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재식의 속절없이 빠져드는 화학전쟁사 - 삼국 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 전쟁의 승패를 갈랐던 화학 이야기 내 인생에 지혜를 더하는 시간, 인생명강 시리즈 20
곽재식.김민영 지음, 김지혜 북디자이너 / 21세기북스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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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로 알았는데, 화학 박사이자 현재는 교수가 된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 곽재식. 일부러 그의 책을 찾아 읽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그의 책에 담긴 화학적 이야기는 단순히 픽션은 아닐 거라는 기대감이 있다. 그러고 보니 내가 읽은 그의 책은 소설보다는 논픽션적인 성격의 책이 더 많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이 책 역시 그의 전공을 십분 살린 화학을 기반으로 한 전쟁에 관한 역사서라고 볼 수 있다. 책 속에 등장하는 이야기의 시작은 화학과 전혀 관련이 없어 보인다. 분명히 제목에는 책 속에 담긴 전쟁사의 기반이 화학이라는 사실을 대놓고 이야기하고 있음에도 뭔가 아리송하다. 왜일까? 왜 저자는 제목에 대놓고 화학을 써놓고 막상 책의 중반부 정도 되어서야 화학을 슬그머니 꺼내는 걸까? 개인적인 뇌피셜이라면 이해를 돕기 위한 설명과 시대적 상황 등을 통해 흥미를 돋우기 위해서와 처음부터 화학이 등장하면 일반적인 독자들(과학과 담쌓고 사는 독자 포함)이 과민반응으로 책을 덮을까 우려했던 건 아닐까?

말을 돌려서 했지만, 우리가 아는 이야기 혹은 흥미를 돋우는 이야기부터 해서 독자의 관심을 끌고 가기에 성공한 것 같다. 마치 소설처럼 '그래서? 그다음은 어떻게 되었는데?'나 '도대체 화학은 어디에 나오는 거야?'를 궁금해

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삼국시대부터 시작해서 후삼국, 조선 전기에서 후기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의 전쟁사 속에 담겨있는 화학을 통해 전혀 예상치 못한 화학의 맛을 발견하게 만든다. 가령 시작이 되는 이야기는 포차(포장마차 아님) 이야기다. 포차 하면 자연스레 우리는 포장마차를 떠올리는데, 삼국시대의 포차는 바로 포를 쏘는 기계를 뜻했다. 그래서 지금과 달리 그 시대에 포차에 가자는 뜻은 돌 날리는 무기가 있는 군부대에 입대하자는 의미를 지녔을 거라고 말한다. 특히 첫 장에서는 화약이 발명되기 이전의 시대였으므로 무기로 사용했던 것은 바로 돌! 투석기다. 삼국시대에 종종 등장한 포차에 대한 기록은 삼국사기에서 만나볼 수 있다. 나마라는 벼슬을 하던 신득이라는 사람이 포노를 만들어 바쳤다는 이야기가 등장하는데, 여기서 포는 돌을 던지는 기계를, 노는 쇠니라고 부르는 장치로 화살을 쏘는 데 도움을 주는 기계장치를 말한다. 아쉽게도 신득과 포노에 대한 기록은 이게 전부다. 여기서 더 나아가 삼국을 통일한 김춘추 그리고 김유신 이야기로 이어진다. 고구려의 장군 뇌음신이 한산성(현재 광진구 아차산 지역)을 공격한다. 당시 신라의 수도는 경주였는데, 왜 그는 한산성을 공격한 것일까? 당시 신라는 당나라와 외교관계를 통해 백제를 멸망시켰고, 다음 차례는 고구려였다. 바로 뇌음신은 신라가 당과 동맹을 맺기 위해 뱃길로 이동하는 곳을 막기 위해 공격을 감행한 것이다. 하지만 그는 결국 실패하고 만다. 기록에 의하면 뇌음신의 공격은 상당한 피해를 입혔지만, 장마가 심해지고 천둥, 번개 등이 너무 잦아서 후퇴했다는 기록이 있다. 드디어 화학이 등장할 차례다. 앞에서 투석기(포차)를 설명했는데, 이 투석기에서 가장 중요한 장치는 바로 밧줄이다. 밧줄의 재료로 사용되는 것은 바로 새끼줄인데, 이 새끼줄은 지푸라기로 만들었다. 지푸라기는 알다시피 벼의 줄기인데, 지푸라기에도 포도당이 있다. 단맛을 나는 포도당과는 다른 질기도 억센 성분을 가지고 있는 짚의 주 성분은 셀룰로오스(섬유소)라고 한다. 문제는 짚이 날씨의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비가 오고 습기가 높으면 자연스레 벌레가 생기기 쉽고, 벌레가 지푸라기를 먹어치우고 곰팡이가 나면 당연히 삭게 된다. 이는 자연스레 새끼줄의 강도에 영향을 미치고, 투석기의 가장 중요한 재료인 밧줄이 약해지면 투석기 역시 제 역할을 할 수 없게 된다. 책은 여기서 더 나아가 나일론 그리고 탄소섬유까지 이야기한다.

그 밖에도 후백제의 견훤과 기병대(미오신, ATP), 조선의 이성계와 접착제(활의 아교), 조선 후기 운요호사건과 석탄 등 전쟁사 속에 담긴 화학의 이야기는 예상치 못했던 부분이어서 그런지 무척 신선했다. 과거의 이야기뿐 아니라 현재와 미래를 아우르는 화학 이야기 덕분에 흥미롭게 각 장을 읽을 수 있었다. 661년부터 1875년까지의 4개의 전쟁사를 통해 한결 화학과 가까워진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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