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고전 단편소설집을 읽은 것 같다. 20편의 세계명작 단편소설이 담긴 이 책에는 제목만 봐도 익숙한 작품이 있는 반면, 읽어보지 못한 낯선 작품들도 상당수 있었다. 그중에는 큰 바위 얼굴이나 별처럼 교과서에서 만난 작품들도 있고, 베니스의 상인이나 크리스마스 선물, 마지막 잎새처럼 읽었던 기억이 있는 작품도 있다. 마지막 수업과 귀여운 여인처럼 제목은 익숙하지만 내용이 딱히 떠오르지 않는 작품도 있고, 얼마 전 읽었던 변신, 가난한 사람들 같은 작품들도 있었다. 그리고 고향과 밀회, 비곗덩어리처럼 낯선 작품도 있었다. 이미 알고 있던 작품들은 다시 한번 기억을 떠올릴 수 있었고, 낯선 작품들은 첫 만남을 가질 수 있었다. 그럼에도 하나 고개가 끄덕여지는 것은 책 속에 담긴 저자의 이름이었다. 다행이라면, 낯선 이름이 거의 없었다는 것이다. 단편소설이라고 하지만, 20편의 길이는 제각각이었다. 가장 긴 작품은 제일 마지막에 있던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이었다.
20편의 작품 모두 자신만의 매력을 뽐내고 있었지만, 그중 기억에 남는 몇 작품을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알퐁스 도데의 마지막 수업과 이반 투르게네프의 밀회 그리고 루쉰의 고향이다. 우선 알퐁스 도데라는 이름은 두 번째 담긴 "별" 때문에 익숙했다. 교과서를 통해서도 만났지만, 한참 한글 자판 연습을 많이 했던 작품이기도 했으니 말이다. 참 이상한 게 마지막 수업이라는 제목을 읽으며 떠올린 작품은 죽은 시인의 사회였다.(이유는 모르겠다.) 주인공인 프란츠는 오늘도 학교에 지각했다. 아멜 선생님으로부터 혼날 생각에 학교로 향하는 마음이 무거웠다. 하지만 프란츠의 예상과 달리 아멜 선생님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이야기를 건넸다. 이상한 것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시상식 등의 자리에서만 입는 멋진 옷을 입고 있는 선생님과 교실 뒤에 서 있는 수많은 사람들까지... 독일에 의해 오늘까지만 프랑스어 공부를 할 수 있게 됨으로 아멜 선생님의 수업은 오늘이 마지막이었던 것이다. 마지막에 다다라서야 프란츠는 여러 가지 생각이 교차한다. 그리고 프랑스어 수업이 어느 때보다 재미있고 쉽게 이해가 되었다. 마지막 수업이기 때문이었을까?
이반 투르게네프의 밀회는 아쿨리나와 빅토르 알렉산드리치의 만남을 우연히 지켜보게 된 내가 그들의 이야기를 옮긴 것이다. 연인 사이인 둘은 이별을 앞두고 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빅토르 알렌산드리치가 일 때문에 떠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둘의 관계는 뭔가 이상하다. 이별을 앞두고 서로를 그리워하기 보다는, 빅토르 알렉산드리치가 아쿨리나를 무시하는 모습이 가득하다. 그런 빅토르의 행동과 말에 아쿨리나는 마음이 상한다. 하지만 떠나는 연인에게 좋은 기억을 남기고 싶었던 그녀는 그를 채근하지 않는다. 아쉬움 없이 일방적으로 자리를 떠나는 빅토르를 보며 눈물을 흘리는 아쿨리나. 그런 아쿨리나가 안타까웠던 나는 그녀 앞에 나타나지만, 갑작스러운 나의 등장에 아쿨리나는 놀라서 도망을 친다.
루신의 고향은 얼마 전 루쉰에 관한 책을 읽으며 안면을 튼 작품이었는데, 드디어 만나게 되었다. 부유한 형편의 나와 동갑내기 룬투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룬투는 어린시절 같이 놀았던 동네의 친구였다. 30년 가까이 흐른 후 다시 고향을 찾은 나는 어머니로부터 룬투 이야기를 듣게 된다. 내심 옛날의 추억을 곱씹으며 이야기를 나눌 거라는 내 예상과는 달리, 나를 만난 룬투는 나를 나리라고 부른다. 나는 룬투가 예전처럼 불러주길 원했지만, 룬투는 그럴 수 없다고 한다. 그리고 룬투 곁에는 룬투를 꼭 닮은 아이가 서 있다. 과거와 달리 이들 사이에는 큰 벽이 있었다. 바로 돈이라는 벽 말이다. 룬투를 보며 나는 왠지 모를 안타까움을 느낀다. 그리운 고향에 왔지만, 예전과는 다른 모습에 실망했듯이 룬투와의 옛날을 기억하고 있지만 너무 다른 삶을 살아온 둘 사이의 거리감이 느껴지는 것이 대비된다.
한 권의 책을 통해 세계 명작 20작품을 만날 수 있어서 마치 종합선물세트를 받은 기분이다. 특히 루쉰의 고향을 만날 수 있어서 무척 반가웠다. 기회가 된다면 세계명작 단편소설 모음집2도 나오면 좋겠다. 아직도 만나지 못한 명작 단편소설이 무척 많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