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를 위한 레시피 - 펜 대신 팬을 들다
조영학 지음 / 틈새의시간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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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요리하는 이유가 어쩌면 부재의 기억을 만들고

채우는 과정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럴 수 있다면 이 척박한 세상에서도 삶이 조금은 더 따뜻하고 덜 팍팍하지 않을까?

집밥을 기억하는 의미란 바로 그런 것이라 믿어본다.

함께한 시간을 영원히 기억하는 일.

제목이 궁금했다. 아내를 위한 레시피라니...! 그의 본업은 번역가다. 이름이 낯이 익지 않아서 그가 번역한 책을 찾아봤는데, 이럴 수가! 내가 읽었던 책들도 있었다. 소위 잘나가는 번역가인 그가 펜 대신 팬을 든 이유는 20여 년 전 아내가 다쳤던 날이라고 한다. 다행히 심한 부상은 아니었지만, 병원까지 데려다줄 수 없는 자신의 처지(집안의 운전은 아내 몫인 것 같았다.)에 아내를 도울 수 있는 것을 찾다 그날 이후로 아내에게 요리는 본인이 맡겠다는 말을 했고 그날 이후로 그는 20년간 가족을 위한 요리를 하는 번역가가 된다. 우선 부러웠다. 남은 시간을 아내가 행복해지는 게 자신의 목표라고 말하는 아내는 얼마나 행복할까? 그의 책 곳곳에서 아내를 향한 세레나데와 순애보가 가득 느껴졌다.

그러고 보면 어린 시절 엄마의 제1고민이었던 "오늘 뭐 먹지?!"가 내 고민이 된 지 벌써 8년이 되었다. 어렸을 때는 엄마의 그 말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세상에 맛있는 게 얼마나 많은데 매일같이 고민을 하는 걸까?' 싶었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단순하고 어렸던 것 같다. 메뉴를 결정하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식재료를 손질하고 요리로 만들어 내는 수고들을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거기다 엄마는 한 번도 쉬지 않고 지금까지도 현업에 종사하는 워킹맘이라는 사실. 내가 워킹맘이 되고 나니, 그 수고가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저자의 글 중 기억에 남는 부분이 여럿이었지만, 자신의 책을 읽은 독자의 질문을 언급했던 부분이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남편과 아이들이 부엌데기라고 업신여긴다는 말에 저자는 화가 났다고 한다. 아내를 대신해 요리를 만드는 자신은 멋진 남편이자, 특이하다고 책까지 내는데 평생을 요리와 살림을 한 여성에게는 부엌데기라는 말을 하는 현실 속 이중 잣대 때문이다. 그저 평범한 집밥 한 끼에도 참 많은 수고와 시간이 든다. 저자는 바로 그 부분을 책을 통해 구체적으로 언급한다. 자신이 겪어내고 경험했기에 할 수 있는 표현들 말이다.

요리만 하는 남자가 아닌, 요리 안에 가족을 향한 사랑과 아내를 향한 순애보를 담고, 텃밭을 일구어서 자신이 직접 기른 식재료를 가지고 본인만의 또 다른 작품을 만들어내는 그의 모습이 누구보다 멋있고 부러웠다. 책 속에는 종종 레시피도 등장하는데, 한번 즈음 도전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누군가는 음식을 그저 오늘 (어거지로) 해야 할 일로 여기는데-내 얘기다- 누군가는 음식에 삶의 이야기를 담을 수 있다는 사실. 나도 저자처럼 내일은 짜증 내지 않고 요리를 해봐야겠다. 삶을 담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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