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도시, 당신의 헤테르토피아 - 진주의 기억과 풍경 그리고 산책자
김지율 지음 / 국학자료원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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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제목만 보고 철학 서적인가 하는 생각이 살짝 들었다. 낯선 단어가 하나 끼어있었기 때문이다. 헤테로토피아가 무슨 뜻일까? 궁금했다. 찾아보니 헤테로토피아는 유토피아적인 기능을 수행하면서도 현실 세계에 존재하는 공간을 말하는 단어라고 한다. 이상적인 공간인 유토피아는 말 그대로 이상적이어서 실제 하지 않는 상상 속의 공간을 말하는데, 그렇게 따지면 유토피아 보다 훨씬 나은 공간이 헤테로토피아가 아닐까 싶다. 이상적이지만, 현실 속에서 만날 수 있다니 말이다. 단어의 뜻을 알고 보니, 궁금했다. 저자가 생각하는 헤테로토피아는 과연 어디일까? 그녀가 나고 자란 곳, 그리고 지금도 살고 있는 곳 진주. 바로 이 책은 가까이 지내는 지인 K와 진주 토박이 저자가 함께 진주의 곳곳을 둘러보며 자신의 고향이자 헤테로토피아인 진주를 소개하는 책이다.

사실 진주하면 떠오르는 게 뭐가 있나 싶었는데, 딱히 떠오르는 게 없었다. 진주 남강에 왜장을 안고 투신한 논개와 몇 년 전 특이한 고명이 올라간 진주냉면과 비빔밥이 내가 진주에 대해 떠올릴 수 있는 유일한 것이었다. 다행이라면 책을 읽고 나니 진주하면 자연스럽게 떠올릴만한 것이 여러 개 생겼다.

책을 쓸 때 저자들이 가장 신경을 쓰는 게, 책의 도입부라고 한다. 이 책의 저자는 첫 번째 페이지에 진주 남성당 한약방의 한의사 김장하 선생을 소개했다. 도대체 김장하 선생이 누구길래, 책의 첫 장을 장식하는 걸까? 싶었는데 막상 책을 읽고 나니 그럴만하다는 생각에 연신 고개가 끄덕여졌다. 진주 사람 하면 누구나 남성당 한약방 약을 먹어봤다고 하는데, 그 이유는 좋은 재료로, 다른 한의원에 1/3 가격으로 약을 지어줬기 때문이란다. 약이 저렴하다고 유명한 것은 아닐 텐데, 지금은 은퇴를 했지만 선생은 평생을 나누어주는 삶을 살았다고 한다. 성경 속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말처럼 선생은 자신을 가진 걸 나누어주면서도 흔한 사진 한 장 남기지 않는다고 한다. 자신이 벌어들인 돈은 아픈 사람들의 눈물이니, 그 돈이 썩지 않도록 흘려보내었다는 말에 마음이 따뜻해지고, 한편으로는 정말 요즘 같은 때에 흔치 않은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홉 개의 테마로 진주를 소개하는 책 안에는 진주의 다양한 면모가 담겨있다. 극장과 기차역, 논개가 떠오르는 남강과 축제, 박물관과 시장 등 사람 냄새 물씬 풍기는 진주의 참 맛을 글과 사진을 통해 마주할 수 있었다. 특히 중앙시장의 상인들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데, 대학에 재학 중인 주점 사장님부터 어머니를 이어 복집을 운영하는 전직 간호사 출신 딸의 이야기, 4대째 이어받은 장의사 사장님과 공예사 사장님 이야기 등 그들이 중앙시장을 지키고 이어온 이야기 속에는 눈물과 감사와 보람이 가득 담겨있었다. 20대의 주점 사장님을 제외하고는 다들 60대로 평생을 천직으로 알고 살아온 분들이었는데, 변함없이 꾸준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모습들이 또 다른 생동감을 넘치게 했던 것 같다.

글만큼이나 곳곳에 담겨있는 사진들은 과거와 현재를 잇는 다리가 된 것 같다. 흑백사진도, 화질이 좋지 않은 사진도 모두가 어우러져 또 다른 글이 된 것 같다. 기회가 된다면, 책에 소개된 곳을 한번 가보고 싶어졌다. 그리고 나의 헤테로토피아는 어디인 지 찾아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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