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이 궁금했다. 아내를 위한 레시피라니...! 그의 본업은 번역가다. 이름이 낯이 익지 않아서 그가 번역한 책을 찾아봤는데, 이럴 수가! 내가 읽었던 책들도 있었다. 소위 잘나가는 번역가인 그가 펜 대신 팬을 든 이유는 20여 년 전 아내가 다쳤던 날이라고 한다. 다행히 심한 부상은 아니었지만, 병원까지 데려다줄 수 없는 자신의 처지(집안의 운전은 아내 몫인 것 같았다.)에 아내를 도울 수 있는 것을 찾다 그날 이후로 아내에게 요리는 본인이 맡겠다는 말을 했고 그날 이후로 그는 20년간 가족을 위한 요리를 하는 번역가가 된다. 우선 부러웠다. 남은 시간을 아내가 행복해지는 게 자신의 목표라고 말하는 아내는 얼마나 행복할까? 그의 책 곳곳에서 아내를 향한 세레나데와 순애보가 가득 느껴졌다.
그러고 보면 어린 시절 엄마의 제1고민이었던 "오늘 뭐 먹지?!"가 내 고민이 된 지 벌써 8년이 되었다. 어렸을 때는 엄마의 그 말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세상에 맛있는 게 얼마나 많은데 매일같이 고민을 하는 걸까?' 싶었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단순하고 어렸던 것 같다. 메뉴를 결정하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식재료를 손질하고 요리로 만들어 내는 수고들을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거기다 엄마는 한 번도 쉬지 않고 지금까지도 현업에 종사하는 워킹맘이라는 사실. 내가 워킹맘이 되고 나니, 그 수고가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저자의 글 중 기억에 남는 부분이 여럿이었지만, 자신의 책을 읽은 독자의 질문을 언급했던 부분이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남편과 아이들이 부엌데기라고 업신여긴다는 말에 저자는 화가 났다고 한다. 아내를 대신해 요리를 만드는 자신은 멋진 남편이자, 특이하다고 책까지 내는데 평생을 요리와 살림을 한 여성에게는 부엌데기라는 말을 하는 현실 속 이중 잣대 때문이다. 그저 평범한 집밥 한 끼에도 참 많은 수고와 시간이 든다. 저자는 바로 그 부분을 책을 통해 구체적으로 언급한다. 자신이 겪어내고 경험했기에 할 수 있는 표현들 말이다.
요리만 하는 남자가 아닌, 요리 안에 가족을 향한 사랑과 아내를 향한 순애보를 담고, 텃밭을 일구어서 자신이 직접 기른 식재료를 가지고 본인만의 또 다른 작품을 만들어내는 그의 모습이 누구보다 멋있고 부러웠다. 책 속에는 종종 레시피도 등장하는데, 한번 즈음 도전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누군가는 음식을 그저 오늘 (어거지로) 해야 할 일로 여기는데-내 얘기다- 누군가는 음식에 삶의 이야기를 담을 수 있다는 사실. 나도 저자처럼 내일은 짜증 내지 않고 요리를 해봐야겠다. 삶을 담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