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본 것 - 나는 유해 게시물 삭제자입니다
하나 베르부츠 지음, 유수아 옮김 / 북하우스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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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이런 농담을 즐긴다는 게 무척 아이러니한 일이라는 것도 아주 잘 알고 있고요.

플랫폼에서 이런 단어들을 삭제하느라 온종일 시달리는 상황에서 말이에요.

하지만 우리가 이런 농담에 웃어대는 건 무슨 도덕적 비판이라기보다

금지된 것을 갖고 노는 희열에 더 가까웠어요.

어쩌면 우리가 얼마나 강하고 회복력이 좋은지를

우리 자신과 서로에게 증명하는 방법이었는지도 모르겠어요.

p. 57

서비스직 종사자의 스트레스가 사회문제가 된 지 상당히 오래되었다. 이제는 웬만한 콜센터에 전화를 하게 되면, 직원 보호 조치에 관한 멘트가 들려오고 녹음이 되는 경우도 상당수다. 그럼에도 언어폭력으로 스트레스를 받는 서비스직 종사자는 여전히 많다. 여기에 유해 게시물에 대한 문제에서 우리 역시 자유롭지 못하다. 인기 연예인들이 서울의 한 장소에서 벌인 버닝썬 게이트를 비롯하여, 불법 촬영물을 버젓이 공유된 웹사이트에 올리는 등의 문제 등은 이미 사회 문제로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왔다. 무분별하게 퍼져 나가는 유해 게시물에서 과연 자유로울 수 있을까? 원본만 지운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는 너무 잘 알고 있다. 순식간에 리트윗 하고 퍼져나가는 영상들 때문에 결국 자살을 택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낯설지 않다. 이 책의 소제목을 읽고 사실 처음 든 생각은 '다행이다.'였다. 적어도 유해 게시물을 삭제하는 일을 하는 누군가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더 나아가 유해 게시물은 어느 누가 봐도 유해한 영상들일 텐데, 그 영상을 삭제하기 위해서는 영상을 볼 수밖에 없고, 그런 영상에 장시간 노출되는 직업을 가진 그들 또한 앞에서 언급한 서비스직 종사자처럼 크나큰 스트레스와 트라우마에 시달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까지 미치게 되었다.

책 안에는 화자이자 주인공인 케일리는 대규모 플랫폼의 하청업체인 헥사에서 근무한다. 케일리가 하는 일은, 유해 게시물을 보고 판단하여 삭제와 유지를 결정하는 일이다. 이 일을 택한 이유는, 흥청망청 돈을 써대는 애인 때문에 생긴 빚을 청산하기 위해서였다. 기존에 하던 직장에 비해 더 많은 보수를 주었기에 케일리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처음 면접을 보고, 업무능력을 평가하는 자리에서 다행히 케일리는 합격하게 된다. 하지만 일을 할수록, 케일리와 동료들은 각종 스트레스에 노출되어 있다. 그뿐만 아니라 일일 할당량을 채우기 위해, 화장실에 가는 것도 쉽지 않다. 자리에서 일어나면 초시계가 작동할 정도니 말이다. 물론 그들이 평가한 정확도는 97% 이상이 되어야 했다. 처음에는 아무렇지 않아 보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상행동을 하는 직원들이 생겼다. 케일리의 동료 중에 로베르트는 감수 팀원인 제이미에게 테이저건을 겨눌 정도로 스트레스가 심했다. 문제는 단지 스트레스로 끝나는 게 아니라, 그들의 일상에도 악영향을 끼친다는 것이었다. 중독자 수준으로 끔찍하고 잔인한 영상에 노출된 직원들은 일상에서 벌어지는 일에 대한 판단조차 쉽지 않고, 잔인한 상황들에 대해 잔인하다고 느낄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된다. 진짜 끔찍한 것은 유해 게시물을 유해하다고 느끼지 못하는 상황이 되는 것이 아닐까?

케일리는 변호사인 스티틱에게 자신이 헥사에 근무하며 보고 느꼈던 부분을 전달하는데, 스티틱 말고도 케일리의 주변 인물들은 이 책에 제목과 같은 질문을 수시로 던졌다. 그녀가 그곳에서 무엇을 보았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어찌 보면 헥사라는 회사의 부당함을 고발하는 것 같지만, 그런 영상을 아무렇지 않게 찍어올리는 사람들의 문제도 생각해 봐야 할 것 같다. 처음부터 그런 유해 게시물을 올리지 않았다면 케일리와 동료들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이 나오지 않았을 테니 말이다. 책 안에는 다양한 유해 게시물에 대한 언급이 등장한다. 차마 상상할 수 없는 끔찍한 영상들은 글로 읽는 나 역시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다.

소설임에도, 실제적인 이야기들 안에서 저자는 독자들에게 소설 속 상황을 직접적으로 드러내며 환기를 시킨다. 그리고 생각할 여지를 던진다. 과연 그들이 본 것은 무엇일까? 그리고 그들은 다시 평범한 일상을 살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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