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령의 강의
이어령 지음 / 열림원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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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는 눈물 끝에서 생겨나는 것입니다.

편안한 잠을 자고 곱게 자는 사람들, 고속도로를 달려온 삶 속에서는

절대로 창조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창조는 억압, 모순, 구석, 이 속에서 나옵니다.

p.214

언제부턴가 이어령 교수의 책을 꾸준히 읽고 있다. 오히려 생전보다, 사후에 책이 더 많이 나오는 것 같아서 아쉬움이 쌓인다. 이제 주옥같은 이어령 교수만의, 이어령 교수의 위트가 녹아있는 책들이 언젠가는 끝이 나겠구나! 하는 생각 때문이다. 꾸준히 읽었던 한국인 이야기는 완결이 되었고, 끝나지 않은 한국인 이야기는 계속 나오고 있다. 그리고 이 책은 이어령 교수가 생전에 남긴 강연과 축사 등을 모은 책이다. 사실 강의라고 해서, 교수 재직 시절의 강의록인가 싶었는데, 다양한 장소에서 자신만의 색을 풀어낸 강연과 축사들은 여전히 새로운 시각에서, 새로운 관점을 불러일으킨다.

첫 번째 등장한 축사는 가장 최근의 것이 아닐까 싶다. 여전히 우리 곁에 남아있는 코로나가 한참 기승을 떨치던 2021년 서울대학교 비대면 졸업식 축사이니 말이다. 역시 이어령 교수는 졸업을 하는 학생들에게 색다른 시선을 안겨준다. 비대면 수업을 받고 학위를 수여받은 최초의 학생들이라는 말로 말이다. 그러면서 마스크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다. 누구나 어쩔 수 없이 써야 했던 마스크를 어떤 시각으로 보느냐에 따라 차이가 있다는 말이었다. 마스크는 내 건강과 타인의 건강을 같이 지킬 수 있는 물품이라는 것. 무한 경쟁에 내 몰린 현대사회에서 마스크는 나뿐 아니라 타인까지 지켜주는 것인데, 물론 마스크를 강제적으로 썼던 것도 맞지만 어떤 시각을 갖느냐에 따라 삶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기억에 남는 강연은 세종대에서 열린 강연이었는데, 이 강연에는 세종대왕(학교 이름 때문에 더 강조한 것 같다.)을 비롯하여 욘사마 배용준과 일본 나라 현, 페르시아 왕 크세르크세스, 알렉산더 대왕 등의 다양한 이야기가 들어있어서 더 흥미로웠다. 세종대왕 하면 떠오르는 한글. 그 한글은 바로 세종대왕이 창조한 우리의 글자다. 하지만 세종대왕이 태종에 이어 왕위에 올랐을 때, 그는 마냥 행복하기만 했었을까? 교수는 아닐 거라고 이야기한다. 20대 초반의 나이에 왕이 된 세종은 아버지 태종이 왕위를 지키기 위해 흘렸던 수많은 피를 지켜봤을 것이고, 자신에게 왕위가 넘어오면서 두 형이 겪었던 아픔과 슬픔 또한 봤을 것이다. 바로 그런 눈물이 창조의 씨앗이 되어 대왕 세종을 만들었던 것이다.

시대의 지성 이어령 교수는 이 땅의 젊은이들을 아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들에게 다채롭고 신선한 바람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많은 강연과 책을 남겼다. 책 속에 등장하는 어느 것 하나 그냥 넘길만한 것이 없었다. 매일 새로움을 얻기 위해 다양한 상황 속에서 똑같은 시각이 아닌 새로운 시각을 갖는 것. 단지 나이가 젊다고 젊은이가 아니라는 생각을 이 책 곳곳에서 하게 되었다. 선생은 우리 곁을 떠났지만, 우리 곁에 남겨진 저서들을 통해 그의 신선한 시각과 생각들을 마주하고, 그 안에서 또 다른 창조를 이루어나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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