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과 명화가 과거에 비해 우리 곁에 가까이 있다고 느껴지는 데는 도슨트가 한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미술은 여전히 익숙하거나 쉽게 느껴지지 않는다. 저자 역시 이 책을 시작하면서 같은 이야기를 꺼낸다. 음악과 미술. 예술임에도 둘의 온도차는 확실히 다르다. 내가 좋아하는 곡을 분석하면서 듣지 않듯이, 미술 전시 역시 내 눈에 즐거운 것을 찾아다니면 된다는 말에 닫혀있던 마음이 활짝 열렸다. 마치 공부하듯이, 그림을 보고 그 무엇을 찾아내야 한다는 부담감이 은근히 내 안에 많았기 때문이다. 그런 그가 소개하는 10명의 화가들 중에는 익숙한 인물들도 있고, 처음 듣는 낯선 인물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 어떤 책보다 흥미로웠던 것은, 그들의 그림 속에 담긴 삶의 이야기를 넉넉히 풀어내면서 함께 공감할 수 있는 책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 책은 5명의 국내 작가와 5명의 해외 작가들과 그들의 작품을 소개한다. 그중 단연 나는 이 두 화가를 이 책을 통해 얻게 된 보석이라고 말하고 싶다. 한 화가는 이름도 낯선 이쾌대라는 국내 화가고, 또 다른 화가는 르네 마그리트다. 이 책이 아니었다면, 진짜 몰랐을 보석 같은 그들의 그림과 그림 속에 담긴 삶의 여정을 통해 또 다른 맛을 보았던 것 같다. 이쾌대라는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가장 큰 이유는 그가 월북화가이기 때문이다. 남한에서 태어나 사랑하는 여성과 결혼을 해 4명의 아이를 키우며 행복하게 살던 그는 갑작스러운 전쟁 속에서 김일성 초상화를 그리는 사람이 된다. 이미 그전에도 자신만의 그림을 그렸던 그인지라, 그 일로 그는 어려움을 겪으며 포로수용소에 갇힌다. 하지만 사랑하는 가족을 다시 만날 날을 손꼽아 기다리던 그가, 갑자기 월북을 택하게 된다. 왜였을까? 이유는 그만이 알 것이다. 수용소에서 그는 아내 유갑봉 여사에게 자신의 화구와 작품을 팔아서 생활을 하고 아이들을 먹이라고 부탁을 할 정도로 가정적인 사람이었다. 그런 그의 마음을 알았던 유여사는 이쾌대 화백의 그림을 하나도 팔지 않고 다락방에 모두 보관한다. 부피가 커질 것을 염려하여 그림만 말아서 말이다. 안타깝게도 생전에 이쾌대 화백의 그림이 빛을 보는 것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유 여사 덕분에 우린 이쾌대 화백의 그림을 마주할 수 있다. 서양화를 배웠던 그의 그림 속에는 서양과 우리의 문화가 어우러져있다. 그래서 더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르네 마그리트는 이쾌대보다는 인지도가 있는데, 그 이유는 올 초 읽었던 소설의 제목 때문이었다. 소설의 표지에 얼굴을 천으로 가린 남녀가 키스를 나누고 있었는데, 제목도 표지도 신기해서 찾아봤다가 르네 마그리트라는 화가의 이름과 그가 그린 그림을 보게 된 것이다. 책이 소개하고 있는 그의 그림은 하나같이 특이했다. 특히 연인이라는 작품은 마치 코로나 시대 연인이라는 별명이 붙었을 정도로 서로의 얼굴을 가리고 키스를 나눈다. 누군지 모르는 사람과의 키스라니... 그 밖에도 깨진 창을 통해 보이는 "저무는 해"라는 작품이나, 파이프 그림 아래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고 적혀 있는 "이미지의 배반" 등 그는 우리가 익숙하게 생각하는 평범함을 비트는 그림으로 유명했다. 너무 익숙해서 당연한 지 아는 우리에게 그는 익숙한 것에서 벗어나 낯설게 하는 법을 그림을 통해 설명해 주는 것 같다. 명성에 비해 평범한 매일매일을 즐겼다는 그의 삶 역시 작품을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에는 화가들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숨겨진 선물들이 각 장마다 등장한다. 국내 작가들은 그의 작품이 소장되어 있는 미술관이 소개된다. 그렇다면 해외 작가는 어떨까? 아마 깜짝 놀랄 만큼 멋진 선물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