터 가족의 일을 얘기해 주는 이모할머니의 방문 때문이었다. 이 이모할머니는 신내림을 받았는데, 그래서 집안의 대소사를 한 번씩 이야기해 줬다. 그중 하나가 돌아가신 외할머니의 병과 사망에 관한 것이었고, 고완의 성별에 관한 것이었다. 물론 둘 다 가족에게는 좋은 내용은 아니었다는 게 최씨를 비롯한 가족들이 이모할머니를 썩 좋아하지 않는 이유였다.
사실 최씨는 빈 땅에 주차장을 지어놓고 주차료를 받아서 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얼마 전 그 땅을 좋은 값에 팔게 된다. 그리고 그 땅에는 한 선교회가 들어와 배 모양의 건물을 짓는다. 그리고 동네 뒷산을 아라랏산이라고 부른다. 덕분에 동네는 사이비 출연으로 분위기가 뒤숭숭해진다. (사이비가 뭔 지 모르는 한라는 과거 뽀로로 모자가 아닌 뽀르르 모자를 샀던 경험에 비추어 사이비를 뽀르르로 부른다.)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 이모할머니가 집을 방문한 것이다. 이모할머니는 꿈에 돌아가신 할머니가 보였다고 한다. 그리고 가족들을 구하기 위해서 똘똘 뭉쳐서 12월 21일 전에 몸을 피해야 하는데, 그곳이 바로 최씨가 판 땅의 지하란다. 가뜩이나 남보다 더 한 상황의 가족들에게 이 이야기는 영양가 있는 말이 되었을까?
책 중간중간 가족사가 등장한다. 볼에 상처가 있어서 사진 한 장 남기지 않은 외할머니를 그리워하는 이야기, 원빈을 닮았다던 한라의 친부 이야기, 아무리 잘해도 아들인 동생에게 치여서 이쁨 받지 못했던 엄마 고은의 이야기, 법학과를 가고 싶었지만 가부장적인 최씨 덕분에 식품영양학과에 들어간 엄마 이야기, 어린 시절부터 자신의 성에 대해 고민을 거듭했던 히메 이야기 등 실제 이야기와 한라의 눈으로 보이는 가족의 이야기 속에서 웃음과 눈물의 그 어딘가를 헤매고 다닌다. 제목만큼이나 흥미로웠다. 왜 이들이 하나로 뭉칠 수 없었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풀어지면서, 이들 가족 안에 아픔까지 마주할 수 있었다. 사건이 마무리되고 이들은 똘똘 뭉치는 콩가루가 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