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인트 헬레나에서 온 남자
오세영 지음 / 델피노 / 2023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과거 아주 흥미롭게 읽었던 작품이 있었다. 조선의 장영실의 제자인 석주원이 서양의 구텐베르크를 만나 그의 활자술 발명에 큰 영향을 끼치는 내용이었다. 각기 다른 동양과 서양의 역사가 하나의 사건으로 얽히며 그 안에서 만들어내는 이야기가 참 흥미롭고 생동감 있었다. 물론 작가의 픽션이지만, 한번 즈음 상상해 볼 법한 이야기였기에 읽은 지 오래 지났지만 기억에 난다. 이번에도 그렇다. 세인트헬레나에서 온 남자 안지경. 오세영 작가의 상상력이 이번에도 동양과 서양을 하나로 묶었다.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이라는 노래에 등장하는 홍경래는 "못 살겠다."라는 수식어를 달고 있다. 조선에서 벌어진 최대의 민란이라 불리는 홍경래의 난이 바로 이 작품의 배경이다. 홍경래를 호위하는 호군 안지경은 과거 장원급제를 한 무인이다. 하지만 가진 자의 수탈로 힘겨워하는 백성들 편에서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대원수 홍경래와 뜻을 같이한다. 군사인 우군칙을 비롯하여 정주형과 최성태 등이 함께 운동을 벌인다. 수탈이 얼마나 심했던지, 홍경래의 난을 지지하고 모여든 백성들은 갈수록 많아진다. 안지경은 함께 서학(천주교)을 믿던 차홍련을 마음에 두고 있었고, 둘은 정혼을 한 사이였다. 이 모든 운동이 마무리되면 정식으로 혼인을 하기로 했다. 하지만 홍경래파 안에서도 자신의 자리 때문에 마음이 상한 최성태를 비롯한 몇몇이 반기를 들고 관군 편에 서기 시작한다. 반란군이 머물고 있던 정주성에 폭탄을 설치하고 선봉에 선 노성집은 결국 그 일로 반군을 몰아내는 데 일조를 한다. 마지막에 그들 편으로 온 이격과 최성태, 장학면 등은 노성집과 함께 관군 편에서 이익을 본다. 안지경의 기지로 겨우 몸을 피한 홍경래. 하지만 정주성은 초토화되고 남아있던 사람들은 모두 처형된다. 관군을 피해 배를 타고 도주하게 된 안지경과 홍경래는 바다를 건너려다 큰 폭풍에 휘말리게 된다. 결국 섬에 도착한 안지경은 홍경래의 마지막을 지킨다. 홍경래와 함께 꿈꾸었던 새로운 세상을 세우기 위해, 그리고 차홍련을 지키기 위해 안지경은 꿋꿋이 상황을 버틴다.

반군을 제압한 공으로 포도청 대장에 오른 노성집은 홍경래의 죽음을 눈으로 보지 못했기에, 왠지 모를 찝찝함을 가지고 있다. 특히 안지경이 눈에 가시였던 그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섬을 돌아보다 도망가는 한 사람을 발견하고 그를 쫓는다. 한편, 영국 해군함 알세스트호는 중국을 경유해서 오던 중, 무장을 한 관군의 배를 보고 선제 타격을 한다. 그리고 관군에 쫓기던 안지경을 발견하고 배에 태워 뱃일을 시킨다. 배에 타고 있던 박물학자 찰스턴 경과 이야기를 나누게 된 안지경은 세인트헬레나 섬으로 이동하게 된다. 그 섬에는 영국과의 전쟁에서 패배한 후 유폐된 프랑스 황제 나폴레옹이 있었다. 그러던 중 나폴레옹이 자객의 습격을 당하는 일이 벌어지고, 안지경이 그를 구해내게 되는데...

이야기의 접점은 바로 프랑스혁명과 홍경래의 난이다. 둘 다 아래서부터 시작된 혁명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나폴레옹을 비롯하여 세인트헬레나 섬의 머물고 있던 피에르 신부로부터 혁명의 이야기를 전해 들은 안지경은 그들이 꾸고 있는 꿈을 실제로 성공시킨 그들의 이야기에 다시금 가슴이 뜨거워진다. 여러 번의 위기를 겪으며 흔들릴 법도 했지만, 그가 품고 있던 두 개의 꿈을 향해 그는 다시 조 선생을 택한다. 물론 조선에 가게 되면, 반란군이었던 그의 목숨이 위태롭지만 그에게는 버릴 수 없는 소중한 목표가 있었기 때문이다. 과연 안지경은 홍경래가 품었던 꿈을 이루어낼 수 있을까? 평생 반려자인 홍련을 지킬 수 있을까? 큰 목표와 함께 한 여자를 사랑하는 두 남자 이격과 안지경의 삼각관계 역시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평생의 정인과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은인 사이에서 그녀는 어떤 선택을 할까? 로맨스와 역사적 사실이 어우러져 한결 흥미로웠던 시간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