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신라 왕릉실록 - 왕릉 스토리를 통해 읽는 역사의 숨소리
이규원 지음 / 글로세움 / 2024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경주에 가면 많은 고분군들이 있다. 가족여행으로 한 번, 수학여행으로 한 번. 경주를 갔었는데 어린 시절에는 불룩 솟아오른 릉이 왕들의 무덤인 지 모르고 언덕이 참 많구나! 하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워낙 오래전에 다녀왔기도 했지만 왕릉을 실제로 본 기억은 전혀 없다. 그저 언덕 같은 모습을 지나가면서 본 게 전부였던 것 같다. 오히려 조선시대 왕릉은 접근성이나 자료도 방대한 편인지라 익숙하지만, 통일신라의 왕릉 하면 고분군 말고는 딱히 떠오르는 게 없어서 책 제목을 보고 궁금하기도 했고 한편, 신선하기도 했던 것 같다. 이 책은 통일신라를 중심으로 기록하고 있는데, 저자의 전작인 삼국 왕릉실록의 후편이라고 한다. 놀라운 것은 그 오래된 신라의 왕릉이 상당수 경주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경주에 가면 불국사나 석굴암, 첨성대를 먼저 보기에 그런 면에서 왕릉은 상대적으로 소외되어 지나가는 길에 보는 것 외에는 마주할 수 없었던 탓이다. (개방을 안 했던 게 아닐까?, 도굴이 되어서 볼 수 없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저자의 책을 읽고 나니 아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우선 책의 두께가 상당한 벽돌이다. 왕릉에 대한 이야기뿐 아니라 역사를 어우르는 기반이 되는 배경지식들과 통일신라 각 왕의 이야기가 책 속에 어우러져 있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통일신라와 같은 시기에 있었던 발해를 비롯하여 주변국이었던 당과 일본의 이야기까지 함께 만날 수 있다. 단편적인 왕릉의 이야기가 아닌, 통일신라를 중심으로 주변국의 정세와 역사적 사실까지 함께 망라할 수 있기에 종합적이고 입체적으로 해당 시기를 바라볼 수 있다.

책을 읽으며 놀랐던 것은, 통일신라의 왕들의 이야기가 조선왕조실록 못지않다는 사실이었다. 아니 그보다 더 파란만장했다고 봐야 할 것 같다. 박혁거세로부터 시작된 신라가 당과의 연합을 통해 백제와 고구려를 복속시킨 후, 당에 의해 신라 역시 사라질 뻔한 아찔했던 상황을 이겨내는 한편, 가야의 멸망 후 신라로 병합된 가야 귀족층과 원래 신라 귀족 사이에 권력을 놓고 벌어지는 사건을 통해 축출되는 과정은 정말 한편의 영화라고 봐도 무방할 것 같다. 단종을 쫓아내고 왕이 된 비정한 삼촌 세조의 이야기보다 더 한, 통일신라로 판 삼촌들과 조카 간의 권력 다툼(이번에도 일방적으로 당한 거지만)은 이번에도 안타까웠다. 권력 앞에는 피도 눈물도 없는가 보다.

어린 아들을 대신해서 왕권을 잡은 모후의 이야기도, 정략결혼을 통해 세도정치에 휘둘린 이야기도 만날 수 있었다. 시대를 지우고 보자면 어느 시대인 지 구분이 안 갈 정도인 걸 보면 역사는 돌고 도는 게 맞는 것 같다. 한 번씩은 접해봤던 이야기들이 시대만 달리해서 반복되는 걸 보면 말이다. 유난히 자연재해가 넘쳐났던 시대에는 이 모든 것이 왕의 부덕으로 여겨지고, 자신이 물러날 수 없으니 나름의 해결책으로 상대등(왕 다음의 권력자, 현재의 국무총리?)을 갈아치우기도 한다. 어찌 보면 다른 형태이기는 하지만 현대에도 비슷한 상황(큰 문제를 가리기 위해 다른 이슈를 터뜨리거나 윗 사람이 옷을 벗는 등)을 적잖게 볼 수 있는 걸 보면 말이다.

이 책에는 31대 신문왕(30대 문무왕의 아들)부터 56대 경순왕까지의 왕릉과 그들의 집권기 이야기가 담겨있고, 중간중간 후고구려의 궁예, 고려의 왕건, 후백제의 견훤과 발해 그리고 당과 일본의 이야기도 만날 수 있다. 부록으로 각 왕조의 계보와 함께 신라 풍월주(화랑도)의 계보도 담겨있으니 중간중간 참고하면서 보면 이해가 빠를 것 같다.

아쉬운 점이라면 한자가 많고, 실제 사용되는 용어도 다분히 한자 투라서 술술 읽히지는 않는다. 풀어쓰기에는 가뜩이나 벽돌인 책이 더 두꺼워질까 봐 염려해서 그런 게 아닐까 혼자 짐작만 해본다. 용어를 좀 더 쉽게, 요즘 자주 쓰는 단어를 사용했다면 하는 아쉬움이 조금 남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