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보통 시 - 서울 사람의 보통 이야기 서울 시
하상욱 지음 / arte(아르테)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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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안 좋아한다. 때론 무서워한다. 언제부터인 지는 모르겠지만, 짧은 시구를 읽고 그 안에 담겨있는 수많은 의미들을 찾아내는 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래도 시랑 담쌓고 살면 안 되겠기에 '1년에 1권 이상 시집을 읽자.'가 새해 목표 중 하나다. 그럼에도 하상욱 시인의 시집은 그 범주를 벗어난다. 다른 시집과는 달리, 하상욱 시인의 시집은 퀴즈 같다. 시를 먼저 읽고, 제목을 추리해 내(야 하)는 시집이기 때문이다. 덕분에 때론 추리소설을 읽는 듯한 기분이 든다. 그의 시집은 제목부터 특이하고, 첫 장을 넘기면서 마지막 장까지 피식피식 웃다가 끝난다. 이번 시집의 제목은 서울 보통 시다.(그는 서울을 참 좋아하는 것 같다. 그의 시집 태반이 서울이 들어간다.) 이번에는 서울특별시가 아닌, 서울 보통 (띄고) 시다. 다른 시는 그 안에 담긴 의미들을 찾아내기 싫어서 기피하는데, 이 책은 제목부터 막 파헤치고 싶다. 서울 사람의 보통 이야기라는 부제가 달렸는데(그 또한 검은색과 흰색, 양각과 음악의 조화를 이루며 표지가 구성되어 있다.), 나는 서울특별시를 패러디한 것처럼 느껴졌다.

그렇다면 책 속 시를 통해 퀴즈를 풀어보자. 내용을 듣고 이 시의 제목을 맞춰보자!

다시

돌아간다면

행복

할수있을까

마치 헤어진 연인을 떠올리며, 현재의 삶을 씁쓸하게 느끼는 것 같은 화자의 감정이 느껴지는가?

그렇다면 너무 갔다. 보통의 시를 생각하면서 당연히 그런 선입견을 가질 수 있겠지만 이 시의 제목은 "이별 후에"가 아닌 "연휴 첫날"이다. 제목을 읽고 다시 시를 읽어보자. 어떤가? 무척 수긍이 가지 않나? 나 역시 그랬다. 연휴 첫날은 앞으로 엄청 긴 휴일이 남았으니 뭐 하루 즈음은 그냥 편하게 넘겨도 되지 않을까? 싶은데, 연휴 마지막 날이 되면 도대체 이 긴 연휴 동안 뭘 한 거지? 하는 생각에 자괴감이 든다.

또 한 편의 시를 소개해 본다. 이번에는 잘 맞춰보자.

어디

있나

나의

반쪽

앞에서 한번 봤으니 또 속지는 않겠지만... 결혼하고 싶다, 연애상담소... 이런 유의 제목을 생각했다면 이번에도 속았다. 이 시의 제목은 "애인을 찾습니다"가 아니라 "에어팟"이다. 한쪽이 사라지면 자연히 찾게 되는 줄 없는 이어폰 말이다.

책 속의 시에 공감이 많이 가면 좋지 않다. 그만큼 팍팍한 삶을 살았다는 것 같아서 말이다. 근데 또 공감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은 이 책의 제목처럼 우리 모두 보통 사람의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일 테니 그런 면에서 보면 또 공감이 갈 수밖에 없겠다 싶다. 이렇게 짧은 두세 줄의, 몇 개의 단어들을 통해 공감을 뽑아내는 걸 보면 그는 또 다른 의미의 창작의 고통을 많이 겪었겠다 싶다. 때론 읽으며 무슨 뜻인지 모르는 시를 곱씹기 보다 한 줄을 읽으며 무릎을 치는 시를 만나는 것은 어떨까? 오랜만에 하상욱 시인의 시집 앞에서 많이 웃고 많이 울다 스트레스 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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