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삶은 PK로 이루어져 있지 투명 시인선 1
최진영 지음 / 투명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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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부터 특이한 이 책은 시집이다. 다른 것보다 PK가 무엇인 지 무척 궁금했다. 책 제목은 책 중반부에 등장하는 시의 제목과 같다. 글을 쓰고 싶어 했던 그는 결국 시인이 된다. 이 시집은 그의 첫 번째 시집이다.

나는 시를 좋아하지 않는다. 아니 어려워한다. 그냥 있는 그대로 나열하고, 속 사정까지 빤히 밝혀내는 산문에 비해 시는 그 안에 담긴 뜻이 무한하기도 하고 마치 보물 찾기처럼 찾아내기 쉽지도 않기 때문이다. 다행이라면, 이 시집 속 이야기는 그렇지 않았다. 공감 가는 이야기도, 고개가 끄덕여지는 이야기도, 시라고 하지만 산문 같은 느낌이 드는 시도 있었다. 총 4개의 장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첫 번째 장은 자신의 삶의 경험이 담긴 것 같고, 2장은 삶의 경험 중에서도 특정한 단어나 상황을 토대로 시가 이루어진다. 세 번째 장은 특히 병원 이야기나 삶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많은데 저자 본인이 현재 근무하고 있는 곳이 모 병원인지라 그 병원에서 마주한 이야기들이 시로 표현된 것 같다. 4장은 삶 그리고 사랑에 대한 이야기가 특히 많았다.

우선 궁금했던 PK에 대해 풀어보자. PK는 게임 용어다. (한 번에 알아보는 사람도 있었겠지만, 나처럼 게임을 안 하는 사람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을 지도 모르겠다.) Player Killing 혹은 Play Killer를 PK라고 한단다. 의미가 좀 다르긴 하지만, 누군가(무언가)를 죽이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저자는 우리가 사는 삶을 게임에서의 삶으로 표현한다. 나보다 약한 사람을 찾아내 죽이는 것. 나보다 강한 사람과 눈을 마주치지 않는 것. 그렇게 버티고 죽이며 레벨 업을 하는 게임처럼 우리가 사는 세상 역시 무한 경쟁 속에서 서로를 짓밟고 버티면서 사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시였다.

그 밖에도 가족과 관련된 시도 여러 편 등장한다. 할머니와 동생에 대한 애틋한 감정 한편에, 엄마에 대한 분노도 담겨있다. 따뜻하고 아기자기한 시보다는 삶 그 자체를 표현한 시들이 많아서 어른의 삶을 마주할 수 있는 시간이었던 것 같다. 그렇다고 모든 시가 우울하고 염세적이지는 않다. 적어도 사랑은 작은 단어로도 그 설렘을 표현할 수 있는 감정일 테니 말이다.

시 중에 한 편이 기억난다. 여러 번 곱씹어가며 읽었다. 그래지네요라는 제목이었는데, 잘 지내시죠라고 보내야 할 문자에 잘 지내지죠라고 보냈던 기억이 담긴 시였다. 단어 하나의 차이임에도, 둘 사이에 선명한 온도차가 드러나서 나 또한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리고 안녕이라는 시도 기억에 남는다. 세 줄 밖에 안되는 시였음에도, 누구나 공감할 듯해서 여기에 옮겨본다.

안녕

넌 내게

다가왔던 말로

떠나가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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