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의 역사가 - 주경철의 역사 산책
주경철 지음 / 현대문학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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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의 주체가 나 자신이 아닌 사회는 '천국'이 되기는 애초에 글렀다.

흔히 그러하듯 잘못된 유토피아 기획은 디스토피아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다.

p.320

두 번째 만나는 역사가 주경철의 책이다. 정리되지 않던 중세 시대를 말끔히 정리해 준 책 덕분에 그의 책에 대한 기대가 컸다. 평일은 역사연구에만 골몰하다 보니, 일요일에는 쉬면서 색다른 작업을 하고 싶었다는 저자의 첫마디는 평일을 직장에 매여있는 직장인들에게도 공감이 가는 바가 아닌가 싶다. 그래서 솔직히 조금 가벼운 역사의 텍스트를 만날 거라는 내 예상과 달리, 역시 직업병은 어쩔 수 없나 보다 싶기도 하다. 우선 역사라는 범주에 문학이나 예술 등의 접점을 찾아 연결했던 것은 흥미로웠지만, 그 깊이가 깊다. 역사 전문가이자 교수이기에, 깊이의 선은 가지고 있어야겠다 싶지만 산책이라는 제목이 가벼움보다는 기분전환의 의미로만 쓰인 것 같다.

책의 시작은 세계 최초의 서정시로 일컬어지는 길가메시다. 다행히 몇 년 전 길가메시 서정시를 읽은 적이 있어서 낯선 이름은 아니었는데, 책 내용뿐 아니라 그와 관련된 역사적 이야기까지 함께 접할 수 있어서 더 기억에 남을 것 같다. 파리 루브르 박물관에 있는 사자를 제압하는 영웅 상을 통상 길가메시라고 추측한다. 지금은 석판 그대로의 색을 드러내고 있지만 원래는 색이 입혀져 있었고, 특히 눈에는 밝은색으로 색칠이 되어 있었다고 하니(그래서 관람자가 석판을 보면 자신을 쳐다보는 듯한 느낌을 더 강하게 받았다고 한다.) 원래의 색으로 만나면 어떨까 하는 상상도 해보았다. 책 속에는 길가메시 서정시 속에 등장하는 대홍수에 관한 내용에도 집중한다. 나 역시 책을 읽으며 성경 속 노아의 홍수를 떠올렸는데, 또 다른 서사시 아트라하기스의 이야기와도 같다고 한다. 책 속에 등장하는 세 이야기의 공통점은 바로 신의 선택이다. 친한 친구인 엔키두를 잃은 길가메시 역시 죽음의 문제에 대해 큰 번뇌 속에 있었는데 결국 신에게 노여움을 받았기에 삶과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내려놓게 된다.

그 밖에도 중세 하면 연관되는 마녀사냥에 대한 이야기와 에드워드 벨러미의 작품 『뒤를 돌아보면서』와 얽힌 사회 구조와 유토피아를 향한 생각들이 사회운동 내셔널리스트 운동으로 이어진 이야기 또한 기억에 남는다. 당시에는 그게 진리 혹은 정답이라고 생각하고 행동했지만 후세에 보면 말도 안 되는 상황 속에서 잘못된 판단을 했다는 사실을 역사를 통해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특히 마녀사냥은 모습이 다르긴 하지만, 지금도 여전히 자행되고 있다는 사실임에 틀림없다. 나와 의견이 다르다는 이유로, 내 주장을 관철시키고자 하는 이유로 무분별하게 벌어지는 것을 보면 말이다. 중세 시대 마녀사냥에 대한 내용을 현대의 시각에서 보자면 정말 말도 안 되고, 생각할 가치조차 없다고 여겨지지만 그 시대는 그게 악의 원인이자 진실로 비쳤다니 실소가 나오기도 한다. 1888년 작품인 뒤를 돌아보면서는 한참 미래라고 불리는(우리는 지나왔지만) 2000년대의 모습을 소설로 그린 것이다. 21세에서 24세까지 직업교육을 통해 자신의 적성에 맞는 직업을 선택하여 일하고, 45세에는 은퇴 후 삶을 즐긴다. 모두가 같은 급여를 받고, 위험하다 여겨지는 직군의 경우 노동 시간을 줄여준다. 어떻게 보면 2024년인 현재에도 이루어지지 않은 이상향으로 보인다. 하지만 방점은 군대 조직에 있다. 군대 조직으로 이루어진 정부에 의해 이 모든 것이 주도된다. 좀 더 나가면 사회주의와 그리 다르지 않게 보인다. 하지만 저자의 말처럼 이 상황은 절대 유토피아로 여겨질 수 없는 가장 큰 오류를 가지고 있다. 어느 누구도 타인에 의해 굴종하는 사회를 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개인의 소유만큼이나 중요한 자유의 가치 때문이다.

저자의 말처럼 모든 역사는 이야기를 바탕으로 이루어졌다. 영어의 history(He+Story) 안에도 이야기를 뜻하는 단어가 담겨있지 않은가? 역사 밖 역사 이야기를 통해 역사만을 위한 역사가 아닌 타 학문과의 접점을 통해 또 다른 역사를 만났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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