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나는 집으로 간다
나태주 지음 / 열림원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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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 인사

인생에서 마침표는 곤란해

느낌표나 물음표도 불편해

쉼표나 말줄임표 정도가 좋아

그렇게 하지 않아도

언젠가는 마침표가

찍히는 게 인생이니까.

p.155

시를 무서워한다. 서술형으로 길게 늘어놓은 글은 이해가 빠른데, 시에는 짧디짧은 단어 사이사이에 왜 이리 많은 의미가 숨겨져있는지, 찾아내는 게 정말 고역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피하기만 하면 안 될 것 같아서, 매년 새해가 되면 시집 1권 이상 읽기, 미술책 1권 이상 읽기를 세운다. 6월 중순의 끝 무렵에서 드디어 올해의 목표를 이루었다. (이제 해방이다!! ㅎㅎㅎ) 부끄럽지만, 이 유명한 시인의 시집을 처음 읽었다. 기회는 참 많았는데, 시집이라는 데 방점이 있어서다. 그럼에도 나태주 시인의 시를 처음 읽는 것은 아닌 게, 그 유명한 풀꽃을 읽었기 때문이다. 짧지만, 이 시는 확실히 이해할 수 있었다. 이런 시라면... 내가 거부감 없이 읽을 수 있겠다 싶긴 했지만 안면을 트는 데 참 오래 걸렸다.

이 시집의 제목은 "오늘도 나는 집으로 간다"이다. 책의 제목과 같은 제목의 시는 찾기가 어렵지 않다. 바로 서시 라는 이름으로 가장 먼저 등장하기 때문이다. 풀꽃을 읊으면서도 참 따뜻하고 보드랍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책 안에 들어있는 시의 대부분이 따뜻하고 밝다. 왜 이리 공주에 대한 시가 많은가 싶었는데, 공주에서 평생을 살아왔다는 사실을 시를 읽으며 알게 되었다. 제자들에 대한 이야기나 교사 생활에 대한 시도 중간중간 있었는데, 알고 보니 43년간 교사로 근무하다 교장선생님으로 퇴임하셨다고 한다. 원래 직업 시인이 아니라, 선생님이셨다니...! 풀꽃 역시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느꼈던 사연이 담긴 시였다.

다시 제목으로 돌아와 보자면... 집이라는 곳이 주는 의미, 저자가 느끼는 집에 대한 이미지를 알 수 있었다. 떠나지만 다시 돌아갈 곳. 여기서 집은 고향과도 같은 의미, 돌아갈 목적지라는 의미도 가지고 있다. 생각하면 그리워지고, 가고 싶고, 따뜻해지는 곳이 저자는 집이라 말한다. 물론 여기서의 집은 그저 건물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리라. 집 안에서 서로 체온을 나누고 함께 추억을 공유할 가족이 있어야 비로소 따뜻하고 돌아가고 싶은 집이 완성될 테니 말이다.

참 여러 편이 가슴에 와닿았는데, 두 편만 소개해 본다. 한편은 시작에서 소개했으니, 남은 한 편을 소개해 본다.

여행

힘겨운 날들

잠시 버리고

떠날 수 있음에 감사

아름다웠던 날들

그 자리에 남기고

돌아갈 수 있음에 감사

그걸 알게 된

나 자신에게

더욱 감사.

p.138

한 직군에서 43년을 근무하고, 52번째 시집을 낸 80세의 노시인. 마지막 말에서 그 역시 2023년 번아웃을 겪었다고 털어놓는다. 그리고 극복하기 위해 쉬는 시간을 가졌다고 한다. 번아웃을 겪어내며 만들어진 시집이 바로 이 책인 것 같다. 감사할 줄 알기에, 그는 다시 자신의 자리로 돌아와 또 한 권의 시집을 낼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나 또한 올해의 목표를 이루어내며 그동안 만나지 못했던 시인의 시집을 또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가슴에 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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